상담사의 시간: 빛나는 여자아이와 상담심리사
말 한마디가 아이의 마음을 무너뜨릴 수도, 일으켜 세울 수도 있습니다.
아이들의 마음을 밟지 마세요.
우리는 낯선 문화에 노출될 때, 기존의 가치·정체성과 새로운 문화가 상호작용하며 심리·행동 변화를 겪습니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문화적 전환(cultural transition)이라고 부릅니다.
문화적 전환기에는 스스로의 정체성과 감정 반응에 주목하는 일이 중요합니다. 새로운 문화와의 괴리감은 정체성 위기로 다가올 수 있으며, 인지적 부조화를 경험하게 합니다. 더 나아가 세계관이 흔들릴 때, 우리는 깊은 차원의 존재적 불안과 마주하게 됩니다.
실존심리학자 빅터 프랭클은 인간이 문화적 전환기에 겪는 고통이 삶을 의미화하고, 더 깊은 성찰과 이해로 이끌 수 있다고 말합니다. 즉, 충격은 나를 시험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세상을 더 넓게 이해하는 계기가 될 수 있습니다.
낯선 문화 경험은 단순한 놀람이 아니라, 때로는 정서적·윤리적 침해로 다가올 수 있습니다. 이때 필요한 것은 ‘경계 설정’입니다.
• “내가 유별나서 그런 게 아니야. 이 불편함은 나에게 진짜야.”
• “이건 나의 정체성과 상관없는 타문화의 표현이야.”
이런 식으로 마음속에 심리적 거리두기를 두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이를 정서적 디탱글링(detangling, 얽힌 것을 풀다)이라 부릅니다.
즉, 과잉 반응하지 않으면서도 감정을 존중하고, “이건 내 윤리와 맞지 않아”라고 스스로에게 이름 붙여주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저 역시 저널치료를 통해 이러한 경험을 정리했고, 《호수를 걷는 시간》과 같은 글쓰기를 통해 제 전환기를 기록해왔습니다.
오늘은 ‘상담심리사의 시간’이라는 이름으로, 저의 개인적인 조금 더 깊은 이야기를 나누어보려 합니다.
저는 상담심리사가 되기 위해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공부와 수련을 이어왔습니다. 상담심리학을 전공으로 삼아왔을 뿐 아니라, 범죄심리학과 법심리학, 그리고 EMDR·CBT와 같은 심리치료 기법을 배우며 다양한 분야를 접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많은 전문가들과 함께 공부하고 배우는 소중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러나 학문과 훈련의 길을 걸으면서도, 사회 속에서 심리학의 울타리를 넘어 다양한 사람들과 마주할 때 예상치 못한 개인적 충격 경험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 경험을 다루고 기록하기 위해 제가 선택한 방법이 바로 저널치료였습니다. 글쓰기를 통해 제 문화적 전환기를 정리할 수 있었고, 그것이 감사하게도 브런치를 통해 많은 분들과 소통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제가 글쓰기를 중요하게 생각하게 된 계기는, 예전에 쓴 글 「05화 나는 조연일까 주연일까(2)」에서도 다룬 적이 있습니다. 저에게 글쓰기는 단순한 기록을 넘어, 회복과 성찰의 언어가 되어주었습니다.
대학교에서 전임상담사로 근무할 때, 자살 고위험군 학생을 외부 기관과 연계한 적이 있습니다. 외부 기관의 실무자가 내담자와 3시간의 면담을 마친 뒤, 제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학생이 옷을 너무 야하게 입었어요. 연극성 성격장애 같아요.”
그러나 더 충격적이었던 것은, 그(그녀)가 내담자에게 직접 “정신이 붕괴되어 있다”라고 말한 사실이었습니다. 저는 그 시간 동안 상담실 문 앞을 서성이며, 대화가 끝나기만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내담자는 저를 만나고 싶어 했지만, 쏟아지는 업무 때문에 다시 자리를 비운 사이 이미 떠나버렸습니다. 결국 저는 전화기 앞에서 그 아이의 연락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당시 연계된 외부 기관의 실무자는 자신의 직관을 토대로 ‘정신이 붕괴되어 있다, 강제로 병원에 넣을 수 있다’는 말을 내담자에게 직접 했습니다. 그러나 이는 본래 전문 권한 범위를 넘어서는 진단적 언어였고, 내담자에게 깊은 상처를 남겼습니다.
그날, 제도적 한계 속에서 상담심리사의 역할이 행정 실적에 치우치며 기관 연계를 우선시하게 된 점 또한 뼈아픈 경험이었습니다. 저는 그 과정에서 ‘내담자의 회복’보다 ‘학교의 요구’를 따라간 제 자신을 돌아보며 깊은 자책을 느낄 수밖에 없었습니다.
여리고 다정하고 빛나는 아이가 권위와 낙인의 언어 앞에서 얼마나 무너졌을지를 생각하니, 상담자로서 제 마음 또한 깊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심리학에서는 진단과 상담의 권한이 엄격히 구분되어 있습니다. 임상심리전문가는 심리검사와 평가를 통해 진단적 소견을 제시할 수 있고, 상담심리사는 진단이 아니라 상담과 회복적 개입을 담당합니다.
• 임상심리전문가: 심리검사와 의학적 평가를 통해 진단적 소견 제시
• 상담심리사: 상담 관계를 기반으로 내담자의 회복 지원
이는 직업적 차이를 넘어 윤리의 차이입니다. 검증 없이 개인적 느낌을 진단처럼 말하는 것은 전문가적 평가가 아니라 주관적 판단일 뿐입니다. 그 언어는 내담자에게는 상처가 되고, 상담자에게는 무력감으로 남습니다.
수많은 심리학 연구들은 이미 입증해 왔습니다. 한마디의 언어가 신체와 정신에 직접적인 흔적을 남긴다는 사실을요.
• 자존감 손상 → 불안, 자기낙인
• 신체 반응 → 긴장, 심박수 상승, 수면 장애
• 장기적 영향 → 정체성 혼란, 대인관계 회피
특히 청소년기는 정체성과 자존감이 민감하게 발달하는 시기이기에, 권위자의 말은 더욱 깊게 각인됩니다.
제가 소중히 여기는 감정들을 누군가는 “너무 민감하다”고 말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 민감함을 중요하게 다루는 것이 바로 심리학의 본질입니다.
제가 만난 내담자는 연극성이 아니라, 트라우마를 견디며 살아낸 생존자였습니다. 그녀에게 필요한 것은 낙인의 언어가 아니라, 회복의 언어였습니다.
• “당신은 무너지지 않았습니다.”
• “여전히 여리고 다정하며, 살아낼 힘을 지니고 있습니다.”
말 한마디는 누군가의 존재를 규정짓는 낙인이 될 수도 있고, 살아갈 힘을 건네는 등불이 될 수도 있습니다. 상담자는 늘 낙인의 언어와 회복의 언어사이 갈림길에 서 있습니다.
감정은 현실에 대한 인식이며, 문화충격은 나의 가치와 감각이 어떤 공간에서 살아질 수 있는지를 알려주는 지표입니다.
• 더 알고 싶은 공간 → 열린 감각, 정체성 유지, 비교 아닌 이해
• 멀어지고 싶은 공간 → 감각의 신뢰, 정서적 거리두기, 기록과 회복
1. 호기심을 품되, 자기 감각을 잃지 않기
"이 방식은 새롭다. 이 낯섦은 나를 어떻게 흔들고 있는가?"
2.비교 대신 맥락 이해하기
나의 기준을 잣대로 삼는 대신, 그 문화가 탄생한 배경을 함께 보기
3.자기와의 대화 유지하기
“이 문화가 나의 가치와 어떻게 다르고, 어디서 이어질 수 있을까?”
“말 한마디가 아이의 마음을 무너뜨릴 수도, 일으켜 세울 수도 있습니다.”
누군가를 판단하려는 말은 상대방만이 아니라, 멀리서 지켜보는 또 다른 사람에게도 깊은 흔적을 남깁니다.
당신이 보지 못하는 곳에서, 누군가는 그 장면을 오래 기억합니다. 그리고 그 누군가에는 결국 당신 자신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아이들의 마음을 밟지 마세요.
회복의 언어로, 아이들을 그리고 나 자신을 지켜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