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틀 앞에 '여자혼자 제주여행' 이라고 넣긴 했지만 사실 이번 여행은 혼자는 아니었다. 누구와 여행 패턴을 맞출 필요도, 누군가의 취향에 강요당할 필요도 없고, 또 괜히 서로 서운할 일 없어서 좋은 '혼자 여행'에도 딱 괜찮을 코스인 것 같아 가볍게 다녀오기 좋은 제주 1박2일 코스로 소개한다.
뭐 대한민국 직장인들이 다 그러하듯 눈칫밥 먹어가며 연차 월차 다 끌어 쓰지 않으면 길고 여유롭게 여행가기 참 어렵다는 것, 프리랜서인 나도 너무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더 제주 여행의 인기는 쉽사리 사 그러들 일 없는 것 같다. 그냥 '제주도나 다녀올까?' 하는 마음에 그날 바로 충동적으로 떠나기에도 부담 없고, 여권 챙겼나? 정보 좀 더 알아볼 걸... 하며 발 동동 하게 되는 해외여행의 '왠지 모를 부담감'도 없으니까.
이번 여행은 친구와 함께 미세먼지나 피해서 맛있는 거나 먹고 커피나 마시고 오자- 라는 가벼운 농담 따먹기에서 시작된 제주행이었다. 1박 2일 코스, 렌트카 없어도 되니 여자 혼자 제주여행이라고 겁먹거나 불안해하지 말고 일단 떠나 보시 길. 커피나 한잔 하고 고기국수나 한 그릇 먹고 오자는 마음으로.
김포공항-제주공항-민속오일장-함덕해변-월정리-제주시내
1박2일은 생각보다 금방 흘러간다는 거. 나도 알고 너도 알고 우리 모두가 다 아는 사실. 그래서 아침 이른 비행기로 김포를 떠나 제주로 향했다. 김포-제주 간 노선은 전 세계에서도 3위 안에 들 정도로 어마어마하게 노선 빈도수가 높다고 하던데 이번 여행에서 새삼 더 느낄 수 있었다. 제주도로 향하는 사람은 시간대 상관 없이 정말 많았고, 모든 항공사 카운터에서 정신 없이 수속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김포를 떠나 1시간도 안되어 도착한 제주공항. 모든 사람들이 아마 다 같은 생각을 것 같다. 제주 공항에서 보이는 그 열대 야자수 같은 나무 하나만으로도 제주도라는 느낌이 팍팍 든다. 일단 제주도에 도착했으니까 기분 내려고 그랬는지 편의점에서 제주우유 하나를 사 마시고 좋아하는 과자 한 봉지 사서 버스에 올랐다.
오늘 첫번째 목적지는 제주 민속오일장. 매 2일, 7일 마다 열리는 오일장은 사람이 가득한데, 사실 서귀포 오일시장이나 올레 매일 시장과 비교해도 제주시 민속 오일장이 규모면에서도 재미면에서도 더 큰 것 같다. 입구에서 저렴하긴 하지만 팥을 너무 많이 아끼신 것 같아 아쉬웠던 따뜻한 붕어빵 한 봉지 들고 천천히 장을 구경했다. 햄스터도 보고, 기니피그도 보고, 새장 속 새들도 보고, 한라봉이랑 레드향이 가득 쌓여있는 모습도 보고, 바쁘게 야채랑 반찬거리 사가는 도민들의 모습도 보고, 또 어디 동남아 야시장 온듯한 느낌을 줬던 옷가게들도 하염없이 구경했다. 시식으로 맛본 레드향 한 조각에 집으로 보낼 레드향 한 상자도 택배로 보내고, 예전에 친구가 건내 줘서 맛있네 싶었던 감귤 타르트도 사서 가방에 넣었다.
시장 좀 구경하다 이제 본격적으로 제주 동편으로 이동해 보기로. 이번 제주 여행의 첫번째 바다는 함덕이었다. 백사장도 곱고, 푸른빛 바다도 멋진 함덕해수욕장의 바다를 바라보고 있으니까 진짜 제주도에 온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았다. 여름에는 해수욕 하려는 인파로 북적북적하겠지만, 겨울 함덕 해변은 조용하고 한적해서 그런 맛이 좋았다. 함덕 해변에 가면 제일 눈에 들어올 카페는 단연 델문도. 여전히 사람 많고 많아 자리 확보하기 어려운 델문도에서 따뜻한 커피 한 잔 마시니까 기분이 좋았다. 혼자 여행 온 멋진 여성분들이 꽤 많이 보였다.
부지런히 버스를 타고 월정리 쪽으로 이동. 월정리야 말로 사람 참 많다. 비슷한 바다인데 또 함덕이랑은 느낌이 전혀 다르다. 일년만에 온 월정리 바다는 여전히 맑고 깨끗했고 그 특유의 빛이 참 좋았다. 겨울 인데도 사람은 그때보다 더 많아보 였고, 특색 있는 카페들도 여럿 보여서 심심할 틈이 없었다. 친구는 월정리 해변오면 꼭 먹어보고 싶었다며 귤 하르방 주스를 샀고, 모두 다 찍는 것 같은 노란 하르방 벤치에서 기념 사진도 남겼다. 겨울인지라 하늘이 약간은 우중충 했음에도 불구하고, 벤치는 초록빛이고, 옆에는 노오란 하르방이 앉아있고, 또 그 뒤로는 에메랄드 빛 월정리 바다가 있어서 참 밝고 예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둑어둑해서 차 끊긴 거 아닌가 싶었지만 여기도 사람 사는 동네 아닌가. 칼같이 시간 맞춰온 제주 시내 행 버스를 타고 귀가하며 첫날 마무리.
제주시내-애월-한담해안산책로-제주시내-제주공항-김포공항
1박2일 제주 둘째날, 술 잘 마시는 친구는 어제 한라산과 너무 잦은 조우를 한 덕에 오전 시간을 내내 뻗어 있었다. 안 그래도 짧은 여행인데 미안하다고 했지만, 사실 뭐 미안할 게 전혀 없었다. 나도 간만에 푹 잠도 자고 여유롭게 호텔 조식도 먹은 탓인지 서울에서 쌓인 피로가 조오오오금은 풀린 느낌이었으니까.
호텔 체크아웃을 하고 제주 시내에서 관광객 아닌 도민들에게 맛집으로 유명하다는 예소담에 가서 고기국수 한 그릇씩 했다. 마치 사X곰탕을 더더더 진하게 끓인 듯한 국물이 맛있었고, 고기가 무척 두툼하게 썰려 있어서 여러모로 씹는 맛도 있었다. 고기국수보다는 개인적으로 비빔국수가 참 맛있었음.
고기국수먹고 예소담에서 버스 타고 애월로 향했다. 요즘 그렇게 '핫' 하다는 애월은 막상 도착하니 정말 사람 가득이었다. 제주 애월에서 가장 유명한 카페 두 곳을 꼽으라면 단연 <봄날>과 <몽상 드 애월>일텐데, 둘다 그냥 슬쩍 구경만 해봤다. 봄날은 초입부터 들어가려는 사람이 너무너무 많았고, 지드래곤이 운영하는 덕에 중국인 관광객들도 끊임 없이 찾아오는 몽상 드 애월은 화장실 가는 데에도 한참 줄을 서야 했다. 애월 바다를 구경하다 번잡한 두 카페를 뒤로 하고 한담해안 산책로로 향했다.
한담해안산책로는 친구가 꼭 한번 걷고 싶다고 했던 길인데, 오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던 곳이다. 해안가 사이로 난 구불구불한 산책로를 걷고 있으면 '제주도 참 예쁘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애월의 바다 그 특유의 색도 그렇지만, 걸어가며 계속 만날 수 있는 검은 제주돌은 이 산책로를 더 멋지게 만드는 것 같았다. 산책로인지라 걷기에도 편하게 만들어서 시간만 있었으면 더더더 오래 걸어도 힘들다는 소리 안 나올 곳이었다.
애월에서 간 카페는 결국 유명 하디 유명한 두 곳 아닌 뚝 떨어져 있는 카페. 조용하고 약간은 어둑한 분위기에서 폭탄처럼 가득 나온 고구마 라떼는 정말정말 맛있었다. 맛있는 키위도 얻어먹고, 기대 안했는데 고구마라떼도 그 어디에서도 맛보지 못한 독특한 맛이어서 기억에 많이 남을 것 같다. 나중에 애월에 오면 또 들러 봐야지.
애월에서 다시 제주시내로 돌아오는 버스 타러 가는 길. 길 입간판에 써 있는 문구가 재미있어서 친구랑 낄낄하고 웃었다.
'돌아와요 효리누나. 전 초인종 안눌렀어요.'
제주 공항가기 전, 또 현지인에게 유명하다는 맛집에서 갈치구이백반이랑 물회로 아쉬움을 달랬다. 갈치구이 참 별거 아닌 것 같은데 제주도에서 맛본 갈치는 정말 다 맛있었다. 거의 모든 식당에서 밑반찬으로 빠지지 않았던 양념게장도 한번 더 리필 해 먹고, 가시 빼고는 남은 것 하나 없이 갈치구이도 싹싹 다 먹고 공항으로 갔다. 김포로 향하는 사인을 받고 엄청나게 바빠 보이는 비행기를 타고 돌아왔다.
제주도의 밤도 깜깜했고, 김포의 밤도 깜깜했다. 제주에서의 1박2일이 또 금방 꿈만 같아 졌다. 거봐, 또 갈 수 밖에 없다니까.
글 / 사진 : 고구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