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환상의 섬(1/2)

태양의 나라와 웃고 있는 사람들

by 온수에 빠진 얼음

도착하자마자 처음 먹었던 음식은 쌀국수였다.


"쌀을 먹을래? 면을 먹을래?"

나를 픽업온 일행 중 한 분이 물었다.

"음. 쌀이요!"

"그럼 쌀국수를 먹자."


뭐야, 처음부터 답은 정해져 있었던 질문이었잖아.


정해진 간단한 메뉴였을지라도, 그날 알게된 쌀국수의 진정한 맛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현지식으로 부담없는 가격이기도 했지만, 한국에 된장찌개가 있다면 이 곳에는 쌀국수가 있었다. 동남아 특유의 뾰로롱한 맛이 물씬 나던 그 쌀국수 집은 그 후로도 종종 단골집이 되었다. 온종일 바다가 되어있다가 육지로 나와 으슬하게 태양볕을 만끽하고 있노라면 쌀국수만큼 내가 물고기가 아니고 감정을 가진 인간임을 충만히 느끼게 해주는 음식이 없었다.


내가 일했던 다이빙 샵의 주요 업무는 신혼여행 부부의 스쿠버 다이빙 체험이었다. 아마 신혼여행을 다녀와보신 분이라면 신혼여행지에서 관광 상품으로 팔고 있는 체험 스쿠버 다이빙 상품에 대한 기억을 쉽게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체험지는 본섬과 뱃길로 2시간 떨어져 있는 숨겨져 있는 환상의 섬이었다.

다이빙 자격이 없는 일반인에게 필수 다이빙 교육을 시킨 후, 이들에게 허용되는 수심(안전이 보장되는 수심:평균 5m, 최대 8m)에서 바다 관광을 시켜주고 이들에게 추억을 사진이나 동영상을 상품으로 파는 일이었다.


기억이 많이 흐려져 정확한 시간은 틀릴 수도 있지만 그 때의 일과는 대개 이러했다.


편도 2시간 정도 떨어져 있는 작은 섬으로 가는 배를 타기 전 손님들을 집합시키고 간단한 안내를 한다.

손님들이 배를 다 탔는지 확인하고, 배에서는 다이빙 동의서를 받고 수중카메라로 동영상/사진 촬영 상품을 판매한다.

섬에 도착한 후, 다시 돌아가는 배가 도착하기까지 체류하는 4시간 정도의 시간을 이용해서 신혼부부들을 3개 혹은 4개 조로 나누어 체험 다이빙 진행한다.

전체 일정이 끝나면 다이빙 장비를 정리해서, 손님들을 배에 모두 태운 후 다시 부두로 인솔한다.

본섬으로 돌아가는 배 안에서 신혼부부들이 예약해둔 호텔로 픽업해주는 차량 정보를 개별로 안내한다.


체험 다이빙 강사에게는 하루종일 신혼여행으로 온 부부들의 비위를 맞추어 주고, 이들이 최고의 기분을 가지게 만들어야 하는 어떤 의무가 있었다. 섬에 다녀오신 부부들은 신혼 여행 중에 절대로 기분이 언짢아지면 안되었다.

현지 가이드가 리드하는 신혼 여행 패키지 코스의 마지막에는 항상 빅딜이 있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동남아 여행 패키지 여행자들 중에서 가장 언짢은 부분을 꼽으라고 하면 쇼핑이라고 불리는 특산품 강제 판매가 아닐까.


뭐, 말하자면 체험 다이빙 패키지도 신혼여행 상품을 파는 국내 여행사가 제공하는 '제품' 중 하나의 부속 부품(부품이라고 하면 더 잘 이해가 될까 싶어서 이렇게 표현해봅니다.)을 납품하는 '을'의 입장이었기 때문에 갑사의 요구사항을 무조건적으로 맞춰야 하는 입장이었으므로 어쩔 수 없는 부분이었다.(고 변명해 본다.)


신혼여행이라는 패키지는 애초부터 빅딜을 위한 판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제품'을 이용하는 고객들을 상대로 몇 가지 지켜야 할 암묵적인 룰이 있었다.

그 중 가장 큰 부분이 이 섬에 대한 '정보'였는데, 신혼부부들이 묻는 질문 중에는 절대로 대답하지 말아야 할 몇 가지 질문들이 있었다.


1. "여기 핫 플레이스 어디에요?"

- 현지 가이드가 철저히 관리하는 루트가 존재하기 때문에 나는 어떠한 핫 플레이스도 말해주면 안 되었다. 내가 핫 플레이스를 말해주면 가이드가 원래 짜놓은 돈 되는 코스로 못 데려갈 확률이 높기 때문에 이 질문에는 매뉴얼이 존재했다. 나는 늘 앵무새처럼 말했다. "제가 여기 온 지 얼마 안되서요. 아직 저도 잘 모르겠어요."

- 그 섬이 국내에 국내에는 결코 유명하지 않은 곳이었기 때문에 정보가 거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처세가 가능했다.


2. "선물용으로 특산품 뭐 사야해요?"

- 이 질문이 가장 곤란했는데, 나 역시도 자유여행을 하면 그 동네 특산품을 많이 찾는 편이라 이 곳에서만 살 수 있는 것이라면 얼마든지 사갈 용의가 있었다. 그러나 이 질문이 가장 조심해야하는 질문이었다. 왜냐면 일정의 마지막에 존재하는 "빅딜"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질문이기 때문이다.

- 아직 신혼여행을 못 가본 내 입장에서는 추천해줄 만한 상품들이 무척 많았다.

- 그러나 이 고객들은 이미 국내 여행사가 예약할 당시에 비교적 싼 가격으로 왔기 때문에 나머지 금액을 현지 특산품을 사는 것으로 메꾸어야 했으므로, 일정 마지막에 존재하는 "쇼핑"에서 실적을 올려야 하는 것이 현지 가이드의 밥그릇이라 탑 시크릿 급의 질문이 이것이었다. 언제나 나를 긴장하게 만드는 질문이었다.


3. "이런 곳에 살면 정말 좋으시겠어요"

- 이 질문은 개인적으로 난해했다.

- 처음엔 이 질문에 무조건 "정말 좋아요"라고 대답했다. 좋았으니까.

- 언제나 절대적인 것은 없기에, 곧 난감해졌다. 하지만 언제나 나는 "좋아요"라고 말해야 했다. 나 역시 그러한 기대를 해왔던 시절이 있었으므로. 이 질문을 하는 이들이 듣고 싶은 답은 결국 "정말 좋아요"이기에 그 기대를 저버릴 권리가 나에게 있을까 싶었다. 그 환상을 깨고 싶지 않았다. 내가 이 이야기를 오랫동안 침묵으로 묵혀두었어야 했던 이유와 같았다.


4. "강사님, 저희는 진짜 괜찮으니까 저녁에 시간되면 같이 놀아요. 저희가 한 턱 쏠게요"

- 절대 안 되는 사항이었다.

- 놀다보면 위에서 언급한 금기 질문 1,2,3번 다 물어볼 게 뻔했다.

- 그리고 신혼여행인데 합류해서 함께 놀자고 말하는 사람들이 과연 있을까 싶지만, 생각보다 아주 많았다.


이 업계에서 가장 경계하는 커뮤니티가 존재하는데, 이 곳에 대해 올라오는 신혼여행 후기들을 굉장히 경계하는 편이었다. 하지만 사람들마다 가치관이 다 다르기 때문에 내가 뭐라고 말할 수 없다.

그건 현지에서 일하는 가이드들도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철저히 영업 마인드로 어떻게든 기분 좋게 만들어 빅딜을 최대한으로 성사시키는 것이 현지 가이드들의 최종 목표였다.


하지만 이 집단에서 한동안 지켜보다 느낀 것은 돈으로 누릴 수 있는 행복이 상당히 많다는 걸 알게 됐다.


처음부터 "저희는 쇼핑 안 할 거에요"라고 쐐기를 박거나 혹은 그럴 수 없을 행색의 신혼부부들에게는 딱 적당한 만큼의 서비스를 제공했고, 신혼부부들도 본인이 이 섬에 대해 가진 정보가 거기까지이므로 딱 거기까지인 신혼여행 코스를 누리고 돌아갔다.

(그럴 수 없을 행색이란 판단은, 주로 신혼부부들이 한국에서 예약해온 호텔의 급으로 지어졌다. 픽업 차량 예약이 연계되어 있었기 때문에 쉽게 알 수 있던 정보였다.)


하지만 빅딜에서 돈이 될 것 같은 고객들에게는 이야기가 달랐다.

이다지도 정보가 전혀 없는 섬에 대해 현지 가이드들은 당신이 기대하지 않았던 어떠한 경험도 하게 해줄 용의가 있었다. 돈을 위해서라면 비밀로 간직해 두는 어떠한 풍경도 마다하지 않고 공개를 하곤 했고, 그들에게 비밀이라는 포장지를 입혀 신혼여행의 기억을 더욱 특별하게 만들어주기 충분했다. 그리고 비밀은 누린 이들에게는 이것이 특권의식으로 작용해, 커뮤니티에 어지간하면 공개되지 않는 아는 사람들만 아는 식의 정보가 되버린 것 같다.


이러한 일련의 상호 작용을 지켜보면서

여태 행복은 돈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고 배웠지만, 내가 참 순진했구나 싶었다.


여러 제약들이 존재했지만 그럼에도 이 섬은 아름다웠다.


정식 사회생활이라곤 5년 간 몸 담았던 회사 뿐이라 이 곳에서의 생활은 모든 것이 아름답고 신기하고 새로운 일로 가득했고, 사무실에서 표정 없이 컴퓨터만 바라보던 동료들과는 달리 내가 매일 만나는 사람들은 언제나 웃고 있었다.


바다는 내 직장이 되었고, 웃는 사람들을 매일 만나는 일을 하고 있으니

이제 나도 매일 웃을 수 있겠구나 했다.


나는 순진할 만큼 순진하기 짝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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