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위험 산모는 재입원
비가 오고 갑자기 추워져서 그랬나. 찬 음식이라 조심하면서 안 먹고 있었던 아이스크림을 참지 못하고 먹었던 탓일까. 다시 진통이 찾아왔다. 21주에 첫 진통이 찾아왔으니 한 달만이다. 퇴원 이후로 간헐적으로 느낌이 있었지만 금세 없어지고는 했는데, 이번엔 밤 10시 넘어서부터 시작된 진통이 12시가 넘도록 진정되지 않았다. 조금 더 기다려 볼 수도 있었지만, 상황이 악화될지도 모르는데 불안한 마음을 가지고 기다리는 것보다. 매를 일찍 맞기로 했다. 바로 병원으로 향했다.
다시 시작되는 수축 검사와 진통 억제제 맞기는 이번에도 날이 밝아올 때까지 이어졌다. 보호자가 분만실에 들어가려면 환자가 입원한 상태여야 해서, 나는 병실에도 들어가지 못하고 차에서 잠깐 눈을 붙였다. 저번과 달리 마음은 편했다. 주사는 효과가 있었고, 입원한다고 큰일이 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도 안다. 마음속으로 다독인다. '또 조심을 못했네, 다음에는 더 조심해야겠어', '퇴원하지 못한다고 해도. 100일 정도 남았으니 이 정도는 병원에서 버틸 만 해. 걱정할 필요 없어'. 입원도 경력이라고 저번보다 여유가 있다.
날이 밝고 입원이 결정되자 필요한 물건부터 병원으로 옮겼다. 간식, 영양제, 속옷, 수건, 칫솔, 머리끈. 헤드폰, 아이패드, 충전기, 산모수첩, 마스크, 침구 그리고 가장 중요한 만화책도 챙겼다. 저번에 만화책을 병실에 두자마자 퇴원을 하게 되어서인지. 만화책은 일종의 부적이다. 만화책이 한가득 쌓여있으면 금방 퇴원할 수 있을 것만 같다. 요즘은 핸드폰이나 타블릿으로 만화를 볼 수 있지만. 핸드폰으로 만화를 보기에는 아쉽다. 만화책에는 입원 생활의 낭만이 있다. 어딘가 구수한 만화책 냄새와 테이블에 가득히 쌓여있는 만화책이 있으면, 여기가 만화방인지 병원인지 모르겠다. 만화방에서 마음의 평화가 찾아오는 것은 나만 그런 것일까.
어렸을 적 아내는 만화를 보다가 여러 번 혼났다고 했다. 나는 항상 명작 만화책을 못 본 유년의 아내가 안타까웠는데. 이번 기회를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기로 했다. 태교는 역시 만화다. 태교를 위한 만화이니 너무 잔인하거나 자극적인 만화는 제외했지만 그래도 봐야 할 명작 만화는 많았다. 급하게 개업한 병원 만화방에는 슬램덩크, H2, 신부이야기, 요츠바랑, 피아노의 숲이 있다. 나도 안 본 만화가 있어 같이 보고 있는데 나에게도 전화위복이다. 나는 이걸 왜 아직도 안 봤었지.
입원 중에 아내의 임신성 당뇨 검사가 있었다. 다행히 당뇨 수치는 정상 범위였지만, 빈혈이 생겼다고 했다. 철분 영양제도 잘 챙겨 먹고 있고, 입원 직전에는 수치가 괜찮았는데 병원 밥이 아내 입에 안 맞았나 보나. 보호자가 제대로 정신을 차리지 못한 탓이다. 아내가 입원하고서 며칠간은 내 생활이 무너졌다. 아내가 집에 없으니 집을 돌보지 못했다. 청소도 빨래도 설거지도 모르겠고. 집에 있어도 밥을 안 먹고 대충 때우기 일쑤였다. 병원에 가도 하는 일은 별로 없는데, 집에 돌아와도 집안일은 손에 잡히지가 않는다. 보호자는 이래선 안 된다. 옆에서 보호자가 잘 살아야 환자도 힘을 내서 병원 생활을 한다.
집에 돌아와서 청소를 하고, 빨래를 하고 설거지를 한다. 아내의 영양을 보충해 줄 간식을 주문하고. 도시락통을 주문하고 내일 병원에 챙겨갈 반찬을 챙긴다. 나도 같이 먹을 식단이다. 건강한 음식으로 내 몸도 같이 챙겨야 한다. 내가 병이라도 나면 그땐 정말 큰일이다. 아내의 입원 후로 못하고 있던 달리기를 하러 집을 나선다. 아빠가 튼튼해야 나중에 육아도 잘할 수 있다.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힘들 때 나를 지켜줄 근육도 미리미리 준비해야 한다.
오늘 새벽에 또 진통이 와서 다시 분만실 행이다. 저렴한 라보파로 버티고 있었는데, 효과가 크지 않아서 보험 안 되는 트랙토실로 바꿨다. 아내가 저녁에 설사를 했다는데 그 탓일 수도 있겠다. 뭐 하나만 잘못되어도 바로 수축이 진행되는 것 같은데, 마치 개복치가 된 듯하다. 쫑알이 이놈은 나중애 효도를 얼마나 하려고 우릴 고생시키는지 모르겠다. 고생시켜도 좋으니 두 달만 더 있다가 나오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