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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교사유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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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호우 Mar 25. 2023

어렸을 때 체육수업을 정말 죽도록 싫어했던 학생이

초등교사가 되어 노력한 일들



고백한다.


나는 어릴 적, 같은 반 아이들이 “선생님, 체육해요 !!!” 소리지를 때 '아 진짜 싫다’고 속으로만 생각하던 학생이었다. 향적이었기 때문에 혼자서만 생각하고 표현하진 않았다.


더 자라서는 체육이 두둥 ! 시간표에 적혀있는 날들이면

‘비가 와라, 비가 와라, 제발 그 날 비가 와라. 니면 체육 시간이 들은 해당 교시에만이라도 비가 와라’ 마음 속으로 간절히 빌곤 했다.



나는 운동회에서 아무리 있는 힘껏 달려도 1등, 2등, 3등 안에 들지 못했을 때, 흰색 띠를 온 몸에 걸치며 환호받는 이를 뒤에서 바라보며 달리고,이후 결승점에서 등수 순위대로 쪼로록 앉, 내 순위가 손등에 도장이 턱 하니 찍히고, 그것도 모자라 등수대로 차별적인 학용품 선물을 받았을 때, 그래서 정말로 최선을 다 했음에도 내가 받은 보상은 참가상 정도이거나 그것조차도 없을 때 좌절하고, 좌절하고, 또 늘 익숙해지지 않는 좌절을 경험하는 학생이었다.


철봉에서 매달려 앞구르기에 호기롭게 도전해보다가 친구들 앞에서 철봉에서 떨어져 왼쪽 손목으로 짚어 금이 가는 바람에 한 달을 깁스를 하고 다니던 학생,있는 힘껏 달려서 또 정말로 최선을 다해 점프를 했는데도 그 높다랗고 무서운 뜀틀에서 결국에 걸터앉거나 엉덩이가 모서리에 부딪치고 마는 학생,  엄청 아팠지만 몸이 아픈 것보다 부끄러운 게 더 싫었던 학생, 선생님은 자꾸만 계속 또 도전해보라고 하는데 '저는 정말 못해요. 정말 안돼요’라고  용기내어 말하고 싶었지만 그 말을 또 못해서 엉덩이에 불이 나던 학생이었다.





특히 그 중에서 가장 싫었던 것은, ‘피구’라는 종목이었다.



반 아이들이 두 팀으로 나뉘어 공격과 수비를 하는데, 나는 정말 그 딱딱한 공이 무서웠다. 무서움이라기보다 오히려 두렵고 공포스러웠다는 표현이 더 맞을것 같다. 민첩하고 날렵하게 휙휙 피하고 싶은데, 공은 결국에 내 등짝에, 허벅지에 날아와 자꾸 박혔다. 역시나 늘 그랬던 것처럼 몸도 아팠지만 마음은 더 아팠다.


 점프하고 자유자재로 피하고 심지어 공을 잘 잡고 곧바로 던지는 동작으로 이어 잘 하는 아이들은 늘 앞장서서 피구 경기를 주도했다. 그리고 그 중 어떤 아이들은 ‘공을 잘 맞힐 수 있는 친구’를 기가 막히게 잘 알았다. 운이 좋아서 잘 피해만 다니다가도 결국에는 발각될 위험이 있었고, 그러면 1명만 살아남는데 그것이 내가 되면 주목을 받는 게 싫어서 어쩔 땐 일부러 공을 맞고 경기장 선 밖으로 나갔다.  경기장 밖으로 나가면 나는 주체자, 참여자가 아니라 그저 관중으로서 경기를 지켜볼 수 있었다. 마음이 편하면서도 어쩐지 편치 않았다.


체육을 잘 하는 친구들은 선망의 대상이었다. 모두의 앞에 나가서 시범을 보이며 옆구르기를 심지어 세 번씩 돌고, 나는 단 한 번도 성공하지 못한 물구나무서기나 뒤구르기를 별거 아닌듯 아무렇지 않게 하며, 개인 단거리달리기에서 늘 1등을 하고, 심지어 학급대표나 학년 대표 계주 선수로 뽑혀 모두의 응원을 받으며 힘껏 달리는 아이들. 경기를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주체자가 되어 주도하는 아이들. 땀을 뻘뻘 흘리며 웃고 즐길 줄 아는 아이들. 나에게 그런 아이들은 마치 치타와 같고, 기린처럼 아름답고 멋졌으나 내가 할 수 있는건 아니었다.




***



그랬던 내가 초등교사가 되어 심지어 ‘체육’을 가르치는 입장이 되었다.


모든 과목을 가르쳐야 하는 초등교사가 체육을 싫어한다고 하여 안 가르칠 수는 없었고 그래서도 안 되었다. 그래서 내가 나름 노력했던 일들은 다음과 같다. 내가 싫어했던 것을 제거하는 방식이었다.


1.

아이들과 반드시 학기 초에 체육 교과서 목차를 살펴보고 훑어보며 각 영역별 학습 목표와 체육교과 핵심성취기준과 학습내용을 알아보았다. 체육시간이 노는 시간이나 경쟁만 하는 시간이 아니라 “더불어 학습하는 시간”이라는 것을 아이들과 함께 명심했다. 사실 이건 학기초 매번 치루는 나의 의식이자 다짐이기도 하다.


2.

팀 나누는 활동은 구성원 무조건 다양하게, 그리고 성비도 아무렇게나 섞어서 랜덤으로 하려 했다. 아이들끼리 뽑게 하거나 친한 학생들끼리 짜게 하거나 남녀구분 하지 않는다. 요즘에는 키순으로 줄세우기도 안하는 추세이므로 당연히 체급으로 나누지도 않는다. (그러고보니 나는 빠른 생일에, 초등학생 때는 키도 매우 작아 1번이었다. 동년배 아이들과 나는 체급이 달랐던 것이다!)

특히 가위바위보 해서 팀원 뽑아가는거 마지막에 남는 아이들은 조마조마해지는 마음의 상처이고 최악 중의 최악이므로 절대 하지 않는다.


그리고 혹시 가위바위보를 하더라도 늘 나는 “지는 팀, 지는 사람”에게 선택권을 준다.

ㅡ선생님, 왜 지는 사람이 먼저 골라요?

ㅡ이기면 기분이 좋고, 지면 선택할 수 있어서 좋지요!


3.

도전영역에서 달리기 등의 수업할 때는 등수 순위 매기기를 하지 않는다. (너는 1등, 너는 2등, 너는 3등이라고 굳이 말해주지 않는다는 뜻. 그리고 교사가 말하지 않아도 아이들은 스스로 서로 다 안다.) 물론 타이머로 재어가며, 개인기록을 자세히 알려준다. 자신의 경기 기록을 스스로 전후 비교하고 전략을 세우도록 독려한다. 달리기를 잘 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교과서를 살펴보고, 동영상도 보고, 설명도 해 준다.


말 그대로 도전영역이니까!



4.

딱딱한 공으로 ‘사람을 맞추며’ 하는 피구수업 정말 환멸나게 싫어했기 때문에 공만 던져주고 하라 하는 그 피구 (소위 아나공수업)는 절대 하지 않는다. 그리고 2015개정 체육과 교육과정부터 피하기형 경쟁(공 피하기), 즉 피구가 빠짐으로서 사실상 국가수준 교육과정에서부터 아예 사라진 것도 있기 때문에 근거도 생겼다. 교육과정 재구성으로 인해 말랑말랑 공으로 각종 변형 피구를 하는 경우도 있지만, 나는 굳이 피구를 자주 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은데,


체육활동을 더 하고싶더라도 실력이 부족하면 공 맞는 학생들은 ‘배제되는’ 수업, 공을 잘 다루는 ‘소수의’ 학생들만 실력 향상없이 경기를 주도하는 수업, 특히 ‘사람을 공으로 맞추는’ 수업이 인권적으로나 교육적으로나 맞는지 고민이 있기 때문이며, 무엇보다 ‘공’으로 하는 건 피구말고도 재미있는 것들이 무척 많기 때문이다. 또 그 딱딱한 피구공을 대체할 만한 체육교구들은 정말로 무궁무진하다. 무엇보다 체육 교과 역량에는 건강, 도전, 경쟁, 표현, 안전영역 다양한 영역이 있으므로 당연히 5개 영역을 균형있게 배분해야 한다.





5.

특히나 중요한 것은 안전 !

체육을 좋아하는 학생들도 있겠지만 안 좋아하는 학생들도 당연히 있을 것이며, 그걸 넘어서 심지어 두려워하는 학생들도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 중에 하나가 ‘다칠까봐’ 라고 생각한다.


체육활동에서의 안전은 대다수 교사들이 원래도 가장 신경쓰고 엄청나게 지도하는 부분이기도 하므로 준비운동과 정리운동 열심히 하기. 경기 규칙 잘 지키기. 두렵더라도 할 수 있는만큼 도전해보기. 반복 반복 계속 강조 지도한다.


특히 아이들에게 ‘두발 자전거 탈 때’를 예로 들어준다.

당연히 연습과정에서 넘어지고 삐뚤빼뚤 가고 심지어 다칠 수도 있지만 그런 과정이 있어야, 그리고 멈추지 않고 가야 드디어 자전거를 타고 바람을 가르는 희열이 있는 것. 몸으로 배우고 익힌 것은 엄청 잘 기억하기 때문에 꾸준한 연습과 그걸 지나 간 성공의 기쁨은 나만 아는 것. 그러니까 우리 같이 도전! 해보자.


6.

도전영역이나 경쟁영역에서 경기 또는 게임을 할 때는 신체활동 전 충분히 ‘이론적 설명’이나 ‘게임전략’을 함께 이야기해본다. 또한 이전뿐 아니라 이후에도 가지려 노력한다. 이렇게 하니까 실력이 향상되더라 서로 노하우 나누기 타임을 갖는 것이다. 체육을 하기 전 준비활동뿐만 아니라 체육활동이 끝난 ‘후 활동’도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혹시라도 체육활동을 하면서 마음이 상했던 부분이 있으면 꼭 해결하고 넘어가도록 한다. 상대방에게 나 전달법으로 직접 표현하기 어려울 경우, 선생님에게 도움을 요청하거나 신고하도록 한다. 활동을 하면서 어려웠던 점, 재밌었던 점, 좋았던 점, 고마웠던 사람, 다음에 하면 좋을 전략 등에 대해서 충분히 이야기를 나눈다. 교사가 설명하는 것도 물론 좋지만,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아이들은 다 발견할 줄 알고 나눌 줄 안다.


ㅡ공을 두려워하지 않고 끝까지 눈으로 보고 잡으려고 해봐요.

ㅡ빈 곳을 찾아요.

ㅡ공을 잡을 때 한 곳으로 너무 몰리지 않아요.

공 던지고 잡기 연습과 관련된 게임 활동을 했을 때, 우리 반 아이들이 서로 이야기하다가 아이들 스스로 찾아내고 공유한 전략들이다.



7.

또 강조하는 부분.

“ 잘하고 못하는거 중요하지 않다. 잘하면 노하우를 알려주며 독려해주고, 못하면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하기”를 계속 이야기한다.


교사는 아이들 신체활용능력 수준에 최대한 평균치에 맞추게 되고 (수준별 수업을 할 때도 있지만 30명 가까운 아이들을 일일이 하기에 버겁기도 하다) 그러다보면 잘하는 아이들 입장에선 재미없는 수업이 될 수가 있다. 그런 아이들에게는 코치나 팀장의 역할을 주기도 한다. 아이들은 그런 역할을 부여받으면 엄청 신나해하고 으쓱으쓱해 한다.


이와 더불어

“이기고 지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재밌게 하자!

그리고 준비, 과정, 결과에서 모두 공정하게 임하는 스포츠맨십을 기르자” 와 관련되어 이야기를 진짜 많이 나누려 한다.


좋는 스포츠맨십과 관련된 이야기들은 따끈따끈한 로서 수업를 매우 풍성하게 한다.


8.

교사는 서서 휘슬만 부는 심판만 하는 것이 아니라 감독, 코치, 안전요원, 각 종목 협회장, 단장, 심판, 응원해주는 사람, 때로는 함께 신체활동을 해주기도 하는 선수 역할까지도 해주어야 하므로 최대한 ‘아이들과 함께’ 바쁘게 움직이려 노력한다.


9.

마지막으로 한유미 배구 해설위원이 했던 말씀처럼 우리 반은 올해 “한 팀”이라는 것을 강조한다. 개인경기에서 경쟁을 하게 되더라도, 팀 경기에서 나누어서 경쟁을 하더라도



크게, 넓게 보면

우리는 모두 한 명도 빠짐없이 한 팀!



***


그러고 보니 학생 때 단 한 번도 시범이라는 걸 보여본 적 없던 내가 아이들 앞에서 핫둘셋넷 준비운동을 하고 아이들이 쪼로록 앉거나 서서 내 시범 몸짓을 따라하는거 보면 가끔 스스로 속으로 웃길 때가 있다. 내가 코치를 한다고? 내가 감독을? 아니, 내가 휘슬을 부르며 심판을 한다고? 어릴 적 나에게 지금의 내 모습을 보여준다면, 절대 믿지 못할것 같다.


늘 ‘학교 수업으로 하는 체육시간’에 소외당하거나 스스로 소외시키거나 서툴고 부족하고 못하고 해도 안되고 좌절하던 학생이었어서. 그리고 나중에는 나는 ‘나는 체육을 싫어해’로 나 스스로를 단정짓고 외면해왔던 학생이었어서. 나 이거 좋아하네? 하고 으른이 되어 발견했던 수영, 걷기, 등산, 자전거 이런 거 외에도 요즘 체육 시간에 하는 말랑말랑한 공들, 뉴스포츠 체육교구들, 다양한 변형게임들 보고있노라면 아이들만큼이나 나 까지도 환장하고 흥분하고 좋아하게 된다. 나도 이렇게 체육 수업을 했다면,  어쩌면 체육 시간을 엄청 좋아하는 어린이였을지도 몰라 상상하게 된다.


그러고보니 학생 때 학교라는 공간을 참 싫어했는데 매일 학교로 출퇴근하고, 학생 때 참 싫어했던 체육을 지금에 와서 오히려 재미있게 운동을 하고 있다. 생은 참 알 수가 없고 아이러니하다.



앞으로도 내가 가장 노력하고 싶은 일은 내 어릴 적 모습이 아니라 최대한 많은 아이들이 “체육 너무 좋아요! 하게 하는 것. (이건 사실 대다수의 아이들이 너무나 알아서 기꺼이 즐겨 한다.)


어쩌면 단 한 명이라도 나처럼 두려워하거나 무서워하거나 싫어하거나 스스로를 이미 어떤 틀 안에 규정짓고 단정지은 아이들에게도 "꼭 잘 하지 않아도 괜찮아, 도전해보는 것만으로도 의미 있어. 우리 같이 해 보자, 경험하고 참가해보자, 온 몸과 온 마음으로 느껴보자, 하다보면 뭔가를 발견할지도 몰라."하고 손 내밀어보는 것.


그래서 최대한 단 한 명도 소외되지 않도록,  여러 영역을 다양하게 넘나들며,  즐겁게 참여하고 도전해보는 체육시간이 되도록 앞으로도 노력하려 한다.


이것 또한 나의 도전 !


그리고 이 모든 것은 어쩌면 어릴 적 체육수업을 죽도록 싫어했던 과거의 이호우에게 미래의 이호우가 보내주는 넓다랗고 기다랗게 나풀대고 너울지며 펼쳐지는,


아름다운 흰 색 띠이다.






이호우 2021.8.5

사진 ©olympic _ The official Korean account for the Olympic Ga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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