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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라 May 14. 2019

너무 한낮의 댄스파티 1

어마 무시한 더위도 쿠바노들의 춤을 멈추게 할 수 없어!

 걷다.

쿠바 트리니다드를 걷다.

 

 트리니다드 두 번째 날이었다. 양손에 물과 망고를 들고 땅에서 올라오는 후끈한 지열과 내리쬐는 햇빛에 지쳐 숙소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귓속으로 새어 들어오는 신나는 라틴음악소리에 시선이 오른쪽으로 돌려졌다. 아이보리색 건물 내부에서 어떤 행사를 하고 있는 듯했다. 아이들과 어른들은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고 있었다. 내부도 모자라 바깥에 나와 풍선 하나씩 들고 춤을 추는 아이들도 있었다. 내심 그들 행사에 초대되길 바라는 마음을 품은 채 구경하고 있는데, 사람들이 활짝 웃으며 들어오라고 손짓을 한다. 오예! 들어오라는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얼른 들어갔다. 원하는 순간에 초대됐을 때 우물쭈물 망설이는 시간은 내겐 사치였다.

어마 무시한 쿠바의 더위는 쿠바노들의 춤을 멈추게 할 수 없었다.

 20평 남짓의 작은 교회는 사람들로 초만원이었다. 어른, 아이 가릴 것 없이 현란하고도 우아한 곡선을 내뿜으며 춤을 추고 있었다. 망고 2개와 물 1.5리터를 품고 리듬을 타다가 결국 흥을 참지 못하고 의자에 덜렁 내려놓았다. 본격적인 댄스타임이 시작됐다. 그들의 춤을 따라 추기도 하고, 그들이 내 춤을 따라 추기도 했다. 아이들이 건넨 풍선 받아 풍선을 마구 흔들며 춤을 추기도 했다. 평상시에 축적된 다부진 흥과 여유로운 움직임을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하지만 자신만의 느낌으로 춤과 리듬을 즐기는 쿠바노들 덕분에 주변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춤을 추고 있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아이들과 함께 사진을 찍고 놀았다. 본인의 사진을 보며 제자리에서 방방 뛰는 아이들을 보면 내 마음도 한껏 들뜨곤 했다.

 사십 분쯤 지났을까. 지애 언니와 나는 지쳤다. 에어컨도 없는 무더운 트리니다드 작은 건물 안에서 한 시간 이상 춤을 추는 건 무리였다. 다음에 또 놀러 오겠다고 교회 사람들과 인사를 하고 나왔다. 인기척이 느껴져 뒤를 돌아보니 Elice가 고개를 빼꼼 내밀고 손을 흔든다. 지애 언니와 내가 손 하트를 만들어 보여주자, 수줍은 표정으로 엉성한 손 하트를 내밀었다. Elice는 교회 들어가기 전에도 자신의 풍선 하나를 떼어주며 수줍게 다가온 친구였다. 같이 풍선을 들고 춤을 출 때도, 사진을 찍을 때도 옆에 와서 손을 잡던 친구였다. 마음이 통하는 기분이 들게 만든 나의 트리니다드 친구 Elice.

떠나는 내 뒷모습을 지켜봐주는 사람의 잔상은 오래 남는다. 그래서 내가 소중한 이를 떠나 보낼 때 유독 그 자리에 길게 남아 있는 지도 모르겠다. 날 오래 기억해달라는 뜻이었다.

 숙소에 돌아왔다. 방에 들어오자마자 침대에 누워 에어컨 바람에 땀을 식히고 있었다. 교회 사람들과 함께 찍은 사진을 넘겨보며 언니와 더운 것 빼고 너무 완벽한 하루를 보내지 않았냐고 너스레를 떨었다. 사진을 다 넘겨보고 폰을 머리맡에 두었다. 그들에게 무언가 해줄 수 있는 게 없을까 골똘히 생각하고 있을 즈음이었다. 옆 침대에 누워있던 지애 언니가 말했다.


“호영아. 우리 교회에 기부를 하는 게 어때?”

 그 말을 듣는 순간,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기쁨이 스치는 표정과 함께 좋다는 말을 건넸다.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던 지애 언니! 쿠바에서 처음 만나고 같이 지낸 지 일주일도 채 되지 않았던 언니와 대화하다 보면 기이한 현상을 경험하곤 했다. 동시에 같은 말을 내뱉을 때가 잦았던 건 물론이고, 비슷한 가치관과 생각을 가지고 있어서 대화중에 화들짝 놀랄 때가 많았다. 본인이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타인에게 깜짝 놀랄만한 선물을 준비하는 시간을 소중히 여긴다는 점도 닮아있었다.

내 침대와 지애 언니 침대. 비슷한 아이템 투성이었다. 노란 라임색과 노란색을 좋아하는 것, 디자인이 똑같은 검은색 쪼리, 건강식품은 가지고 다니지만 먹지 않는 것조차 닮아있었다.

 그날은 맛있는 저녁을 먹으며 기부 프로젝트에 대해 의논했다. 자기 전까지 교회 아이들에게 어떤 선물을 하면 좋을지 흐뭇한 고민을 했다. 앞으로 함께 할 언니와의 무수한 순간들 중 진하게 반짝일 장면이 연출될 거라는 생각에 설레기 시작했다. 여행 중엔 예측하지 못한 곳에서 행복이 불쑥 튀어나오곤 했다. 물론 그에 반하는 일도!



듣다.

Blilie Holiday의 Let’s Do It을 듣다.



*자주 읽고, 가끔 씁니다.

@hoyoungj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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