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인공지능과 창의성

창의력에 대한 단상 2

by 브로카

2016년 3월, 전 세계가 TV 앞에 모여 알파고와 이세돌의 대국을 지켜보았다. 인간의 자존심과 인공지능이 처음 충돌한 순간이었다. 우리는 이세돌의 승리를 당연하게 여겼다. 마치 아이들의 학예회를 바라보듯, 기술이 어디까지 왔는지 관망하는 마음이었다. 그러나 첫 판부터 알파고는 인간을 압도했다. 대국이 거듭될수록 우리는 어딘가 통신 오류라도 일어나 인공지능이 실수하길 바랐던 것 같다. 그 감정은 비단 나만의 것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리고 10년이 채 지나지 않은 지금, 인공지능은 이미 우리 일상 깊숙이 들어왔다. 누구나 이미지와 음악을 만들고, 글을 쓰고, 즉각적인 답을 구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AI에 대해 여전히 냉정한 잣대를 들이댄다. 할로시네이션 현상이 한 번이라도 드러나면 “역시 아직 멀었지”라고 말하며 안도한다. 기술의 결함이 인간 존재의 당위를 증명해주는 듯한 착각 속에서.


최근에는 ChatGPT가 개인의 아이디어 품질을 높이는 한편, 집단의 다양성을 줄인다는 실험 결과도 등장했다. 보고서는 그럴듯해 보였지만, 나는 그 전제 자체가 어딘가 기울어져 있다고 느꼈다. 인간의 우월성을 확인하고 싶은 무의식적 욕망이 작동한 것은 아닐까. 이 실험은 AI의 한계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인간의 불안을 보여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여전히, 알파고가 실수하길 바랐던 그때처럼, 지금도 AI가 ‘틀리길’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낯선 미래에 대한 디스토피아적 두려움이 그런 마음을 만드는 것일지도 모른다.


AI는 이제 되돌릴 수 없는 세계의 흐름이 되었다. 설령 국제법으로 동시에 금지한다 해도, 이 기술은 마치 근절되지 않는 마약과 같이 누군가에게 악용될 지 모른다. 기술이 정교해질수록 우리는 인간만의 영역이라 믿어온 창의성이 봉인될까 봐 두려워하는 것은 아닐까.


이쯤에서 감정의 층위를 잠시 내려놓고, 우리가 말하는 ‘창의성’의 구조를 차분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AI는 방대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가장 확률이 높은 답을 산출한다. 그래서 그 결과는 대체로 인간 사고의 ‘평균값’과 비슷하게 보인다. 이때 사람들은 “역시 인공지능은 창의적이지 못하군”이라며 인간의 우월함을 재확인하려 한다.


하지만 이 판단에는 미묘한 모순이 숨어 있다. 우리는 AI가 관습에서 벗어난 답을 내놓기를 기대하면서도, 막상 그와 다르게 말하면 “신뢰할 수 없다”고 비판할 것이다. 아마도 사람들이 바라는 것은 ‘평균을 넘어서지만, 비정상적이거나 위험할 정도로 다르지 않은’ 결과인 것 같다.


즉, 문제는 AI의 창의성이 아니라 우리가 어떤 차이를 허용할 수 있는가에 있다. 기대와 비난이 교차하는 이유는 AI가 아니라, 인간이 가진 모순된 요구 때문이다.


창의성은 원래 절대적 가치가 아니다. 누군가 그 결과물을 ‘새롭고 적절하다’고 판단할 때 비로소 성립하는 상대적 개념이다. 창의적이라는 말은 대상의 속성이 아니라, 수용자의 인식이 내리는 판단에 가깝다. 이 기준 위에서 보면, AI는 표현을 만들어내는 생성자에 가깝고, 그 결과물에 의미와 가치를 부여하는 판단자는 여전히 인간이다. AI가 새로운 조합을 제시하더라도,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는 주체는 인간이다.


따라서 인간만이 창의적이라는 믿음에 갇히는 것은, 다가오는 미래를 이해하는 방식으로 적절하지 않다. 창의성은 인간과 AI가 경쟁하는 자리가 아니라, 서로 다른 능력이 교차하며 확장되는 지점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