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재용,「정서적 연봉」
나는 석사과정에서 산업 및 조직심리학을 전공했다.
허즈버그의 2요인 이론(위생-동기이론), 데시와 라이언의 자기결정성 이론 등 기본적인 심리학 이론을 쉽게 다루고 있어서 친숙하게 읽혔다.
서울대학교 경영대학 신재용 교수(저자)는 하나의 질문을 던진다.
사람은 왜 어떤 직장에서는 몰입하고, 어떤 직장에서는 이탈하는가. 저자는 그 답을 '정서적 연봉'이라는 개념으로 풀어낸다.
금전적 보상 외에 직원이 직장에서 경험하는,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인정받는다는 느낌, 성장하고 있다는 감각, 함께 일하는 사람들에 대한 신뢰 등 여러 가지 심리적 요인이 쌓여서 누군가에게는 "이 회사를 떠나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된다고 설명한다.
저자의 설명을 따라가며 "맞아, 이거였는데"라는 말이 자꾸 나왔다. 안다는 것과 실무에서 적용한다는 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였고, 한동안 많은 걸 잊고 있었다.
저자는 허즈버그의 위생-동기이론을 기반으로 급여, 근무 환경, 규정과 같은 요소들을 위생요인으로 설명한다. 충족되지 않으면 불만을 만들지만, 충족된다고 해서 사람이 일에 몰입하게 되진 않는다. 반면 성장, 인정, 의미 있는 일과 같은 동기요인은 충족될수록 실제 몰입으로 이어지며, 저자는 HR 실무를 이론에 연결하여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우리가 열심히 설계하는 복리후생과 같은 규정의 많은 부분이 사실은 위생요인의 영역이라는 것이다.
이 부분을 읽으며 멈칫했다.
입사 후 처음 1인 HRer로 시작하여 여러 동료들을 만나기까지 정말 숨 가쁘게 지내왔다. 채용부터 노무, 평가, 교육, 문화까지 인사/총무 전 영역을 아우르며 기존의 것을 새롭게 구조화하고, 제도를 만들어 도입하고 안착시키며 지속적으로 보완하는 일을 반복해왔다. 특히, 2024년부터 2025년은 인사제도에 큰 변화가 많이 있었던 시기였고, 새로운 기준을 수립하고, 각종 제규정 문서를 끊임없이 생성·보완하다 보니 어느 순간 평가 기준을 정교하게 만드는 것, 규정 문서를 빈틈없이 정리하는 것, 프로세스를 빠짐없이 구조화하는 것이 담당자에게 가장 중요한 것처럼 느껴지던 시기가 있었다.
그때 대표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다.
"일 잘하는 사람이 계속 일을 잘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세요."
꽤나 심각한 얼굴로 긴 보고를 하고 있던 나를 한순간에 멈추게 만든 한마디였다.
나는 제도만 바라보고 있었는데, 대표님께서 원하시는 건 환경이었다. 규정 문서가 아니라 그 안에 담겨야 할 원칙과 맥락이었다. 그 순간 이후로 인사제도 안에서 위생요인과 동기요인을 구분하고, 더 집중해야 할 동기요인이 무엇인지 찾기 시작했다. 이것이 인사제도를 만드는 인사담당자의 다음 질문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데시와 라이언의 자기결정성 이론은 개인적으로 많이 공감하는 이론으로 이 책에서도 중요하게 다룬다. 사람은 자율성, 유능감, 관계성 세 가지 욕구가 충족될 때 내재적 동기가 높아지는데, 저자는 특히 유능감에 주목한다. 내가 일을 잘할 수 있다는 감각, 그리고 그 일이 의미 있는 일이라는 인식이 없으면 사람은 움직이지 않는다고 말한다.
나는 이 이론이 실제 작동하는 장면을 직접 목격했다.
과거에 총무와 인사 운영 업무를 함께 맡은 팀원이 있었다. 신규 팀원을 채용하기 전부터 인사/총무 파트의 R&R을 현재와 미래의 상황에 맞춰 재설계하고, 우선순위까지 명확하게 설정했다. 채용 과정부터 입사 초 원온원까지 충분히 Sync를 맞췄다고 생각했는데, 그 팀원의 경우 인사 운영 업무에는 공을 들이면서도 사무실 정돈과 같은 기본적인 업무는 잘 수행되지 않는 게 반복되었다. 그렇게 두 달 정도 시간이 지났을 때 '할 만큼 했다'라는 생각이 들고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순간, 그제서야 생각의 전환이 되었다. 이건 '이해'의 문제가 아니라 '동기'의 문제일 수 있다는 것이다.
당시 나도 미숙한 중간 리더였기에, 그 팀원을 '코칭이 필요한 대상'으로만 생각한 것이 실수였다. 물론, 신규 입사자이기에 많은 부분에서 코칭이 필요한 것은 맞았지만, 그만큼 중요한 것이 내재적 동기라는 걸 순간 잊고 있었다.
그 뒤로 새로운 방식으로 원온원을 진행하며 본인이 기대하는 것과 하고 싶은 것을 들었다. 그 팀원은 욕심과 열정이 많은 사람이었다. 다만, 더 많은 기회를 얻고 싶다면 현재 담당하는 기본 업무를 100% 잘 수행하며 조직의 신뢰를 먼저 얻는 것이 필요하다고 설명하였다. 이는 '해야 하는 일'을 '하고 싶은 일'로 연결하여 자율성과 유능감을 자극하는 동시에 팀과 방향을 맞추는 방법이었다.
그 뒤로 상황은 달라졌다. 다른 팀 동료들로부터 그 팀원을 칭찬하는 소식이 들려왔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해당 팀원은 담당 업무에 스스로 자부심을 갖고 일하는 구성원으로 성장해 있었다.
잘 만든 제도와 기준은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이 아니었다. 사람을 움직이는 건 결국 동기였다.
저자는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의 리뷰 데이터를 분석하여 상당히 많은 부분을 뒷받침한다. 여러 기업의 방대한 데이터를 통해 설명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흥미로웠지만, 전공자의 시선에서는 구조적인 한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익명 플랫폼에서의 발화는 불만이 있는 사람이 불만글을 쓴다는 점에서 선택적 편향(Selection Bias)이 있으며, 만족하는 사람들은 글을 쓰지 않아 데이터에 집계되지 않는 무응답 편향(Non-response Bias)이 있을 수 있다. 물론 저자는 이러한 부분을 명확하게 한계점으로 짚으며, 이를 고려한 통계 분석과 결과 해석을 하고 있다. 나 역시 이 데이터로 도출한 결론은 '직장인의 평균적인 경험'이라기보단 '이직 의도가 있는 직장인의 평균적인 경험'에 가까울 수 있다고 생각한다. 책 속에 담긴 통계 결과를 보편적인 진실보다는 심리학 이론을 뒷받침하는 사례 중 하나로 이해하고, 숫자보다 그 해석의 맥락(context)을 함께 보는 것이 필요하다.
그럼에도 이 책이 유효한 이유는 따로 있다. 이론을 실무 언어로 번역하는 방식이 탁월하다. 자기결정성 이론을 '신뢰 문화 아래 자율성 부여'로, 위생요인을 '복지 설계의 함정'으로, '심리적 안전감을 리더십의 구조적 문제'로 연결하는 흐름은 현장에서 바로 적용할 수 있는 언어를 준다. 이론과 현장 사이 어딘가에서 늘 길을 잃는 HR 실무자에게 이 책은 유의미한 나침반이 될 수 있다.
이 책을 읽으며 새로운 것을 배웠다기보단, 알면서 실무에 파묻혀 흘려보냈던 것들이 한 번에 돌아오는 느낌을 받았다. 저자의 말처럼 정서적 연봉은 공기와 같은데, 난 그 공기의 존재를 잊고 지난 몇 년간 파이프라인을 정비하는 일에 몰두했다.
저자는 2050년이면 청년 인구가 지금의 절반으로 줄어들고, 젊은 인재가 희소 자원이 되는 시대에 정서적 연봉이 낮은 기업은 인재 전쟁에서 도태될 것이라고 단언한다. 높은 정서적 연봉은 더 이상 선택이 아닌 생존의 조건이라는 것이다.
나는 이 말에 동의하면서도 한 가지를 덧붙이고 싶다. 정서적 연봉을 높이는 것은 경영진이 결정한다고 되는 일은 아니다. 이론을 실무 언어로 바꾸고, 조직의 문제 상황을 내부인인 동시에 외부인의 시선으로 구조화하여 문제 해결에 적합한 제도를 만드는 것, 그리고 그것이 구성원에게 실제 경험으로 닿을 수 있도록 전달하는 것까지 큰 구조를 설계하는 사람이 필요하다. 특히 AI가 업무 현장에 깊숙이 들어오고 있는 지금, AI가 사람보다 규정 문서를 잘 만들고, 데이터 분석을 기가 막히게 잘 해도, 조직의 맥락을 읽고 사람의 동기를 설계하는 일은 여전히 사람의 몫이다.
복잡한 문제 상황을 조직의 언어로 번역하여 우리 조직만의 해결책을 만드는 것이 HR의 역할이기에, HR은 AI가 대체할 수 없는 번역이다.
2026년 1분기를 이 책과 함께 시작하였는데, 올해 새롭게 집중하고 있는 부분들은 앞으로 [나의 HR 이야기]에서 풀어가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