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낸 골딘, 모든 아름다움과 유혈사태>
영화를 볼 때, 저는 자주 영향적 감상에 빠지곤 합니다. 영향적 감상은 '나를 변화시킬 만큼 큰 영향을 주는 영화 감상'이라는 뜻인데요. 영화에 감명을 받고 마음을 다잡는 일이 너무 많아 제가 지어낸 말입니다. 이번에도 역시 그랬습니다. 사진을 아끼는 사람이기에 이번 영화는 제게 특히 더 많은 영향을 주었죠.
사진의 힘은 위대합니다. 사진을 훑는 것만으로 기억의 파편들은 이야기로 재생됩니다. 그리고 여기, 모든 아름다움과 유혈사태의 파편들을 사진으로 담은 한 사진작가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 씨네랩으로부터 초청받은 <낸 골딘, 모든 아름다움과 유혈사태> 시사회를 통해 영화를 감상했습니다. <낸 골딘, 모든 아름다움과 유혈사태>는 2024년 5월 15일 국내 개봉 예정작입니다.
낸 골딘, 모든 아름다움과 유혈사태
All the Beauty and the Bloodshed
언니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후, 사진은 나의 유일한 언어였다. 나는 생생하게 반짝이는 뉴욕에서 죽어가는 친구들의 아름다운 모습을 포착했고, 있는 그대로의 내 얼굴을 솔직하게 담아냈다. 이제는 내 모든 명성을 걸고 거대 제약회사에 맞서 싸운다. 생존과 투쟁의 기록이 담긴 나의 일기장을 당신에게 펼쳐 보인다. (출처: 씨네21)
감독: 로라 포이트라스
낸 골딘은 다큐멘터리 사진작가입니다. 거장이나 대가라는 칭호가 아깝지 않은 엄청난 분이죠. 그런 그가 미술관을 돌며 시위를 벌입니다. 그중에는 자신의 작품을 전시했던 미술관도 있고, 곧 자신의 회고전을 열 미술관도 있습니다. 낸 골딘은 개의치 않는다는 듯이 미술관 바닥에 약통을 뿌리고, 바닥에 드러누워 죽은 시늉을 합니다.
그의 저항 운동은 제약사 퍼듀 파마와 그 배후에 있는 새클러 가문을 향합니다. 퍼듀 파마는 '옥시콘틴'이라는 진통제를 만든 회사입니다. 옥시콘틴은 가벼운 고통을 느끼는 환자에게도 의사가 쉽게 처방해 주던 약이었죠. 하지만 이 약은 퍼듀 파마가 매출을 높이기 위해 만든 마약성 진통제였습니다. 퍼듀 파마는 부작용을 은폐하고, 거짓 광고로 현혹하고, 공격적인 영업으로 판매를 촉진했죠. 옥시콘틴을 처방받은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마약에 중독됐습니다. 옥시콘틴은 판매가 금지되기 전까지 무려 720억 정이 팔렸으며, 이로 인해 2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퍼듀 파마를 운영하는 새클러 가문은 옥시콘틴으로 벌어들인 돈을 예술계에 후원함으로써 이미지를 세탁했습니다. 전 세계 곳곳의 미술관에 기부금과 후원금을 제공한 덕에,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구겐하임 뮤지엄, 루브르 박물관 등 유수의 미술관에 이른바 '새클러 갤러리'라는 이름을 건 전시관이 개관했습니다. 예술을 방패 삼아 탐욕의 벽을 쌓아 올린 새클러 가문의 악명을 알리기 위해서는 내부자의 힘이 필요했습니다. 예술계를 움직이는 내부자의 힘, 이를 발휘한 사람이 바로 낸 골딘이었죠.
낸 골딘은 사진작가로서 쌓아온 자신의 명성을 이용했습니다. 위대한 사진작가의 전시를 유치해야 하는 미술관의 입장에서 그를 적으로 돌리는 것은 매우 곤란한 일이었죠. 미술관들은 하나둘 새클러 가문의 후원을 거부하고, 갤러리에서 새클러의 이름을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낸 골딘이 새클러 가문에 대한 저항 운동을 펼치고 있는 것은 그 역시 옥시콘틴을 복용했다가 약물에 중독된 당사자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명성까지 거침없이 이용하는 그의 저항력이 오직 당사자성에서 비롯된 것은 아닙니다. 시간의 흐름과 함께 중첩되어 온 그의 과거가 저항력의 힘과 크기를 키운 것이었죠. 영화는 낸 골딘의 현재와 과거를 오가며, 강력한 저항력의 출처를 탐색해 나갑니다.
언니의 자살 이후, 어릴 때부터 바깥 생활을 전전해 온 그는 소외된 자들과 함께 생활했습니다. 베스트 프렌드들은 대부분 사회에서 터부시되던 성소수자였고, 그 역시 그랬습니다. 낸 골딘은 무언가를 억지로 꾸며내 프레임에 담기보다는 자신의 일상을 고스란히 포착하는 편을 택했습니다. 그에게 사진은 표현의 두려움을 대신할 도구이자 해방처이기 때문이었죠. 낸 골딘은 일상의 모든 아름다운 면과 유혈사태를 가감 없이 사진에 담아냈습니다.
내밀한 일상을 거리낌 없이 드러내는 방식은 자연스럽게 소외된 자를 드러내는 예술적 표현이 되었습니다. 그는 과거에서부터 현재까지 예술과 예술가만이 할 수 있는 저항을 실천해 온 셈입니다. 사회에서 보이지 않는 것을 드러내고, 사회에서 바뀌지 않는 것을 바꾸는 것. 정해진 답을 따르는 것은 예술가의 행보와 어울리지 않지만, 낸 골딘이 포착한 기억의 파편들을 보다 보면 '예술가는 이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물씬 밀려옵니다.
어떠한 행운 또는 불운의 결과로 제게도 권력이 생긴다면, 저도 낸 골딘과 같은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쌓인 기억의 파편으로 저항력의 힘과 크기를 키운 사람, 자신의 명성을 이용해 메시지에 힘을 더하는 사람, 권력을 권력답게 쓰는 사람 말입니다.
지금껏 자주 카메라를 들고 다니며 사진을 찍었지만, 항상 예쁘고 멋진 순간만 포착하려 하지 않았는지 돌아보게 됩니다. 낸 골딘이 그러했듯이, 있는 그대로의 일상에서 숨은 이야기를 발견하고 싶어졌습니다. 영향적 감상 끝에, 평소와는 조금 다른 마음가짐으로 가방에 카메라와 삼각대를 넣어봅니다.
예술의 가치는 표현의 자유에서 오고, 표현의 자유는 예술을 저항의 도구로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