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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자까 Aug 14. 2024

미셸 공드리, 이런 사람이었어?

영화 <공드리의 솔루션북>

몇 달 전, '미셸 공드리가 좋은 5가지 이유'라는 제목의 영화 리뷰를 쓴 적이 있습니다. 영화감독 미셸 공드리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보고 쓴 글이었지요. 그리고 이번에는 미셸 공드리의 자전적 이야기를 담은 극 영화를 보았습니다.


<공드리의 솔루션북>은 제작자와의 의견 충돌로 숙모 집으로 도망친 영화감독 '마크'의 이야기입니다. '마크'는 그곳에서 자신의 스태프들과 함께 영화를 더 창의적이고 매력적으로 만들기 위해 갖가지 아이디어를 떠올리고 실행하죠. 책을 좋아하는 사람은 책에 관한 책을 좋아하고,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은 영화에 관한 영화를 좋아하는 법입니다. 게다가 그걸 미셸 공드리가 만들었다면? 보지 않을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 씨네랩으로부터 초청받은 <공드리의 솔루션북> 언론/배급 시사회를 통해 영화를 감상했습니다. <공드리의 솔루션북>은 2024년 8월 14일 국내 개봉작입니다.


공드리의 솔루션북
The Book of Solution


Summary 

영화감독 '마크'는 자신의 새로운 걸작이 제작자들 때문에 망할 위기에 처하자 컴퓨터를 통째로 들고 숙모가 있는 마을로 탈출한다. 머릿속에 쏟아지는 아이디어들을 하나씩 실행하기 시작하는 '마크'. 세계가 인정한 천재 감독과 세상에서 가장 한심한 감독을 동시에 해내는 그는 영화의 완성이 늦어지자, 모든 문제에 대한 해결책이 될 수 있는 ‘솔루션북’을 꺼낸다. (출처: 씨네21)

Cast 

감독: 미셸 공드리
출연: 피에르 니네, 블랑슈 가르댕 외


자기 조롱을 잔뜩 묻혀 만든 캐릭터


미셸 공드리 다큐멘터리를 보고 저는 이렇게 썼습니다. 


<미셸 공드리: 스스로 해라>는 영화감독 미셸 공드리와 10년간 함께한 조감독 출신 프랑소와 네메타 감독의 작품입니다. 그래서인지 이 영화에는 미셸 공드리를 향한 애정이 잔뜩 묻어있습니다.


프랑소와 네메타 감독이 담아낸 미셸 공드리를 보며, '장점이 많다, 창작을 사랑한다, 비상하다, 결단력이 있다, 귀엽다'라는 저만의 '미셸 공드리가 좋은 5가지 이유'를 추려내기도 했지요. 


<미셸 공드리: 스스로 해라>가 주변인이 바라본 미셸 공드리를 담은 영화였다면, 이번 작품은 미셸 공드리 자신이 바라본 미셸 공드리를 담은 영화입니다. 자기 자신이 생각하는 성격과 주변인이 생각하는 성격이 다르다는 말이 있지요. 그래서일까요? 누가 봐도 미셸 공드리를 떠올리게 하는 주인공 ‘마크’는 누구보다 창작을 사랑하고, 비상하며, 결단력 있는 사람이긴 하나, 장점이 많고, 귀여운 사람인지는 영 아리송합니다.


미셸 공드리, 아니 ‘마크’는 기분대로 행동하고, 오만하고, 변덕스럽고, 이기적이고, 속 좁은 인물입니다. 천재인 건 분명해 보이나, 그만의 예술이 탄생하기까지의 과정은 기행에 가깝죠. 잠자고 있는 사람을 깨워서 녹음실을 예약해달라고 하지 않나, 기껏 만든 편집본은 죽어도 안 보겠다고 징징거리지 않나. 제가 ‘마크’의 스태프였다면, 언제나 사직서를 가슴에 품고 살았을 겁니다. 아니, 이게 미셸 공드리의 본모습이라니요.


그런데 마음속에서 영화를 숙성하며 곰곰이 반추해 보니, 문득 이것만큼 대단한 시도가 없다는 생각에 미치더군요. 자기의 흠을 있는 그대로, 혹은 더 과장하여 드러내는 것. 저는 아무렇게나 끄적여도 상관없는 블로그와 브런치에 글을 쓸 때도 과하게 자기 검열을 합니다. 혹시 나의 흠이 드러나지는 않을까, 얼마나 많은 되새김질을 하는지 모릅니다. 하물며 일기장에도 아무렇게나 마구 써대는 것을 쉬이 용납하지 못합니다. 내 마음에 차지 않는 걸 써내고 만들 바에야 아예 시작조차 하지 않는 걸 택하기도 합니다. 누구에게나 결함은 있는 건데 말입니다.


미셸 공드리는 ‘마크’를 “자기 조롱”의 방식으로 표현했다고 밝혔습니다. 그것이 얼마나 멋지고 대단한 일인지 몇 개의 글을 썼다 지우고 나서야 깨달았습니다.




미셸 공드리가 못남을 드러낸 이유


<공드리의 솔루션북>은 영화를 만드는 과정에서 부딪히는 문제를 ’마크‘가 자신만의 해결 방법으로 헤쳐 나가는 이야기입니다. 그 해결 방법들은 자신만의 ‘솔루션북’에 차곡차곡 쌓여가죠. 영화 속에 등장하는 해결 방법들은 미셸 공드리의 실제 삶을 담은 다큐멘터리에서도 여러 번 등장한 적이 있는 원칙들입니다.


‘계획을 실행하라’, ‘하면서 배워라’, ‘남의 말을 듣지 마라’로 흘러가던 천상천하 유아독존 해결 방법은 예상치 못하게도 ‘남의 말을 들어라’로 끝을 맺습니다. 미셸 공드리가 기분대로 행동하고, 오만하고, 변덕스럽고, 이기적이고, 속 좁은 예술가의 기행에 서사를 부여하려고 이 영화를 만든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는 지점이지요. 기행을 부리는 사람이 ‘예술가’로서 박수받으려면 결국 곁에 있는 사람이 가장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전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 또한 그러했다는 것이고요.


어쩌면 그는 자기 조롱으로 가득한 이 영화를 통해 ‘미셸 공드리’라는 이름에 쏟아지는 영광도 혼자 힘으로는 불가능했던 것이라며, 주변인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제가 미셸 공드리의 스태프였다면, 아마도 이 영화를 보고 사직서를 갈기갈기 찢어버렸을 것 같습니다.




미셸 공드리가 자신을 투영한 영화감독의 이야기를 만드는데, 그만의 독특한 크리에이티브를 빼놓았을 리 없지요. <공드리의 솔루션북>에도 역시 내러티브에 에너지와 웃음을 더하는 참신한 영화적 장치들이 속속 들어 있습니다. 특히 좋았던 건, 부끄러워 땅굴 속에 숨어버리고 싶다는 은유적 표현을 냅다 현실에 구현해 버린 엔딩과 영화 중간에 삽입된 여우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입니다. 미셸 공드리는 이름난 영화감독이 되고 나서도 여전히 종이를 오려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걸 즐긴다고 하지요. ‘마크’의 모습으로나마 그 과정과 결과를 볼 수 있어, 공드리 팬으로서 참 좋았습니다.


One-Liner

기발한 영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얼마나 기상천외한 일들이 벌어져야 하는지 기발한 방식으로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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