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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자까 Nov 23. 2022

금기를 어긴 자, '이것'을 벗어날 수 없다

영화 <세이레>

저는 머리를 감을 때 절대 눈을 감지 않습니다. 눈을 감고 머리를 감으면 귀신이 자기 머리카락을 갖다 댄다는 속설을 믿거든요. 죽을 사(死)를 떠올리게 하는 숫자 4와도 거리를 두는 편입니다. 혹시 모를 부정을 방지하기 위해서죠. 별거 아닌 것 같으면서도 괜히 흠칫하게 되는 금기들. 제26회 부산국제영화제 국제영화비평가연맹상을 받은 <세이레>는 바로 이러한 금기에서 출발한 작품입니다. 금기를 어긴 자는 과연 어떤 대가를 치르게 될까요?


※ 씨네랩으로부터 초청받아 11월 17일(목)에 진행된 <세이레> 시사회를 통해 영화를 감상했습니다. <세이레>는 2022년 11월 24일 국내 개봉 예정작입니다.


세이레
Seire

언뜻 다른 나라 말처럼 보이는 영화의 제목 '세이레'는 아이를 낳고 21일째 되는 날을 이르는 삼칠일의 순우리말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오래전부터 아이가 이 세상에 무사히 자리 잡을 수 있도록 삼칠일 동안 외부인의 침입을 막는 금기를 지켜 왔습니다. 외부와의 통로에 고추와 숯을 엮은 금줄을 쳐 두고선 말이죠.


'우진'의 부인 '해미'는 이 금기를 철석같이 믿고 따르지만, 이를 미신이라고 여기는 '우진'은 대수롭지 않게 금기를 어깁니다. 그리고 금기를 깬 '우진'의 주변에서는 자꾸만 불길한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하죠. 정말 그가 금기를 깼기 때문에 불길한 기운이 '우진'의 근처를 맴도는 걸까요? <세이레>의 서스펜스는 미신을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의 간극에서 스멀스멀 피어오릅니다. 금기를 깬 인물 주변에서 발생하는 기이한 일들은 알게 모르게 수많은 민속 신앙을 믿으며 사는 우리에게 신선한 공포를 선사합니다.




사실 '우진'에게는 비밀이 있습니다. '우진'의 전 연인 '세영'이 임신한 후 아이를 유산했고,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것이죠. 과거 '우진'은 아이를 원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어떤 심경의 변화였는지, '우진'은 얼마 지나지 않아 지금의 아내 '해미'와 결혼하고 아이를 낳습니다. '세영'과의 아이는 그토록 거부했으나 '해미'와는 아이를 낳은 '우진'. '해미'의 만류에도 금기를 깨고 기어코 '세영'의 장례식장에 다녀올 수밖에 없었던 것은 다름 아닌 '세영'을 향한 죄의식 때문이었습니다.


'우진'은 표면적으로 삼칠일에는 장례식장에 가서는 안 된다는 금기를 어겼습니다. 그러나 내면적으로는 아이를 낳지 않겠다는 자신의 금기를 깼죠. 금기를 어기고 파멸에 이르는 인물에 관한 이야기는 흔합니다. 하지만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금기를 어긴 자에게 내려지는 징벌이 아닙니다. <세이레>는 금기를 어긴 자가 겪는 두려움에 관한 이야기죠. 사람들은 금기를 어긴 대가를 피하고자 금기를 지킵니다. 이는 다시 말하면 금기를 어긴 자는 언제 닥쳐올지 모르는 금기의 대가를 두려워할 수밖에 없음을 의미합니다. 금기를 깨고 두려움에 사로잡힌 '우진'은 착시와 착란을 겪으며 현실과 비현실의 섬뜩한 교차를 경험합니다.


영화 속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사과는 '우진'에게 내재한 죄의식을 상징합니다. 겉으로 보기엔 윤기가 나는 멀쩡한 사과지만, 그가 자르는 사과는 모두 속이 까맣게 썩어있습니다. 단순히 썩은 수준이 아니라 끈적끈적한 피를 머금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까지 합니다. 아닌 게 아니라 영화 속에는 '세영'의 유산이 '우진'의 책임이라는 암시도 슬쩍 엿보입니다. '우진'은 자주 건강원에 방문해 즙을 사 먹거나 선물하는데요. 건강원 주인 내외의 대화를 통해 '애를 붙이는 약'과 '애를 떨어뜨리는 약'이 있고, 두 약이 실수로 바뀌기도 한다는 사실이 드러납니다. 임신한 '세영'은 '우진'이 준 즙을 먹었고, 훗날 '세영'은 유산 소식을 전하죠. '우진'은 그 소식에 안도하는 듯한 한숨을 내뱉었고요. '우진'이 어긴 금기가 또 있는 걸까요? 해석의 여지를 두는 이러한 장치들은 영화의 미스터리함을 한층 더 높여줍니다.




아쉬움이 남는 부분도 분명 있습니다. 민속 신앙에 관한 색다르고 신선한 접근은 좋았으나, 그 과정에서 '해미'가 다소 비이성적인 인물로만 그려진 것은 씁쓸했습니다. 또 죄의식에 사로잡힌 '우진'이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냐"며 울먹이며 죽은 '세영'의 목을 조르는 장면은 눈을 질끈 감게 만들기도 했습니다. 두려움의 절정을 꼭 건장한 남성이 죽은 여성의 목을 조르는 것으로 표현했어야 할까요? '우진'이 '세영'의 유산에 일말의 책임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암시로 인해 이 장면은 더욱더 견디기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배우들의 호연은 아쉬움을 초월하는 만족감을 선사했습니다. 죄책감, 두려움, 혼란에 점점 더 강하게 사로잡히는 '우진' 역의 서현우 배우, 그의 비밀을 쥔 쌍둥이 자매 '세영'과 '예영' 역의 류아벨 배우, 민속 신앙을 맹목적으로 따르는 아내 '해미' 역의 심은우 배우는 영화 <세이레>의 독특한 색깔을 만들어냈습니다. 민속 신앙과 미신을 흥미롭게 풀어낸 영화 <세이레>를 통해 오싹한 겨울이 오기 전 극장에서 서늘한 기운을 먼저 느껴보시는 건 어떨까요?


Summary

아기가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초보 아빠 우진(서현우)은 현관문에 금줄을 쳐서 외부인의 출입을 막고, 금기사항을 철저히 지키는 아내가 이해되지 않는다. 회사 다니면서 틈틈이 육아를 도와주며 바쁜 일상을 보내던 어느 날, 우진에게 과거의 연인 세영(류아벨)의 부고 문자가 도착한다. 아기가 태어나고, 21일 동안은 장례식장에 가면 안 된다는 아내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조심스레 다녀온 우진. 그날 이후, 아기가 아프기 시작하면서 불안과 두려움이 커져가는데… (출처: 씨네21)


Cast

감독: 박강
출연: 서현우, 류아벨, 심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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