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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자까 May 06. 2023

'마라맛 이야기' 시켰는데
순한 맛을 받았어요

영화 <마라맛 이야기> 

제24회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된 <마라맛 이야기>는 코로나19가 창궐했던 팬데믹 기간에 벌어진 한 가족의 칠리소스 판매기를 영화로 만든 작품입니다. 감독의 경험을 토대로 만든 자전적인 이야기라고 하는데요. 코로나19가 바꿔놓았던 삶의 풍경이 어떻게 코미디 영화로 재탄생했을지 궁금해 이 영화를 선택했습니다. 


네, 여기까지는 있어 보이는 답변이었고요. 이 영화를 고른 진짜 이유는 다름 아닌 제목 때문이었습니다. 그제는 마라샹궈, 어제는 마라 떡볶이, 오늘은 마라 토스트를 먹은 제가 어떻게 <마라맛 이야기>라는 제목을 못 본 체하겠습니까. 누가 번역했는지 모르겠지만, 참 매력적인 번역이 아닐 수 없습니다. '칠리소스'를 만드는 가족에 관한 영화이고 영어 제목도 <Chilli Laugh Story>인 만큼, 사실 '칠리맛 이야기'라고 번역하는 것이 더 타당했을 텐데 말이죠. 아마도 저뿐만 아니라 마라맛에 열광하는 수많은 전주국제영화제의 관객들이 이 제목에 홀려 극장에 들어서지 않았을까 예측해 봅니다. 


마라맛 이야기
Chilli Laugh Story 

팬데믹 이후 늘어난 집밥 수요를 노려 사업을 시작하고 싶은 아들 '코바'와 칠리소스를 만드는 탁월한 솜씨를 가진 엄마 '리타'는 온라인으로 칠리소스를 판매하기로 합니다. 돈을 모아 집을 사고 싶었던 엄마와 코로나19로 직장에서 잘릴 위기에 처한 아들은 가족 사업에 적극적으로 임하죠. 사업이 어느 정도 성과를 보이자 이런 걸로 돈을 벌 수 있겠냐며 콧방귀를 뀌던 아빠 '앨런'도 자연스럽게 사업에 합류했습니다. 그렇게 '코바'네 가족은 봉쇄령이 내려진 도시의 한 가정집 식탁에서 매일같이 한 마음 한 뜻으로 고추를 손질하고 칠리소스를 만들어 포장합니다.


코로나19로 인해 전 세계 사람들은 사회적 거리두기, 자가격리, 봉쇄, 재택근무, 비대면 사회 등 공통된 경험을 갖게 됐습니다. 어느새 팬데믹이 전 세계를 강타한 지 4년째가 된 지금, 코로나19가 만들어 낸 낯선 사회 풍경을 영화로 재현하는 움직임이 하나둘씩 눈에 띕니다. 코로나19가 바꿔놓은 일상은 모두가 겪은 일이기에 국적, 인종, 성별, 나이를 막론하고 누구나 공감할 수 있다는 면에서 매력적인 소재입니다. <마라맛 이야기>도 코로나19 이후 오손도손 한 집에 모여 사는 가족의 일상을 다룸으로써 관객의 공감과 웃음을 유발하는 작품 중 하나죠. 


영어 제목이 'Chilli Story'가 아니라 'Chilli Laugh Story'인 것만 봐도, 이 작품이 지향하는 분위기를 유추할 수 있는데요. <마라맛 이야기>에는 '코로나19 유머'라고 부를 법한 코미디들이 다수 등장합니다. 천 명이 넘게 온 파티에서는 감염되지 않았는데, 쓰레기 줍기 봉사하러 갔다가 코로나19에 걸렸다는 한탄이라든가, 직장에서 잘리면 배달 아르바이트를 시작하면 된다는 농담을 주고받는 젊은 커플의 모습 같은 것들이 그렇죠. 마트에 간 남편이 여자 종업원이 끼워준 비닐장갑을 그대로 착용한 채 귀가하자, 아내에게 바이러스로부터 나를 보호하기 위해서 비닐장갑을 낀 것이라는 변명을 내뱉는 모습도 우리 모두에게 코로나19라는 공통된 경험이 있기에 웃을 수 있는 장면입니다. 영화를 끝까지 감상하면 한때 스마트폰을 왱왱 울려댔던 코로나19 재난 문자를 활용한 재치 있는 엔딩 크레딧 디자인을 볼 수도 있습니다. 갑작스러운 재난 문자의 당황스러움을 정말 오랜만에 느껴 보았어요. 이렇듯 <마라맛 이야기>는 처음부터 끝까지 코로나19라는 전 세계인의 공통분모를 사용한 재치로 가득합니다. 




'코바'네 가족은 칠리소스 사업을 꾸려가면서 서서히 수면 위로 드러나는 가족 간의 갈등과도 마주합니다. 맹목적으로 집을 사고 싶어 아들의 명의로 대출까지 신청한 엄마 '리타', 허세와 수다를 멈추지 못하는 눈치 없는 아빠 '앨런', 대기업의 속셈에 부당하게 사업 아이디어를 빼앗긴 아들 '코바', 무관심한 아들 대신 동생 가족에게 관심을 쏟는 고모 '웬디'까지. <마라맛 이야기>는 성행하는 가족 사업의 뒤편에서 빼꼼 고개를 내미는 가족 간의 갈등들을 묘사합니다. 실제로 코로나19 이후 가족과 붙어 있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커뮤니티 등에 평소엔 몰랐던 가족의 불편함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기도 했죠. 


하지만 이 영화는 또 금세 갈등과 긴장을 감싸 안아줍니다. 기복이 있고 때로는 주저앉을 수도 있는 게 인생이지만, 그럴 때일수록 함께 뭉쳐 이겨내는 것이 가족이라는 메시지를 통해서 말입니다. 가족의 사랑과 변화무쌍한 인생의 길흉화복이라는 뻔한 주제는 코로나19라는 시대적 배경을 만나 색다른 방식으로 그려집니다. 이러한 영화의 메시지는 엔딩곡 "辣到出汁"에도 그대로 담겨 있는데요. 듣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음악이니, 알아듣지 못하더라도 꼭 한 번 들어보시길 바랍니다. 




홍콩과 중국 문화권에 대한 배경지식이 없으면 다소 이해하기 어려운 유머들도 있고, 오직 웃기기 위해서 넣은 19금 개그나 불필요한 대사들도 많아서 조금 아쉬움이 남기도 했는데요. 그렇지만 가족의 사랑과 코로나19가 바꾸어 놓은 일상을 연결하여 재치 있는 영화로 재현해 냈다는 데에 더 큰 점수를 주고 싶습니다. 


아무래도 제목에 이끌려 보길 잘했다는 생각이 물씬 드네요. 그러나 이름값 하는 작품은 아니라는 점, '마라맛'이라는 제목과는 달리 '순한 맛'에 가까운 이야기라는 점, 잊지 마세요! 


Summary

코로나 19 팬데믹으로 인해 전 세계 사무직 노동자들은 재택근무를 하는 경우가 많았다. 코바는 어머니가 직접 만든 소스를 온라인 사업화하는 과정에서 오랫동안 숨겨져 있던 가족 간의 갈등이 다시 폭발 직전에 이르렀다. 얼마 지나지 않아 가족 간의 일상적인 줄다리기는 칠리소스보다 매운맛으로 변한다. (출처: 전주국제영화제) 


Cast

감독: 코바 쳉
출연: 정중기, 양영기, 러이적온, 오군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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