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그런 사람은 없다.
"난 원래 그래"라는 말을 자주 사용한다면.....
"야, 천재는 악필이라는 말 못 들어봤어? 난 천재라 글씨를 못 쓰는 거야."라고 말하는 상길의 목소리는 되려 기고만장하다. 이 말은 친구들이 글씨를 못 쓴다고 뭐라고 할 때마다 상길이 하는 말이었다. 평소 글씨를 빨리 쓰는 편이었고, 글씨를 빨리 쓰다 보니 저절로 흐트러지게 마련이었다. 흔히 말하는 지렁이 글씨가 바로 상길의 글씨였고, 상길은 자신이 글씨를 못 쓴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친구들이 뭐라 말해도, 선생님이 뭐라 말해도, 부모님이 뭐라 말해도 결코 자신이 글씨를 못 쓴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았던, 자기 고집이 산 꼭대기까지 치솟았던 그가 자신의 글씨를 인정하게 된 것은 사랑 때문이었다. 평소 좋아했던 여학생과 편지를 주고받게 되었는데, 편지를 쓰다가 문득 '아, 글씨가 창피하다'라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그녀에게 편지를 쓸 때마다 상길은 "나, 글씨를 너무 못쓰지?'라는 내용을 썼다. 그러면 그녀에게서 "아니, 괜찮아, 읽을만해'라는 내용이 담긴 답변이 왔는데, 오히려 '읽을만해'라는 답변이 더 서글펐고, 상길은 글씨 연습을 하기로 결심을 하게 된 것이다. 경로야 어찌 되었든 자신의 결점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바라보는 것은 변화의 출발점인 것만은 분명했다.
상길은 서점에 가서 펜글씨 교본을 샀고, 문구점에 가서 펜촉과 잉크를 샀다. 책상에 앉아서 교본을 펴고 한 획, 한 획, 정성스레 따라서 쓴다. 5분쯤 지났을까? 지겹다. 지겨워진다. 글씨를 잘 쓰려는 생각은 있지만, 간절하지 않은 것일까? 펜을 내려놓고 책을 덮는다. 일주일 가량 되었을까? 글씨의 변화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는 '내가 원래 그렇지 뭐'라고 생각하며 글씨 연습을 포기한다. 그게 고3 봄이었다.
그로부터 며칠 후 어느 수학 시간. 수업을 하시던 선생님이 갑자기 "우리가 하지 말아야 할 말이 한 가지 있다면 그것에 무엇일까?"라고 물었다. "부모님 속 썩이는 말이요.", "너 미워", "욕이요" 등등 여러 가지 대답이 나왔다. 선생님은 "난 원래 이래"라는 말이라고 하셨다. 난 원래이라는 말을 우리가 언제 쓰는가? 긍정적인 상황보다는 부정적인 상황, 이를테면 누군가와 말다툼을 할 때 라던가, 무엇인가 해내려고 노력했지만 그것이 잘 되지 않았을 때 자신에게 체념하듯 쓰는 말이지 않냐? 원래부터 그런 사람은 없다. 그러니깐 그런 말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것이 선생님의 말의 요지였다.
그 말을 들은 상길은 바로 며칠 전에 자신이 글씨 연습을 하다가 "내가 원래 그렇지 뭐"라고 말하면서 포기했던 자신을 생각했다. 원래부터 글씨를 못쓰는 사람은 없다고? 그럼 나도 글씨를 잘 쓸 수 있다는 말이 아닌가? 그렇게 생각한 하울리는 다시 펜글씨 연습을 시작했다. 노력이 부족했다고 생각한 그는 하루에 30분씩 연습을 했고 일주일이 지나자 가지런해진 자신의 자신의 글씨를 발견했다. 자기도 이제 글씨를 잘 쓴다고 생각했던(그것은 완벽한 착각이었지만) 펜글씨 연습을 멈췄다. 가지런했던 글씨는 아주 서서히 흐트러지기 시작했고, 정확히 1주일이 지나자 원래대로, 그러니까 이전의 지렁이 글씨로 돌아가 버렸다. 상길은 실망하며 '천재는 악필이야(이제는 스스로도 믿지 않는)'라고 말을 하며 두 번째 도전을 스스로 포기했다.
그로부터 또 몇 년이 지났다. 상길은 자신이 글씨로 인해 포기했던 것들을 떠올렸다. 논술을 보는 대학을 피해서 원서를 썼던 일, 수강하고 싶어도 쓰기가 많아서 포기했던 과목들, 친구들에게 놀림을 받았던 기억, 그리고 그녀에게 편지를 쓸 때마다 스스로 창피하다고 여겼던 기억들도 떠올랐다. 그리고 비록 짧은 기간이었지만 1주일간 예쁜 글씨를 썼던 때가 있었다는 것을 상기해내곤, 그 글씨를 다시 쓰고 싶어졌다. 그래서 상길은 세 번째로 글씨 연습을 도전하기로 했다.
매일 30분씩, 아침마다 그는 펜글씨를 썼다. 일주일이 지나고 가지런해진 글씨를 발견했다. 몇 년 전에 일주일만 하고 그만뒀던 기억을 떠올리며 상길은 계속 연습을 했다. 그렇게 한 달을 연습하자, 글씨가 정말 예뻐졌다. "오, 이게 정녕 내 글씨란 말인가?" 상길은 이제는 정말 글씨를 고쳤다고 생각했고, 펜글씨 연습을 그만두었다. 글쓰기 흐트러지는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아니 느낄 수 없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그런 기미는 없었는데, 어느 순간 글씨가 엉망이 되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리고 상길은 펜글씨 연습을 그만둔 지 한 달이 지났다는 것을 깨달았다.
"일주일 연습했더니 일주일 만에, 한 달을 연습했더니 한 달 만에 글씨가 엉망이 되는구나!"상길은 그런 법칙을 발견했다. 그것이 우연이라고 생각하진 않았다. 노력의 기한은 중요했다. 그리곤 "그럼 1년을 연습하면 도합 2년을, 20년을 연습하면 총 40년을 예쁜 글씨를 쓸 수 있는 거네?"라고 생각한 그였다. 이번에는 "내가 원래 그렇지 뭐"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뭔가 깨달음이 있었다. 상길은 곧바로 글씨 연습을 하기 시작했다. 이번에 목표는 끊기지 않고 계속 쓰는 것이었다. 그렇게 1년이 넘도록 글씨 연습을 계속 한 어느 날. 그의 글씨를 보던 한 친구가 "이야, 상길아, 너 글씨 정말 잘 쓴다. 너 예전에 글씨 정말 못썼었는데" 친구의 그 말은 그에게 용기를 주었다. 깨달음을 주었다. 드디어 악필이라는 껍질을 깨고 나올 수 있었던 것이다. 그날은 "악필 탈출"을 스스로 선언하는 날이었다.
상길은 지금도 펜글씨 연습을 하고 있을까? 아니 그는 지금은 펜글씨 연습을 하고 있지 않는다. 그렇다고 그의 글씨가 처음처럼 흐트러지진 않았다. 1년이 넘게 펜글씨를 하면서 예쁜 글씨가 그의 몸에 체화된 것이다. 물론 빨리 쓰려고 하다 보면 글씨가 엉망이 될 때가 있긴 하지만, 천천히 쓰면 예쁜 글씨가 나오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