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로 돈을 어떻게 벌어먹어?

돈을 버는 재능과 그냥 재능은 다른 재물을 안겨준다는 걸 알려 준 그때쯤

2022년 카타르에선, 철저한 프로세스를 거쳐 감독에 선임된 벤투 감독이 4년 간의 의구심을 이겨내고 대한민국을 16강에 올려놓았다. 그 약속의 땅 카타르에서, 11년 전에 또 다른 축구 대회가 열렸었다. 바로 2011 AFC 카타르 아시안컵이다.



이 대회는 나에게 잊을 수 없는 대회이다. 그러나 이 대회를 인상 깊게 기억하는 한국 국민들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우리나라가 우승을 한 것도 아니고, 4강에서 일본에게 탈락해 3위에 그쳤던 대회이기 때문이다. 물론 손흥민의 A매치 데뷔골이 나오기도 했고, 박지성과 이영표가 국가대표 은퇴를 하기 전 마지막으로 뛰었던 대회이기 때문에 한국 축구의 중요한 변곡점이긴 했다.


어쨌든 이 대회가 도대체 왜 나에게 잊을 수 없는 대회가 되었을까? 이는 현재 2024년까지도 축구를 보고 누구보다 축구에 미쳐 있는 내가, 처음으로 축구에 빠지게 된 계기가 되었던 대회이기 때문이다. 이 글은 어느덧 22살이 된 내가, 갓 9살이 될 때쯤부터 지금까지의 축구 일대기를 가볍게 소개하는 글이다.








난 외동이고, 부모님은 맞벌이였다. 보통 이렇게 얘기하면 다수의 사람들은 외롭지 않았냐고 묻는다. 하지만 나는 지금도 외로움이라는 감정을 잘 모를 정도로 잘 지내왔다. 쉽게 말해, 혼자 잘 논다. 어릴 때 내가 주로 하던 건 TV 시청이었다. 또래 친구들처럼 만화도 봤지만, 유독 난 예능 프로그램을 좋아했다. 그 시절은 한국 버라이어티 예능의 황금기였다. 그중에서도 난 무한도전과 1박2일을 좋아했었다. 그리고 윗 사진이 바로 1박2일의 글로벌 특집 당시 방송 사진이다. 이 특집은 1박2일의 멤버와 한국에 거주하는 외국인 6명이 짝을 이루어 여행을 가는 컨셉의 특집이었다. 그에 앞서 사전 녹화를 진행하며 각자 멤버들이 파트너의 국적에 해당하는 국기를 뽑아 파트너를 결정했었다. 특이하게도 저 특집을 보고 난 뒤, 난 국기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반에 1명쯤 있는 국기와 수도를 수상할 만큼 잘 알고 있는 애, 그게 나였다. 그건 지금도 까먹지 않고 잘 외우고 있다.




그리고 2011년 1월의 어느 날, 우연히 MBC를 보다가 해당 사진과 비슷한 국기가 가득하게 있는 그래픽을 보게 된다. 황당하게도, 난 그렇게 국기가 한 데 모여 서로 싸우고 하는 그래픽에 흥미를 느껴 축구에 빠지게 되었다. 2010년 남아공 월드컵도 있었고, 축구가 아닌 다른 종목도 있었겠지만 왜 하필 저 대회였는지는 나도 모른다. 잠깐 저 대회의 기억을 상기해 보자면, 손흥민이 국대 데뷔골을 넣은 후 하트 세레머니를 펼쳤던 장면이 제일 먼저 떠오른다. 그리고 라이브로는 못 봤지만 윤빛가람의 이란전 결승골, 그리고 새벽 1시까지 봤던 4강 한일전은 내 뇌리에 강하게 박혀 있는 장면들이다. 이 대회 이후 자연스럽게 난 축구에 빠졌다. 저 대회가 끝날 때쯤 유럽은 챔피언스리그 16강이 슬슬 진행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렇게 난 축구에 미치기 시작했다.



내 인생에서 가장 좋아하는 축구선수는 이청용이다. 손흥민의 시대에 살았고, 메시와 호날두, 그리고 음바페까지 봐왔지만 이청용을 여전히 제일 좋아한다. 울산 현대의 팬이라서 이청용을 좋아하는 것도 있지만, 정확하게는 볼튼 시절의 이청용을 정말 좋아했다. 그 당시 어린 내가 축구를 보기 위해서 TV를 틀고 채널을 돌리면, 42번엔 SBS ESPN이 있었고 43번에 KBS N 스포츠, 44번에 MBC 스포츠가 있었다. 내가 볼 수 있던 스포츠 채널은 그게 다였다. 그리고 42번을 틀면 거의 박지성의 맨유 경기, 이청용의 볼튼 경기, 박주영의 AS모나코 경기를 재방송해줬다. 지금 스포티비에서 경기가 없는 시간대에 손흥민 하이라이트만 계속 트는 것과 똑같았다. 자연스레 한국인이 있는 팀을 좋아하게 되었고, 그중에서 이청용의 볼튼을 특히 좀 많이 좋아했다. 빠른 스피드와 민첩한 방향 전환, 창의적이고 번뜩이는 패스 등 어린 내가 봐도 이청용의 플레이는 즐거웠다. 그렇게 내가 축구를 처음 본 2010-2011 시즌의 이청용은 날라다녔고, 그런 전성기의 이청용을 2011년 7월 이후로는 볼 수 없었다. 그래서 그런지 이청용이라는 이름은 지금까지도 나에게는 남다르다.





그렇게 이청용에 빠져 있음과 동시에, 축구에 미치기 시작했다. K리그, EPL, 챔스, 국대 경기까지 가리지 않고 다 시청하면서 축구의 재미를 알게 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처음으로, 명확한 꿈을 가지게 되었다. 바로 '축구해설' 이었다. 축구선수가 되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그 당시 초등학교 축구부도 했었지만, 직접 축구를 하기에는 여러모로 부족한 게 많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 축구를 하는 것 ' 보다 ' 축구를 보는 것' 을 좋아했다. 초등학교 저학년 학생이면 보통 장래 희망으로 의사, 과학자, 요리사 등등 단순한 직업을 많이 고른다. 축구해설과 같은 구체적인 직업을 초등학교 2학년 때 장래 희망으로 고르는 어린이는 저 당시만 해도 없었다.




단순히 축구 경기를 많이 보기만 한 것도 아니었다. 난 초등학교 2학년때부터 축구 때문에 위키를 읽었다. 지금의 나무위키도 아닌, 위키백과 본사 위키피디아를 읽었다. 월드컵 전 대회를 위키와 여러 서적들을 읽으며 우승팀도 외우고 대회 상황을 기억했었다. 지금도 역대 대회 우승팀 정도는 가볍게 기억하며, 개별 대회의 스토리들도 많이 알고 있다. 또 난 초등학교 3학년때부터 ' 한준희 장지현의 원투펀치 ' 를 즐겨 시청했다. 사실 지금도 축구 마니아가 아니라면 접근하기 쉬운 방송은 아닌데, 저 나이 때부터 이 방송을 봤다는 게 지금 생각하면 좀 신기하다. 축구 관련 서적, 축구 관련 다큐, 축구 관련 잡지 등 축구와 관련된 것이라면 뭐든 즐겨 보았고 뭐든 알고 싶어 했다. 한 가지 특이했던 점은, 축구의 역사를 되게 좋아했다. 그러다 보니 좀 깊게 축구를 알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렇게 난 계속 축구에 빠져 살았다. 2014년 브라질 월드컵은 내가 축구를 좋아하고 나서 처음으로 진행된 월드컵이었다. 초등학교 5학년이 된 나는 이제 새벽 4시에 일어나 축구를 보기도 했다. 이 대회는 유독 재밌는 대회이기도 했다. 1학기 기말고사 날에 독일 VS 브라질의 7 VS 1 경기를 새벽에 보고 시험을 치러 간 기억이 아직 선명하다. 여전히 일기장엔 축구 얘기만 가득했고, 초등학교 6학년 때 담임 선생님은 그 일기를 검사하며 스포츠 기자가 되어 보라는 권유를 하시기도 했다. 사춘기가 오고 점점 커가면서 나는 '축구해설' 이라는 직업에 국한되지 않고 조금 더 넓게 보며 '축구 관련 직업' 을 가지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4년이 흘렀다. 중학교 3학년 16살이 된 나는 2번째 월드컵을 맞이했다. 별 다르지 않았다. 여전히 내 꿈은 ' 축구 관련 직업 ' 이었다. 이제 나는 축구 관련 칼럼도 쓰고, 경기를 보며 분석을 하기도 했다. 박문성 해설에게 메일을 보내보기도 했으며, 김민구 해설에게 DM을 보내 축구 분석의 방법을 물었다. 혼자 중계를 하는 연습을 해보기도 했다. 현재는 축구 관련 유튜브 원탑인 '이스타TV' 도 이때쯤부터 보았다. 그런데 점점 확신이 사라져 갔다. 축구로 돈 벌어먹는다는 게 쉽지 않다는 걸 점점 알게 되던 시기였다. 어릴 때부터 ' 축구 ' 하나만을 보고 자라온 나에게 세상은 넓었다.






그리고 1년 뒤, 나는 고등학교에 입학했다. 2019년은 한국 축구가 다시 부흥했던 한 해다. 손흥민이 챔스 결승에서 뛰었고, U-20 대표팀이 이강인과 함께 월드컵 결승에 올랐다. 대구 FC의 신구장과 함께 K리그는 부활의 바람이 불었고, 벤투 감독의 성인 대표팀이 밸런스를 찾아가는 과정이었다. 그리고 난, 축구해설이 되는 것을 포기했다. 내 우상이던 한준희 해설위원은 해설을 꿈꾸는 자들에게 해설이란 직업을 절대 추천하지 않았다. 좋아하는 것을 직업으로 가지게 됨으로 인한 고통도 무시할 수 없다고 하셨다. 그걸 점점 느끼던 시기였다. 분석의 대상이 된 축구 경기는 점점 재미 없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가 아무리 전문적으로 축구를 공부한다고 해서, 그걸로 인기 많은 해설이 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심지어 축구 해설은 공채가 있는 것도 아니고, 언제 어떻게 축구해설이 될 수 있는지 명확한 경로가 없다. 더군다나 비선출로서 아무리 노력해도 선출 해설의 인지도와 특별함을 넘어설 수 없는 직업이다. 무엇보다 제일 중요한 건, 생각보다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 축구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그리 많지 않다. 대다수가 2002년을 기억하고 손흥민을 응원하지만, 그중 대다수가 딱 거기까지다. K리그를 응원하는 팬들은 그보다 훨씬 적으며, 해외 축구를 진심으로 응원하는 팬들 역시 훨씬 적다. 좁디좁은 '축구' 라는 산업 시장에서 돈을 버는 건 너무 어려워 보였다. 입시 등 진로에 관련된 여러 가지 결정을 해야 되는 시기와 맞물려 나는 과감하게 포기했다. 돈을 버는 재능과 그냥 재능은 다른 재물을 안겨준다는 걸 알려 준 그때쯤.







그리고, 난 다시 맘 편하게 축구를 좋아할 수 있게 되었다. 축구 해설에 대한 꿈을 포기하고 나니, 어릴 때 순수하게 축구를 좋아하던 나로 돌아온 느낌이었다. 2022년 월드컵에서 우린 16강을 이루어냈다. 그보다 2달 전에는, 내가 좋아하는 울산 현대가 17년 만의 우승을 이뤄냈다. 인생에서 제일 행복했던 대학교 새내기 1학년 시기에, 축구가 제대로 조미료 역할을 해주었다.








그리고 여기, 축구로 돈을 어떻게 벌어먹어? 를 몸소 보여준 이스타 TV를 요즘 거의 매일 달고 산다. ' 축구 ' 라는 종목을 컨텐츠로 삼으면서 '대중성' 과 '전문성' 을 놓치지 않은 이 채널을 보며 맘 편하게 축구를 즐긴다. 그리고 이 회사의 직원 중 내 어린 시절 꿈을 대신 이뤄준 사람이 있다. 1996년생 임형철 해설위원이다. ' 제2의 한준희 ' 라는 수식어를 받으며 전문성을 인정받았다. 요즘은 해외 유학도 많이 가던데, 임 위원은 그런 유학 경험도 없이 본인의 노력 만으로 독자적인 커리어를 이루어냈다. 원투펀치의 멤버로도 합류하며 정말 내가 어릴 적 상상하던 그 길을 걷고 있는 인물이다. 그를 보며 부러움도 느끼지만, 대리 만족하는 느낌으로 항상 응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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