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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전구 Aug 30. 2024

이상주의자는 이상한가요?

광화문 할리스에서 아메리카노를 마시면서 이상한 생각을 하는 사람

개강 전 거의 마지막으로 시간이 하루 통으로 비는 날이라 오늘도 역시 밖에 나왔다. 상반기엔 집에서 10분만 걸으면 나오는 좋아하는 공간에 가서 아이스 아메리카노 혹은 아이스 카페라떼 혹은 카페라떼 핫 혹은 바닐라 라떼 아이스를 시키곤 하는데 (불필요한 열거법이 아닌, 맛있는 걸 늘여놓고 싶은 저를 이해하세요) 최근엔 이상하게 그 카페에 가기 싫다. 여름에 다녀온 여행 막바지쯤, 한국에 가면 그곳에 가서 글도 쓰고 노트북 두드리면서 바쁜 척도 하려고 했는데 막상 돌아오니 별로 안 내키는 게 아이러니다.


의문점의 원인을 자세히 따라가면 아무래도 동네에 정을 붙이지 못한 나의 모습이 눈에 띈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내가 사는 도시와 활동하는 공간에 대한 불만족으로 인한 불편함이 아닐까 싶다. 놀랍게도 지금 상태는 이러한 불만족에서 많이 나아지고 순해진 편이며, 이러한 생각의 정점을 찍었던 5~6월의 경우엔 내가 사는 도시가 너무 싫어 이곳에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큰 스트레스를 받았다. 아무래도 여행 가기 직전, 막바지 여행 자금을 마련하느라 꽤 빡세게 아르바이트를 하기도 했고, 학교 일 같은 것이 이것저것 겹치는데 설상가상으로 바쁘고 돈도 없어 밴드도 못 보는 실상이라 꽤 힘들고 괴로웠다.  방금 문장의 막바지 정보 때문에 나의 힘듦이 조금은 가볍고 유쾌하게 다가 수도 있는데 정말 진심으로 쉽지 않았다. 이 부분에 대해서도 그 이유와 원인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이 한가득이니 다음에 또 수요가 오직 나뿐인 공급을 제공하겠다.


다시 도시가 싫어진 부분으로 돌아가기 전, 먼저 알아두어야 할 점이 있는데 내가 싫다고 하는 건 보통의 기준과는 좀 다르다. 그냥 내 마음에 안 들면 싫은 건데 그 기준이 조금 많이 아주 주관적이다. 오히려 객관적 기준에 따르면 나의 거주지는 살기 매우 좋은 도시라고 생각한다. 나 또한 그러한 혜택을 분명히 누리고 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불편한 이유는 모르겠다.. 사대주의 서울중심주의 예술병 공원 문화인프라 매사에 비관적인 사고 현실불만족 정치 혐오 시민의식 등 이러한 것들의 총집합으로  버무려진 나의 오만한 생각에 따르면 나에게는 이 도시가 부합하지 않는 것 같다.


가장 큰 이유는 아무래도 제일 먼저 언급한 사대주의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정말로 지탄의 여지가 넘쳐서 나의 글이 그 정도 영향력이 없다는 걸 분명히 인지하고 있음에도 겁이 나기 때문에 말을 아끼겠다. 대충 알아서 상상하고 그 상상이 대부분 맞을 것이다. 이것에 대해서도 확실한 이유 또한 준비되어 있으며, 이러한 사고의 바탕 및 원인에도  분석이 끝난 상태라 나라는 사람을 이해하지는 못하더라도 여전히 나로 바라볼 수 있다는 확약 속에서 설명할 수 있다. 공감까지도 바라지 않는다고 말하고 싶은데 그건 못하겠다. 그냥 이해하고 공감했으면 좋겠지만 나 또한 상대방에 대해 이해와 공감하고자 하는 의지가 박약한 편이기에 공정성 부분에서 마음을 접는다.


유익한 정보를 제공하는 정보성 글도 아니고, 솔직하게 사을 담았다기에도 욕먹을까 겁난다면서 터키 아이스크림 마냥 줬다 뺐는다. 나는 대체 뭘까.. 이러한 철학적인 고민에 대한 답은 나의 내면에서 찾을 수 있다. 아무도, 아무것도 없는데 그냥 나 혼자서 이런 글을 쓰고, 또 발행한다. 솔직하게 말하면 이런 행위 자체를 즐기는 것 같기도 하다. 이상한 글을 쓰는 '요상한 나(ㅋ)'에 점점 더 취하는 것 같다. 그렇다면 나는 왜 요상해지고 싶은 걸까? 여기서 주의해야 할 점은 '요상하다'라는 표현 또한 대상의 주체가 직접 언급한 단어라는 점이다. 의식적, 무의식적 혹은 두 가지 다 해당는 이유로 내가 남들에게 보이고 싶은 모습을 셀프 이미지 메이킹하는 것일 수도.. 확신이 아닌 추측성 말투인 이유는 아직 마음속 깊은 심연에는 닿지 못했고, 그럴 생각도 없기 때문에 확정 지을 수 없다. 솔직하게 말한다면서 여기서 제일 거짓말하는 사람은 나다. 나는 거짓말대장장이다. 대장이 아니라 대장장이인 이유는 대장장이라는 직업에 대한 선망이 있기 때문에 스스로 거짓말대장장이라는 호칭을 수식함으로써 개인적 만족을 얻고 싶었다.


사실 나는 내가 쓴 글을 정말 자주 돌려보는 편인데, 그때마다 솔직히 마음에 든다. 정확히 말하면 글솜씨 자체가 만족스럽다기 보단 나의 글이기 때문에 그 당시에 무슨 생각을 고 있던 건지, 왜 이런 표현을 썼는지 모두 기억난다. 이 때문에 자연스레 글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지고, 그렇다 보니 아주 그냥 쏙쏙 이해돼서 마음에 든다. 나르시시스트의 일종인 걸까..? 하지만 '망각'이 인간이 가진 축복 중 하나인 이유가 있다. 선명한 기억력 탓에 과거 나의 글에서 발견되는 거만하고 오만한 부분에 대해서도 외면으로 일관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망각이 아무리 인간의 축복이라 할지라도 나에게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건 내 기억들이기 때문에 (부끄러운 장면까지 모두 다) 가끔은 나를 차근차근 잃어버릴까 무섭기도 하다. 마지막 문장을 통해 나르시시스트에 한층 더 가까워진 것 같다.


기억에 대한 이야기를 더 해보자면, 나는 경험에 대한 가치를 높게 치는 편이다. 누군가는 시간이 너무 아깝다고, 굳이 할 필요 없다고 하는 것도 나는 온갖 장점을 붙여 나의 경험치로 쏙쏙 흡수하고자 한다. 그래서 나의 기억은 경험이고, 그것은 나의 엄청난 자산이다. 이러한 이유로 나는 어떠한 형태에서, 즉 나의 세계에선 아주 부유한 부자라고 볼 수 있는데, 보통 사람들 사이에 통용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사회적인 기준에 따르면 부자 박탈이다. 사회적인 기준의 부자를 간절히 희망하는 건 아니지만, 나는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아서 솔직히 돈은 좀 필요하다. '좀'이라고 적었지만 많으면 마음까지 편해질 것이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하고 싶은 건 많은데 누군가 뭘 하고 싶냐고 물어보면 우물쭈물하며 대답을 잘 못 한다. 사실 나도 구체적으로 뭘 하고 싶은지 잘 모르겠어서. 근데 여기서 내가 모르겠다고 표현하는 것은 어떠한 모호하고 거대한 것이 아니라, 그냥 나의 언어로 구체화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뿐이다. 하지만 분명하다. 그것은 실재한다는 걸 경험했고, 이제는 나의 것이니까. 다만 너무나도 오묘하고 섬세한 것이라 그것의 형태를 어디서부터 끄집어내야 하는지 고민이 많았다. 방식에 대한 고민부터 내가 이걸 무언가로 표현하면 결국 넓은 의미에서든 어떠한 형태에 가두는 거 아닌가? 물론 수려한 말솜씨와 현대판 장원급제라고 하는 몇천 명의 경쟁률의 논술 수석 입학자(물론 이러한 형태의 인재 가리기도 좀 갸우뚱다)이거나 예술의 거장이라 독보적인 색채로 표현하는 사람이라면 이런 맥락의 걱정은 덜 했을 것이다(아마도). 다행히도 이 고민은 작년에 마무리되었다. '표현'이라는 행위에 의문점을 가지고 틀에 가둘까 편견이 생길까 걱정스러워도 결국 사람들 사이에 통용되는 표현 수단으로 끄집어내야 세상에 인식될 수 있다는 게 나의 결론이다. 그 평가는 의도와 다를지언정 나 또한 내 입맛대로 해석하기 대장(장이)인데 달리 할 말이 있을까.


그렇다면 여기서 생기는 의문은 나는 왜 이렇게 표현에 목매는가? 이것에 대한 해답은 이번 여행에서 체코로 가는 기차 안에서 다인이와 나 대화를 통해 실마리를 얻었다(이를 통해 체코는 최고의 여행지였다는 걸 증명한다). 나를 잘 아는 타인과의 대화를 통해 나는 참 예민한 성정을 가지고 있다는 걸 다시 한번 확신했다. 그런 성정 탓에 인풋이 많으니 그만큼 아웃풋 하고 싶은 것도 많은 게 아닐까 하는 추측까지 할 수 있었다. 이날의 대화가 굉장히 인상 깊어 자기 전에 일기까지 썼다. 나(우리)의 추측이 맞는 것 같다. 실제로 몇 년 간의 데이터를 통해 내가 다른 사람에 비해 좀 과하게 그리고 깊게 받아들이는 것 같다고 느꼈고, 꽤 깊게 알고 지내던 사람의 입을 통해서도 전해 들은 바였다. 그러나 방심해서는 안 된다. 어쩌면 나는 예민하고 싶은 것일 수도 있다. 내가 예민하다는 걸 확신하고 기뻤던 이유는, 나의 불편함에 합리적이라고 생각하는 이유가 생겨서 마음이 편해졌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핑계가 될 수도 있는 부분이다. 난 그냥 이런 불평불만에 핑계가 필요했던 거라면? 사회적으로 혹은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로부터의 일종의 보호막이 필요했던 거라면? '예민함'은 그 보호막으로 아주 적합하지 않은가? 그럼 나는 대체 왜 뭐가 어떤 게 불편한 건지. 그리고 어떻게 지금의 내가 되었는지에 대해 고민해야 할 부분이다. 바쁘다.. 하나도 안 바쁜데 또 바쁘다. 미친...


뜬금없이 오늘 아침에 먹은 옥수수가 생각난다. 옥수수 알 하나하나가 입안에서 톡톡 터지면서 쫄깃하고도 구수한 게 정말 매력적이다. 아무리 초당 옥수수가 맛있다 한들 찰옥수수를 이길 순 없다. 스테비아 토마토가 방울토마토를 이길 수 없는 것처럼. 여름이 아무리 더워도 나는 꿋꿋이 여름을 좋아한다 말한다. 땀을 뻘뻘 흘리며 얼굴이 벌게져도. 여름을 좋아하는 사람을 많이 안다. 우주의 여름, 언제나 여름과 같은 여름이면 생각나고 여름이 그리울 때면 찾아 듣는 노래를 만들고, 겨울엔 여름을 그리며 nostalgia라고 하는 단독 콘서트를 하는 라쿠나. 여름만 되면 전국을 돌며 라이브 클럽에서 여름빛을 부르는 나상현씨밴드. 여름을 잘 즐겼다는 걸 느끼기 위해 피부를 바짝 태우고 싶다는 지현이. 책 한 권에 몽땅 여름을 사랑하는 내용을 담은 [언제나 여름] 작가님.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여름에 먹는 우리 집 매실! 등등. 사랑하는 걸 가끔은 너무너무 사랑하고 싶어서 빅히어로의 베이맥스처럼 찢어질 듯 팔을 벌려 안아버리고 싶은데, 또 언제 그랬냐는 듯이 어디 치앙마이 같은 곳에 잠적하고 싶다. 참고로 나는 지독한 회피형이라 달리기도 잘하지 않는다. 인생이 걍 싫어하는 것들로부터의 도망이기 또 뛰고 싶지 않다. 대신, 정말 중요하고 위급한 상황 ex) 버스 놓치게 생김 에 닥쳤을 땐 평소에 안 뛴 만큼 사족을 다해 죽을 듯이 뛴다. 아무튼 나의 달리기 철학을 다룬 짧은 사족이었고..


얼마 전에 만난 지혜가 최초로 세상에 나올 뻔한 내 브이로그 편집본을 보고, 대체 말하고자 하는 게 뭔지 모르겠다고 했다. 앞에 좋은 말도 해줬긴 했지만.. 아무튼 이번 글도 그런 맥락 같다. 나는 글을 읽으면서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게 무엇인지 궁금해하는데, 나의 글은 그러한 호기심을 완전히 뭉개놓은 게 아닌가 싶다. 나름의 핑계이자 이유로는, 나도 잘 모르기에 그런 것 같다는 게 나의 추측이다. 이렇게 핑곗거리 쿠션을 하나 마련해 넘어져도 덜 아프게 하는 장치를 만들어 놓고 오늘들을 살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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