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그 이유는 넷플릭스가 강해서가 아니다
2024년 한국콘텐츠진흥원의 게임 이용자 실태조사에는 이상한 숫자가 하나 있다.
게임 이용률은 59.9%다. 2022년 74.4%에서 2년 만에 14.5%p 빠졌다. 2019년 이후 가장 낮은 수치다. 그런데 같은 보고서에서 일평균 게임 이용 시간은 주중 171분, 주말 253분으로 전년 대비 각각 12분씩 늘었다.
이용자 저변은 쪼그라들고 있는데, 남은 사람들은 더 깊이 빠져들고 있다. 이 역설이 한동안 한국 게임 시장의 진짜 위기를 가렸다. 매출이 버텨주니 위기처럼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이용자 구조가 바뀌고 있다는 것, 그리고 이탈한 사람들이 향한 곳이 어디인지를 보면, 이건 단순한 사이클이 아니다.
코로나 이후 외부 활동이 재개되면서 게임 시간이 줄었다는 설명은 표면적으로는 맞다. 그런데 이 설명에는 구멍이 있다. 외부 활동이 늘었다고 해서 미디어 소비 시간이 같이 줄어야 할 이유는 없다. 이동 중에도, 대기 중에도, 짧은 여가 시간에도 사람들은 여전히 스마트폰을 들고 있다.
줄어든 것은 게임에 쓰는 시간이지, 스크린에 쓰는 시간이 아니다.
NDC 2024에서 박용현 넥슨 부사장은 이 지점을 정확하게 짚었다. 게임의 경쟁자는 더 이상 다른 게임이 아니라는 것이다. 넷플릭스, 유튜브, 틱톡, 릴스 — 이것들이 이제 게임이 싸워야 하는 상대다. 그리고 이 싸움에서 한국 모바일 게임은 지금 밀리고 있다.
이유는 생각보다 단순하다. OTT와 쇼츠가 주는 것을 게임도 주려고 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지난 10년간 한국 모바일 게임 시장의 주류 공식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출석 보상, 자동 사냥, 패스 시스템, 시즌 콘텐츠. 로그인만 해도 무언가를 준다. 플레이하지 않아도 캐릭터가 알아서 자라난다. 숙련도나 판단력보다 지속적인 접속이 더 중요한 게임들이다.
이 구조는 처음에 효과적이었다. 바쁜 현대인의 여가 시간에 맞춘 설계였고, 진입 장벽도 낮았다. 하지만 여기에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 이런 게임들이 주는 경험은, 넷플릭스 드라마를 보는 것과 질적으로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둘 다 앉아서 받아먹는 구조다. 능동성이 없다.
OTT가 더 잘 만든 수동적 콘텐츠를 내놓기 시작하자, 이 유형의 게임들은 이길 수 없는 싸움에 들어선 셈이 됐다. 넷플릭스의 서사 완성도, 유튜브 알고리즘의 정교함, 쇼츠의 즉각적인 도파민 — 이것들을 게임의 가챠와 출석 보상이 대체할 수 있을까.
게임이 OTT와 근본적으로 다른 점은 하나다. 플레이어가 세계에 개입한다는 것이다.
영화를 보는 사람은 관객이다. 게임을 하는 사람은 행위자다. 내가 내린 선택이 결과를 바꾸고, 내가 쌓은 숙련도가 이전에는 넘지 못하던 벽을 넘게 한다. 이 경험은 OTT가 아무리 잘 만들어도 복제할 수 없다. 드라마는 내가 아무리 몰입해도 결말을 바꾸지 않는다.
2024년 기준으로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게임들을 보면 이 원칙이 일관되게 확인된다. 발더스게이트 3는 선택의 무게를 극한까지 밀어붙인 게임이다. 엘든 링은 죽고 또 죽으면서 배워가는 숙련의 게임이다. 젤다의 전설 시리즈는 탐험과 발견의 능동성이 핵심이다. 이 게임들의 공통점은 플레이어에게 무언가를 '주는' 게임이 아니라, 플레이어가 무언가를 '하는' 게임이라는 것이다.
한국 모바일 시장의 주류는 이 방향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2024년 넥슨의 연결 매출은 4조 91억원이다. 한국 게임사 최초로 4조원을 넘었다. 순이익은 전년 대비 90.9% 증가했다. 같은 시기 다른 대형 한국 게임사들이 정체하거나 감소하는 동안의 수치다.
흥미로운 것은 이 성장의 구조다. 넥슨의 한국 시장 매출은 오히려 줄었다. 성장은 전부 해외에서 왔다. 던전앤파이터 모바일의 중국 출시로 중국 매출이 63% 성장했고, 퍼스트 디센던트가 글로벌 시장에서 예상 밖의 성과를 냈다.
넥슨이 한국 모바일 시장의 위기를 피한 방식은 한국 모바일 시장에서 싸우지 않은 것이다. 글로벌 IP 확장, PC/콘솔 신규 장르 개척, 중국 직공략 — 이 세 가지는 모두 수동적 보상 구조가 아닌, 게임성 자체에 투자한 방향이었다.
한국 모바일 게임 시장의 구조적 문제는 사용자 수 감소 자체가 아니다. 더 정확하게는, 게임이 스스로의 고유한 경험을 포기하고 OTT와 같은 방식으로 경쟁하려 했다는 것이다.
콘진원 데이터가 보여주는 역설 — 이용자는 줄었지만 플레이 시간은 늘었다 — 은 사실 시장 양극화의 신호다. 수동적 보상으로 붙잡았던 캐주얼 이용자들이 빠져나갔고, 남은 것은 게임다운 경험을 원하는 코어 이용자들이다. 이탈한 사람들은 게임을 싫어하게 된 게 아니다. 더 잘 만든 수동적 콘텐츠를 찾아 OTT로 이동했을 뿐이다.
이용자들이 게임을 떠난 것이 아니다. 게임다운 경험을 주지 못하는 게임을 떠난 것이다.
그렇다면 반대 방향의 질문이 남는다. 게임이 줄 수 있는, OTT가 절대 줄 수 없는 경험을 어떻게 더 깊게 팔 수 있을까. 그리고 이미 수동적 소비에 익숙해진 모바일 이용자들에게 그 경험을 어떻게 전달할 수 있을까.
다음 글에서는 그 접점 중 하나를 서브컬처 게임의 사례로 들여다본다.
뒷 이야기는 후편으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