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숲과 보라매 공원의 한낮
그해 봄은 유난히 휴강이 잦았다.
그랬어도 우린 그 언덕을 올라가 한가해진 본관 앞의 잔디에 털썩 앉아 쏟아지는 봄볕을 마음껏 맞았다. 잔디밭 군데군데 세워진 이젤 위의 작은 캔버스에는 강한 터치의 자목련이 그려지는 계절이기도 했다. 지나가던 혜경이는 '봄볕에 타면 님도 못 알아본다'며 지나갔고 영희와 나는 그 사월의 봄 앞에 그렇게 막연히 앉아있었다.
그러다가 지루해지면 학생식당으로 내려가 150원짜리 라면을 먹으며 무한수다에 열중하는 사이에 목련 꽃잎은 봄바람에 다 떨어져 갔다.
아주 오래전 사월이었다.
다 지고 발아래 떨어져 있는 자목련을 바라보며 그 봄이 선명히 떠올랐다. 그 시절 학생들의 멈출 수 없는 민주화 운동은 끊이지 않았고 그 아픈 역사를 직접 관통하던 내 젊은 날들이었다.
지난 일을 떠올리기 시작하면 나이 먹고 있다는 증거란 게 물론 틀린 말은 아니다. 스무 살에도 지난 시간이 있었고 서른 살에도 지나간 청춘이 있었다. 오늘과 내일만 생각하는 빡빡한 시간의 치열함과 젊음도 당연히 아름답다. 때로는 문득 들려오는 노래 한 자락에, 골목길 담 너머 풍겨오는 냄새 따라 소환되는 기억들이 가슴속 잔잔한 행복감으로 번질 때가 있다.
봄꽃이 뚝뚝 떨어지는 것을 바라보며 갑자기 타임캡슐 한 개를 연 것 같은 봄날 하루...
그 사월도 이렇게 속절없이 지나가고 있다.
잠깐 딴짓하는 사이에 목련이 거의 다 떨어져 버렸다.
볼만한 목련 나무를 내 주변에서는 찾아보기 어렵다.
부지런한 사람에게만 최상의 꽃을 볼 자격이 있다는 걸 알려준다.
하지만 아직도 많이 남아있다.
지난주와 이번 주에 다녀온
<서울숲>과
<보라매 공원>의 봄꽃으로도 내게 이 봄은 충분하다.
하늘로 향하는 렌즈는 꽃술과 꽃 밑동을 다 볼 수 있게 하는 순간이다.
활기도 주고 동시에 휴식도 주는 한낮의 공원 ~
바람이 불 때마다 꽃비 되어 날리는 눈부신 벚꽃...
이어서 강렬한 색감으로 튤립이 피어나기 시작했고
무수한 꽃봉오리들이 다투어 대기 중인 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