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먹거리를 제때 제대로 챙기지도 못하면서도 계절 따라 식재료나 밑반찬을 떠올리며 갖춰야 한다는 생각을 습관처럼 하는 것은 순전히 울 엄마 탓(?)이다. 그동안 종류별 김치는 물론이고, 장류, 고춧가루나 참깨, 들깨, 참기름, 각종 부각 류, 깻잎이나 더덕장아찌, 삭힌 고추 등 헤아릴 수도 없을 만큼 많은 음식을 당연한 듯 엄마에게 얻어먹으며 살아왔다.
특히 엄마 덕분에 사철 맛난 콩을 섭취하며 살아왔다. 편리한 맛에 길들여진 자식들이 철 따라 몸에 좋은 콩을 사서 먹지 않는다는 걱정을 하시면서 엄마는 언제나 풋콩이 한창일 때면 시장에 나가 콩을 한 보따리 사 오셨다. 직접 껍질을 까 여섯 자식들에게 나눠주면 우리는 그저 잘 먹기만 하면 되었다.
그런데 어느 해 여름 무렵 엄마가 먼 길 떠나시던 날, 산에서 내려와 한없이 집안을 둘러보다가 또 한 번 가슴이 뭉클해진 기억이 있다. 슬픔에 젖어 집안을 둘러보다가 냉장고를 열어보았다. 그곳엔 그즈음 한창이었던 완두콩 여섯 봉지가 소담히 담겨 있었다.
그 무렵 허약하셨던 엄마는 병환이 깊어져서 자주 병원을 출입하셨고 종종 입원하기도 하던 때였다. 아마 병원에서 잠깐 나왔을 때 시장에 가서 완두콩을 한 자루 사 왔을 것이다. 그리고 손톱 아프게 콩을 까고 깨끗이 씻어서 물기를 빼고 여섯 자식의 맛있는 밥상을 위해서 봉지마다 완두콩을 담았을 모습이 눈에 선하다.
우리는 엄마를 생각하면서 여섯 봉지의 초록빛 완두콩을 한 봉지씩 소중히 집어 들었다. 그러나 시간이 한참 지나도록 나는 그 완두콩을 차마 먹을 수 없었다. 아마 오빠나 언니들도 그러지 않았을까 싶다. 뭐라도 더 주려고 늘 성화였던 엄마의 자식 사랑을 올케언니들도 내려받았는지 오빠네 집에 가면 엄마가 주시던 전리품 보따리를 지금도 여전히 그대로 챙겨서 오곤 한다.
요즘 복잡한 냉동실 정리를 시작하면서 한두 가지씩 식재료를 소비하는 중이다. 어제는 블랙홀처럼 정신없는 냉동실 속에서 한 달 전쯤 사다 쟁여둔 완두콩을 보았다. 순간 자동반사적으로 떠오른 울 엄마 생각에 뭉클하다. 그리고 여전히 미치게 그립다.
잘 지내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