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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즈 Mar 05. 2024

남쪽 바닷가 중생대의 신비, 경이로운 경남 고성

-1억 년의 전설 앞에서 봄을 맞다






남쪽 바다의 새벽, 시루섬이 잠긴 바다가 어슴푸레하다. 수평선 위로 떠오른다는 아침 해는 간데없다. 심상찮은 기후와 미세먼지 나쁨 수준도 한몫했다. 간밤에 뿌리던 비로 하늘이 맑아졌으려나 했지만 새벽이 되어도 구름이 잔뜩 가린 채 신비하다. 작은 해변가 시루섬은 고성 상족암 군립공원 해안 끄트머리에 그렇게 무심히 비경을 숨기고 있었다.  

 

경남 고성군의 시루섬은 떡시루 모양을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근래 들어서는 케잌섬으로 불리기도 한다는데 시대에 따라 달라지는 이름이 어디 이것뿐일까. 밀물과 썰물에 따라 섬과 육지로 바뀌는 섬의 모습을 보기 위해 사람들이 찾아드는 곳이다. 끊임없는 자연의 변화 속에서도 오직 그곳에 그림처럼 떠 있는 이날의 시루섬은 잔잔한 물속에서 또 하루를 시작한다.

 

바다 냄새를 품은 새벽 공기가 가슴 깊이 파고들어 시원하다. 고요한 바다 위에서 숱한 세월을 보내고 있는 시루섬은 푸르스름한 어둠 속에 잠겨있다. 지금도 여전히 탄성이 절로 나오는 일출과 일몰은 물론이고 한 밤이면 별을 좋아하는 이들이 찾아드는 곳, 그렇게 우주의 신비를 담아 언제나 명장면을 연출하는 섬이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우리가 찬탄하는 기이한 자연의 현상은 기후변화에 따라야 한다는 사실이다.  

 

시루섬 옆으로는 세월을 켜켜이 쌓은 듯한 암벽으로 이루어진 산이 섬을 에워싼 형태다. 물이 들고날 때마다 사람들은 맨손으로 해조류를 집어 올린다. 갯바위에 걸터앉아서 바다낚시의 즐거움을 낚아 올리는 낚시꾼들의 모습도 더러 보인다. 겨우내 무채색의 색감이던 바다에서 상큼한 초록의 파래 이끼가 바위 위에서 흐르는 물 따라 빗질하듯 씻겨 내리는 모양 또한 시원하다.

 

몽돌이 구르는 해변가엔 수천수만 년을 구르고 굴러 반질반질한 몽돌로 가득 채워졌다. 무수한 세월이 담긴 바윗돌이 지나는 나그네에게 걸터앉도록 자리를 만들어 주고 날마다 파도를 만나며 오늘도 시루섬을 이룬다. 시루섬 몽돌해변의 여유로운 풍경과 새벽 공기의 개운함은 비길 데 없다.

 

바다 건너편으로 솟아오른 작은 섬들이 마주 보인다. 시루섬 우측 뒤로 보이는 섬은 봄이면 분홍빛 진달래가 화사한 사량도다. 크고 작은 다도해 중에서 시루섬 왼쪽으로 봉긋이 솟은 두 개의 섬이 질매섬이다. 섬사람들은 가슴을 닮았다 하여 유방섬이라 부른다. 날 좋은 때는 이곳에 앉아 섬 사이로 떠오르는 유방일출(乳房日出)과 다도해의 절경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고 하니 한시름 놓고 일출을 보고 싶을 만하다.

 

물이 완전히 빠졌을 때의 시루섬은 태곳적을 연상시킨다. 직접 가까이 다가가 시루떡처럼 쌓이고 쌓인 바위 위를 걷고 섬의 풍광을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다. 시선이 닿는 모든 것이 바다와 하늘이고 그 사이에 자리한 섬과 헤아릴 수 없는 세월의 몽돌과 바위다. 수억 년의 시간을 간직한 섬의 속살을 바닥까지 들여다보고 갯바위로 연신 파도치는 바다 풍광이 가슴 뛰게 한다. 거룩한 세월이 담긴 시루섬이다. 태곳적 순수한 자연을 들여다보면서 가슴 벅찬 시간이다.

 

고성은 동해 최북단의 강원도 고성이 있고 이 땅의 남쪽에는 경남 고성이 있다. 남해의 바닷가 마을 고성은 주변으로 통영이 있고 사천과 진주가 둘러 있어서 고성이 먼저 언급되지 않는 경우를 종종 본다. 여행지로서 고성을 말할 때 오히려 주변 지역이 등장하기 일쑤다. 이를테면 시루섬에 이어서 고성이 아닌 삼천포 쪽으로 여행 노선을 잡기도 하는 걸 보면 말이다. 그만큼 고성은 겸손하게   뒤에 있는 느낌이었다. 이제는 다르다. 경남 고성의 가치를 찾아 떠나는 이들이 늘어났다.

 

시루섬에서 멀지 않은 곳에 고성상족암군립공원의 명승 상족암과 인근 덕명리 일대의 공룡 발자국 화석지는 고성을 대표한다. 중생대 백악기 공룡의 발자국이 남겨진 화석산지로 상족암군립공원은 1억 년이 넘는 시간을 선명하게 간직한 신비로운 지역이다. 언제부터인가 핫플레이스라며 멋진 포토존이라며 사람들이 몰리는 곳과는 확연히 다르다. 의미와 가치를 생각해 본다면 실속 있는 여행지가 고성이다. 따지고 보면 해안 절경이나 수려함의 극치 또한 따르기 어려울 만치 절경이다.

 

남해의 바닷가 제전마을 입구에서 시작되는 해변길 옆으로 층층의 기암괴석을 지난다. 제전항 입구의 해변에는 이미 바지를 걷어 올리고 소라를 줍고 모래놀이를 하며 노니는 아이들이 보인다. 따뜻한 남쪽 바다다. 모래톱 옆으로는 언제 적 화석일지 모르는 너른 바위가 몇 겹씩 겹쳐서 펼쳐져 수억 년 전의 위용을 뿜어낸다. 해안선을 따라가다 보면 나무 산책로가 길게 이어졌고 데크 아래로 내려가 화석과 해변의 바다를 만난다. 공룡발자국이 이상할 것 없을 만큼 화석으로 남은 암반과 돌들을 쉽게 눈앞에서 본다. 공룡이 이렇게 이동했구나 하면서 발자국 따라 너도나도 발을 대보기도 하다니 상상만으로 생각했던 것들이 현실이 되어준다.        

  

경상남도 청소년 수련원 앞 몽돌해변까지 가서는 누구나 바다로 내려선다. 바다를 앞두고 갯돌이 굴렀을 시간을 가늠해 보는 몽돌밭이다. 여행자들이 하나씩 쌓아 올린 돌탑이 해안 풍경을 이루었다. 층층마다 담겼을 소망이 민속신앙보다 더 맹목적인 믿음이 담겼을 터다. 누구라도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가만히 돌 하나 얹는다.


몽돌해변에서 바라보이는 봄 바다, 널따란 암석이 층을 이루어 마음대로 쭉 쭉 뻗친 모양새로 파도를 맞고 있다. 낮은 언덕을 오르내리다 보면 남쪽 바다의 최고의 절경 고성 상족암(床足巖)이다. 떨어져서 보면 마치 밥상다리처럼 생겼다 해서 붙여진 이름 상족암은 무수한 암반이 겹겹의 층을 이루었다. 푸짐하게 밥상을 차려내도 천년만년을 견딘 굳건한 상다리가 휘일 염려는 없겠다.

 

경남 고성군 하이면 덕명리 해안의 상족암은 1983년 군립공원으로 지정, 주변 일대를 모두 포괄하는 상족암 군립공원이다. 세계 3대 공룡 발자국 화석지이자 천연기념물 제411호다. 수억 년 퇴적층의 지각변동으로 생겨난 기묘한 모습을 보면 단박에 압도된다. 대형의 구들장이 겹겹이 층을 이룬 듯한 암벽 속으로 뚫어진 동굴 속에서 보이는 사람들의 실루엣이 신비롭다. 고작 백 년쯤 겨우 사는 인간들이 찾아들어 수억 년의 세월을 견딘 동굴 속을 신기한 듯 들락날락한다. 그 옛날 선녀들이 옥황상제에게 바칠 금의를 짜고 목욕을 하던 선녀탕이 웅덩이가 되어 사람들은 실루엣 반영 사진 찍기에 열 올린다. 태고의 동굴 밖으로는 물보라를 일으키며 유람선이 지나가고 봄 바다 위로 윤슬이 빛난다.


 

 



♠고성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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