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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슉 Sep 27. 2020

아직도 미완성이에요

어릴 적 나의 꿈은 선생님이었다. 누군가를 가르치는 것이 무척이나 멋져 보였고 또 재미있어 보였다. 대학교 4학년 때 여중으로 교생실습을 나갔다. 그때 깨달았다. 내가 아이들을 아우를만한 카리스마가 없고 중학생 아이들을 무서워한다는 것을. 어떻게 그들을 대해야 할지 몰랐다. 물론 사회생활 경험이 전무하던 때라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 몰랐을 것이라고 변명할 수도 있지만 그렇게 치부하기엔 내 첫 수업시간 나를 바라보며 한 학생이 건넸던 위로의 말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선생님, 떨리죠?!”          


대학교를 졸업하고 임용고시를 잠시 준비했지만 끝을 알 수 없는 싸움에 끼어들 자신이 없었다. 그리고 교생실습에서 만났던 중학교 3학년 학생이 나에게 했던 그 말이 내 귀를 맴돌았다. 그래서 10대를 통틀어 꿈꾸었던 선생님 되기를 포기했다. 마음이 홀가분했다. 그런데 그것은 내가 좋아하는 것을 찾아가면서, 먹고도 살아야 하는 어른들의 전쟁터에 입문하는 과정이라는 것을 그때는 미처 알지 못했다.   

        

그 이후로 내가 선택했던 길들은 어른들이 보기엔 가시투성이의 험한 길이었다. 아마도 울 엄마, 아빠가 내 상황을 자세히 아셨더라면, 혹은 좀 더 극성스러운 부모님이었다면 나를 뜯어말렸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도 자신하건대 지금까지의 선택들은 그 당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들이었고 또 아무런 계획 없이 어리석게도 파랑새만을 좇아가는 것은 아니었다. 내 나름으로 치열하게 블루오션을 선택했고, 선택한 후에는 청사진을 그려놓고 그것을 향해 최선을 다했다.          

 



“삼성이라는 대기업과 우리 회사에 둘 다 합격했다고 가정하면 어떤 회사를 선택할 건가요?”     

“당연히 지금 앉아있는 이 회사를 선택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삼성에서는 뚜렷하게 저만이 할 수 있는 일보다는 평범한 신입사원의 길을 가야 하겠지만, 이곳에서는 제가 가진 전문지식을 적용하고 제가 주체가 되어 일을 추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저 대답 속에 나의 20대와 30대의 포부가 고스란히 담겨있다. 선생님의 꿈을 포기한 뒤 새로 들어선 분야에서 그래도 어느 정도의 성과를 남기고 싶었다. 그 분야의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도 받고 싶고, 재미있게 살고 싶기도 했다. 그렇지만 애석하게도 면접 속의 저 대답은 나의 이상일뿐, 나의 게으름과 소심함 그리고 거대한 조직 속에 도사리고 있던 보이지 않는 두꺼운 벽은 나에게 좌절을 안겼다. 그렇게 나의 포부는 사라졌다.

           

앞으로 평생 이 곳에서 매년 똑같은 일을 하면서 살아갈 생각을 하니 끔찍해졌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내가 조직이라는 것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사회 부적응자는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그곳을 떠나고 싶다는 욕망을 애써 눌렀다. 그렇지만 결국 내 인생은 내가 살아가는 것이다. 그즈음 인생에서의 큰 이별들을 경험하면서 인간이라는 존재는 언제든지 갑자기 흔적도 없이 사라질 수 있는 나약한 존재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게 나는 30대 후반에 다시 새로운 분야로 뛰어들었다. 그렇지만 아주 새로운 분야는 아니었다. 이전에 몸담았던 학문 분야와 연결지점이 있었고 이것 또한 학문 간 통섭의 능력을 갖춘 하이브리드형 인간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엿보았기에 환승이 가능했다. 그렇다. 스스로 또 열심히 찾아낸 블루오션이었다.      

     

누군가는 용감하다고 했고 누군가는 열심히 해보라고 격려해주었지만 그들 모두 공통적으로는 내가 어리석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들의 눈빛에서 속마음을 읽었다. 하지만 그때 나는 10년 만의 도전이 전혀 두렵지 않았다. 이미 감당하기 힘든 조직 속에서 그리고 그 안에 존재하는 보이지 않는 벽과 여전히 남아있는 신분제도 속에서 하루하루 시들어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무언가 새로운 길이 있을 것이라는 확신과 재미있게 해낼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이 있었다. 선생님의 꿈을 포기하고 20대 후반에 새로운 분야에 발을 담근 뒤 10년 만에 나는 또 다른 길을 찾아 나섰다.      

     

그렇게 시작한 공부는 또 다른 가시밭길을 나에게 선사했다. 후회의 날들과 그때 나를 뜯어말리지 않았던 사람들에 대한 원망이 생길 때도 있었다. 내가 생각했던 확신은 학위라는 자격증을 가진 사람들에 의해 난도질당하기도 했다. 나보다 훨씬 대단한 사람들이 너무나 많았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책상 앞에 앉아서 지내야 하는 시간이 괴롭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사실 그때 나는 무척이나 행복했다. 그곳에서 난 나의 가능성을 확신할 수 있었고 또 다른 중요한 인연을 맺어가며 알차게 시간들을 채워갔다.      


내 발로 내 길을 간다

     

과에서 전무후무한 논문 심사의 전설을 남기고 드디어 졸업을 하던 그날 허무함보다는 기쁨이 넘쳤다. 힘들고 어려웠던 과정을 모두 마치고 그 자리에서 웃으며 사진을 찍는 내가 너무나 대견스러웠다. 그렇게 나는 40대 초반을 보내고 있었다. 그리고 이제 다시 새로운 10년을 맞이하고 있다. 힘겹게 공부했던 지식들이 지금 당장은 회사에서 쓰이지 않는다 하더라도 지금 현재 나의 10년 후를 계획하고 그 길을 걸어 나갈 수 있으니 그것으로 됐다.           


요즘에는 50대가 되면 문화공간을 운영하는 공간지기가 되고 싶다는 꿈을 꾼다. 카페 겸 서점 겸 출판사 겸 다양한 모임이 이루어지는 공간. 삼사십 대에 만났던 학문에서 힌트를 얻어 이런 새로운 꿈을 꿀 수 있게 되었으니 나의 도전은 헛것이 아니었다. 그렇게 스스로를 다독인다. 평소 좋아하던 커피도 계속 좋아할 수 있도록 멋진 카페를 수시로 찾아다니고 전문적인 커피 지식도 조금씩 쌓아가는 시간들을 지냈다. 그리고 카페 하면 디저트를 빼놓을 수 없으니 베이킹에도 관심을 갖게 되었다. 똥손이지만 디저트 이름이라도 많이 알아놓으면 좋잖아~ 또 글쓰기라는 재미난 취미도 갖게 되었고 독립출판도 도전해 보았다. 좋은 사람들을 만나고 그렇게 또 그들과 다음의 시간을 기약할 수 있게 되었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순간도 이러한 시간의 연장이다.      

     

나의 이런 이야기를 듣게 되면 누군가는 아직도 정신 못 차리고 파랑새만 좇다 망할 거라고 혀를 끌끌 차면서 걱정을 할 것이다. 그리고 다른 누군가는 다이내믹한 삶의 시간들을 잘 견뎌냈으니 앞으로도 잘할 수 있을 것이라고 격려할 것이다.           


앞서 말했듯이 지금까지 인생의 큰 선택을 할 때 항상 몇 년 후 내 모습에 대한 청사진을 그리곤 했다. 그리고 그 청사진을 완성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런데 계획했던 그만큼의 시간이 지나고 나서 내가 서 있는 곳을 보면 전혀 뜻하지 않는 곳일 때가 더 많았다. 그래서 깨달았다. 인생은 계획대로 착착 이루어지지 않으니 그 계획을 이루기 위해 나를 다그치지 말아야겠다고.  




사람의 정체성은 고정적인 것이 아니라고 한다. 그래서 죽을 때야 완성된다고 한다.     

“자아라는 것은 하나의 ‘것’이 아니라 하나의 과정이다. 그 과정은 나의 생이 끝을 맺을 때까지 내가 쌓아온, 눈에 보이거나 보이지 않는 모든 행동으로 구성될 것이다. 그래서 과거의 나의 행동을 되풀이하려고 할 때마다 자아의 내부는 변화의 조짐을 보인다.”
(제이콥 브로노프스키, 김용준 역, 인간을 묻는다 중에서)    

      

그렇다. 지금의 나는 내가 지내온 시간이 쌓여서 이루어진 것이고 지금 이 순간은 미래의 나를 만들어가는 시간이다. 나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걱정과 근심 혹은 격려는 항상 있어왔고 또 앞으로도 계속 내 옆을 맴돌 것이다. 아직 완성되지 않은 나를 만들어가는 시간 내내 말이다.          

 

여전히 나는 미완성이고 오늘도 나를 열심히 만들어가는 중이다. 

그리고 완성을 향해 가는 길이 내가 원하지 않은 곳으로 나를 데려다 놓더라도 그것 또한 과정이다.  

     

우리 모두 미완성이다. 

완성을 향해 각자 가는 길이 모두 즐거웠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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