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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슉 Jul 07. 2020

자전거

[이모 말고 고모]

자전거   

  

“고모! 나 자전거 타는 것 볼래?”     


반짝이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면서 내뱉은 저 대사에서 무려 두발자전거를 탈 수 있다는 것에 대한 자랑스러움이 묻어난다. 이렇게 승현이가 자전거의 매력을 알아버렸다.      


자전거, 아련한 로망의 그 물건. 

보통 TV 드라마에서 첫사랑과의 추억을 회상하거나 주인공의 청순 발랄한 시절을 그릴 때 자주 등장하는 것이 자전거일 것이다. 자전거에는 이렇듯 무언가 정의하기 어려운 아련함이 묻어난다. 자전거라는 물건을 떠올릴 때는 배경이 흑백 혹은 세피아톤이다. 적어도 내게는 그렇다. 이런 자전거의 매력을 다시 떠올리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자전거를 타지 않은 시간이 길었지만, 내 머릿속 한구석에 오래전 자전거를 탔을 때의 기분을 간직하고 있었나 보다. 두 볼을 스치고 지나는 바람의 시원함과 양 귓불에 부딪쳐 들리는 바람 소리는 자전거 타기의 매력이다. 시원한 바람과 그 소리에 매료되면 자전거는 끊을 수 없는 마약 같은 존재가 되어버린다. 나도 승현이처럼 초등학교 저학년 때 자전거를 배웠던 것 같다. 자전거를 처음 배우던 그때 정말 자전거 타기에 푹 빠져있었다. 공터에 가서 비장한 각오로 자전거 페달을 밟는 순간, 그 자전거의 뒤꽁무니를 잡고 있던 오빠의 표정도 나만큼이나 비장했으리라.      


‘오늘은 반드시 나 혼자 탄다.’

‘오늘은 반드시 두 손을 놓는다.’     


자전거 페달에 발을 올려놓은 그 순간, 같은 듯 다른 각오를 다지며 우리 둘은 그렇게 자전거에 매진했다. 한 사람은 가르치기로, 한 사람은 배우기로.


자전거 뒤를 놓았으면 좋겠지만 넘어질까 무서운 동생과 이제는 자전거를 잡고 있는 손을 놓아야 할 것 같지만 동생이 넘어질까 걱정되는 오빠는 계속 소리를 지르면서 달린다.    

  

“놓는다!! 놓지 마? 놓는다!!”

“놔놔!! 안돼~! 놓지 마 놓지 마.. 아니야 이젠 놔도 돼!!”     


도돌이표가 끊임없는 노래처럼 놓는다와 놓지마를 반복하다 어느 순간 자전거신이 강림한 듯 나는 혼자서 달리게 되었다. 천천히 그렇게 달리라고 고래고래 지르는 오빠의 목소리가 아련하게 들릴 듯 말 듯하더니 나는 어느샌가 자전거 세계로 빨려 들어가 있었다. 아... 자전거를 탄다는 것이란 이렇게 시원하고 청량한 것이구나. 그 순간 자전거는 나를 다른 세계로 데려다주는 차원의 문 같았다.    

   

그날 이후 나는 자전거 타기에 대한 도장 깨기를 하였다. 조금 더 큰 자전거, 조금 더 멀리, 조금 더 빨리. 어디서 나왔는지 모를 도전정신이 계속해서 샘솟았다. 그만큼 끊을 수 없는 재미가 있었다. 아.. 너무나 재밌다. 자전거 타기 너무 재밌어. 드디어 나 혼자 두발자전거를 타게 되었다는 그날의 성취감. 살짝 더운 날이었지만 자전거를 타는 동안 느껴지는 청명한 그날의 바람. 딱딱한 안장에서 덜컹거리며 느꼈던 그날의 엉덩이 아픔. 몇십 년을 잊고 지내고 있었다.      




승현이는 4살 무렵인가, 세발자전거 타기부터 차근차근 기초를 밟아나가더니 8살이 되자 어느덧 두발자전거를 타고 있었다. 처음 사주었던 두발자전거도 이제는 조금 더 큰 것으로 바꾸어야 할 시기가 되었다. 내 기억 속에는 아직도 아기인 것 같은데 언제 두발자전거를 배웠니? 그 뒤에는 새언니의 노력이 숨어있겠지만, 그것을 또 잘 배워나가는 승현이도 대견하다.      


세발자전거를 처음 탈 때부터 승현이는 내달리기 본능을 작동시켰다. 쫄보인 고모가 보았을 때는 한없이 위태로워 멈추라고 계속해서 소리 지를 만큼 앞만 보고 달렸다. 내가 멈추라고 하면 할수록 깔깔대는 웃음소리는 더 커지면서 그와 비례하게 속도도 더 빨라졌다. 마치 경주에 집중하기 위해 눈 양옆을 가리고 달리는 경주마처럼... 두발자전거도 직진 본능을 발휘하여 어렵지 않게 배우더니만 한동안은 직진만 계속했다. 그러더니 어느 날부턴 가는 비장한 표정으로 커브 도는 연습을 해댔다. 빙글빙글 도는 것만 계속해서 연습했다. 보는 사람 눈도 함께 빙글빙글 도는 것 같았다. 그러더니 이제는 커브도 잘 돌 수 있다며, 그것은 세상 혼자서만 할 수 있는 것이라는 냥 자랑질을 해댔다. 평소 고모가 성인이라는 것을 잊고 지내는 승현이는 무엇이든 나보다 자기가 잘한다고 생각하나 보다.      


저 멀리까지 앞서가는 승현이


나를 바라보는 똘망똘망한 승현이의 눈을 보자 문득 그날의 바람, 그날의 날씨, 그날 오빠의 목소리가 다시 한번 내 머릿속에 펼쳐졌다. 그동안 까맣게 잊고 있었던 그날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또렷해졌다. 그러고 보니 자전거를 안 탄지도 정말 오래되었다. 언제였던가 어른이 되어 다시 자전거를 타보니 무섭더라. 엄마야! 속도가 너무 빨라, 다른 사람이랑 부딪히면 어쩌지, 와.. 차랑 부딪히면 끝장이네... 나 같은 쫄보는 탈것이 못 되구나 싶었다. 자전거를 처음 타던 그날의 기억들은 몽땅 날려버린 채 말이다. 내 인생 크나큰 성취감을 느끼던 그날인데 그것을 잊고 있었다니.      


얼큰한 맛의 느낌과 밤늦은 시간까지 노는 것, 좋아하는 만화의 주제곡을 크게 따라 부르는 것과 더불어 자전거 타기까지 다채로운 인생의 소소한 재미를 하나씩 차곡차곡 알아가는 승현이가 고모의 눈에는 너무나 신기하다. 따가운 햇살과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공원에 함께 자전거 타러 갈 수 있다는 것 또한 신기하다. ‘2인용 자전거를 탈까? 각자 자전거를 탈까?’라는 고민도 자연스럽다. 자전거를 타는 동안 나를 스치는 바람의 시원함과 그 소리를 함께 공유할 수 있게 되었다. 승현아, 고모가 잊고 있던 그날을 상기시켜주고 함께 나눌 수 있게 되어 고마워.      

이젠 제법 의젓


승현이의 자랑질에 대한 도전으로 나도 또한 다시 한번 용기를 내어 보리라. 승현이처럼 당당하게 앞으로 내지르던 그날의 나를 소환해보리라. 그리고 그 바람을 즐겨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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