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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슉 Jul 11. 2020

구구단

[이모 말고 고모]

구구단 

    

"이것도 못하면 큰일 나. 안 돼. 다시 해 봐. "


이것은 내 인생 좌절의 대명사로 남아있는 ‘구구단의 밤’을 대표하는 대사라고 하겠다.         


내 기억 속 인생의 첫 번째 위기는 구구단이었다. 누구나 9살, 초등학교 2학년이 되면 거쳐야 하는 관문이었던 구구단은 나에게 유독 큰 위기로 기억에 남아있다. 지금은 찾아보기 힘든 책받침의 뒷면을 빼곡히 채운 곱하기 표시와 숫자의 규칙적인 배열이 내 눈 앞에서 뱅글뱅글 돌았다. 들여다보면 볼수록 매직아이처럼 숫자들이 허공에 둥둥 떠서 제멋대로 움직이는 것 같았다. 그 순간 가지런히 정렬되어 있는 숫자들의 나에게는 공포로 다가왔다. 그것을 마주하면 안절부절못하며, 눈으로 보고 머리로 생각하고 입으로 내뱉는 기본적인 신체동작의 메커니즘이 작동하지 않았다. 아마도 구구단을 처음으로 접한 이후 나는 잠재적 수포자로 성장했던 것 같다.      


초등학교 2학년, 구구단을 배울 시기가 되자 4살 터울의 오빠는 나에게 구구단을 가르치라는 부모님의 특명을 받고 나를 열심히 조련했다. 오빠의 열정이 있었기에 지금까지도 내 기억 속에 또렷이 각인된 ‘구구단의 밤’이 있다. 때는 창밖에 이미 어둠이 내린 늦은 저녁 시간이고, 장소는 아담한 다세대주택 1층의 거실이었다. 그 거실에는 구구단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초등학교 2학년과 초등학교 6학년의 남매가 있었다. (이때의 헤어 나오지 못함은 늪 밑바닥에서 발목을 잡아당기는 숫자들 때문에 발생한 것으로, 좋은 의미가 결코 아니다.) 그날 나는 바깥이 어두컴컴해지도록 구구단을 외우느라 9살 나름의 구슬땀을 흘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서 오빠는 나를 가르치는 답답함에 지쳐가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구구단 실력은 제자리였던 모양이다. 오빠의 얼굴에 점점 표정이 없어지고 있었다. 평소 하나밖에 없는 동생이라며 여타의 오빠들에 비해 동생을 사랑해주었던 나의 오빠는 급기야 마음속 깊은 곳에서 치밀어 오르는 감정을 숨기지 못하고...               


“야, 5단은 진짜 쉬워. 5, 10, 5, 10... 이것만 기억하면 돼. 이것도 못하면 진짜 안 돼.”     

  

맞다. 5단은 구구단 중에 2단보다 쉬운 것 같다. 끝자리가 5와 0으로만 끝나니 얼마나 규칙적인가. 2단을 마스터한 후 순서대로 3단과 4단을 가르치던 오빠는 동생이 진척이 없자 급기야는 5단으로 뛰어넘어 구구단의 원리를 가르치려 했다. 내 눈에는 구구단을 모두 외우고 원리까지 가르쳐주는 오빠가 위대해 보이기까지 했다. 그러는 한편으로 머릿속에 뒤죽박죽 되어 좀처럼 정렬되지 않는 숫자들 때문에 나는 잔뜩 주눅이 들어있었다. 오빠가 아무리 쉽게 설명을 하고 최대한 다정한 목소리로 가르침을 전달해도, 이미 숫자들의 우물 속에 빠져버린 내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창밖에 내리깔린 어둠이 거실까지 침범하더니 결국은 나를 집어삼켜버린 것 같았다. 오빠는 바로 내 앞에 앉아있는데 그곳은 밝은 빛이 비치는 명랑한 음악이 흐르는 피서지라면, 내가 앉아있는 곳은 까만 구름으로 뒤덮인 모래바람 부는 황량한 사막 같은 기분이었다. 아... 내가 과연 구구단을 다 외울 수 있을까? 내 인생 앞으로 어떻게 되는 것일까?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그때의 나는 이런 걱정을 한가득 하고 있었겠지. 그럴 걱정하고 한눈팔 시간에 구구단이나 외울 것이지...     


나는 구구단을 습득하는 것이 정말 느렸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비단 구구단뿐만 아니라 무언가 이론이나 규칙을 학습하고 성과를 내는 것에 있어서 속도가 빠르지 못했던 것 같다.) 숫자들 속에서 그것들의 규칙을 찾아내는 것이 무척이나 어려웠고 또 영영 모르게 되면 어쩌지라는 생각에 무서웠다. 구구단은 그렇게 나에게 쓰라린 기억을 남겼다. 지금도 구구단을 외우던 그 날의 오빠의 표정과 창문으로 보이던 어둠이 잊히지 않는다.                

내 마음속에 ‘구구단=어둠’의 등식이 성립된 순간이다.      




어느덧 9살 봄, 승현이가 구구단을 외우기 시작했다. 두 자리 수의 덧셈, 뺄셈을 배우면서 고모도 할 수 있냐며 진지하게 물어보던 게 엊그제인데, 언제 이렇게 컸나 싶다. 감개무량하다는 말은 이럴 때 쓰는 건가 보다. 그런 승현이가 앞니 빠져 새는 발음으로 내 앞에서 구구단을 외운다.        

        

이 일은 이 / 이 이 사 / 이 삼 육 / 이 사 팔 .. 음.. 다시 다시.. 잠깐만 기다려봐 고모. 다시 할게.    

이 일은 이 / 이 이 사 / 이 삼 육 / 음... 이 사 팔 / 이 오 십 / 이 육 십이 / 이 칠 십사 / 이 팔 십육 / 이 구 십팔 


와!! 브라보!! 진짜 브라보!          

나도 모르게 승현이를 바라보며 물개 박수를 치고 있었다. 이런 나를 보고 녀석은 자랑스럽게 씩 웃었다. 정말 너는 무럭무럭 자라고 있었구나. 고모처럼 구구단이 쓰라린 기억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렇게 또 인생의 허들을 넘는 승현이가 대견하고 또 신기하기 그지없다. (이 글을 쓰고 퇴고하는 시간 동안 승현이는 무려 8단까지 외웠다. 이 녀석은 구구단이 무섭지 않은가 보다.)  


             

제법 초등학생의 티가 나기 시작



“이것도 못하면 큰일 나. 안 돼.” 

              

아직도 오빠의 걱정 어린 목소리가 귓가를 맴돈다. 오빠는 그 구구단의 밤을 나와 함께 채우며, 구구단도 못 외우면 앞으로 나올 곱셈과 나눗셈은 어떻게 하려고 저러나 하는 생각에 마음이 심란했을 것이다. 하나뿐인 동생의 앞날에 대한 걱정과 근심이 위와 같은 명대사를 만들었다. 명대사를 내뱉던 오빠의 근심 어린 표정이 지금도 생생히 느껴진다.       

         

이제 와 생각해보면 밤늦게까지 구구단을 외우는 어려움 따위 인생에서 큰 에피소드도 안 될 것인데, 그때는 그것이 너무도 크고 높아서 영영 넘지 못할 것 같은 산이었다. 언제 9단까지 외우나, 끝내 못 외우는 건 아닐까, 나는 왜 이렇게 못하나 등등의 걱정들이 마르지 않는 샘처럼 퐁퐁퐁 계속해서 샘솟았다. 그렇지만 결국 나는 구구단을 어찌어찌하여 외웠고, 수학을 끔찍이도 싫어했지만 그럭저럭 중학교-고등학교의 학창 시절을 무사히 넘겼다. 그리고 지금 이 나이가 되어 9살이 된 승현이를 보면서 나의 9살을 떠올리고 있다. 사실 승현이 덕분에 나의 9살을 떠올리기 전까지 그날 ‘구구단의 밤’은 내 기억 저편에 웅크리고 있었다. 그러다가 승현이의 구구단 외우는 낭랑한 목소리에 현실처럼 소환되었다. 지금 나는 기억 저편에서 오랜만에 소환된 ‘구구단의 밤’을 마주하며 빙긋이 웃을 수 있는 시기가 된 것이다. 지금의 내가 그때의 나에게 “구구단을 외우는 것은 인생에서 아무것도 아니야. 승현이처럼 즐겨!”라고 응원해주고 싶다.  

           

지금 내가 꾸역꾸역 버텨내고 있는 악몽 같은 시간들도, 나를 무섭게 괴롭혀 두려움에 떨게 하는 좀비 같은 인간들도, 시간이 지나고 나면 9살 때 마주했던 구구단처럼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겠지. 악몽 같은 시간들을 하루하루 마주할 수밖에 없다면, 그리고 나를 끊임없이 뒤흔드는 좀비들을 죽여도 죽여도 계속 새로운 좀비들로 채워진다면 구구단을 기억해내자. 승현이의 구구단처럼 띄엄띄엄 나아가더라도 포기하지 말고 즐기자. 즐기는 것이 어렵다면 악몽을 버텨내는 것도, 계속 살아나는 좀비들을 없애나가는 것도 포기하지 말자. 


그리고 그것을 마치고 나면 스스로를 대견해하자. 

인생의 구구단 에피소드는 앞으로도 무궁무진할 테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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