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의 도시락 메뉴는 자신을 닮아 한결같다. 슈퍼에서 산 치킨너겟을 냉동실에 넣어두었다가, 여섯 조각씩꺼내어 작은 프라이팬에 식용유를 두르고 중 약불에서 노릇노릇할 때까지 굽는다. 브라운으로 변색되면서 조금 부풀어 오르면 익었다는 신호니, 얼른 꼬마 도마 위로옮긴다. 10분 간 다른 일을 한다.
손대면 금방 델 듯뜨겁던 것이 싸늘히 식어버린 너겟을 각각세쪽으로썰어 도시락통에 넣고케첩을 뿌린다.옆칸에 잡곡밥을 퍼담고 뚜껑을 닫는다. 작은 통에는 체리 여덟 개를 씻어 담는다.
매운 반찬이 없었는데 입안이 얼얼했다고?
그렇다고 그녀가 거짓말하는 것도 아니니, 난 저녁설거지를 하면서 골똘히 생각해 보았다.
알았다. 포크다.
우리 부엌 수저통엔 검은 손잡이 포크가 대여섯 개 들어있다. 난 도시락을 쌀 때마다 손에 짚히는 대로 넣어준다. 어제도 그랬다.
스테인리스로 된, 땅바닥에 탁 떨어뜨려도 깨지지 않는 누가 봐도 지극히 단단한 포크는 맛을 품지 않을 줄 알았다. 물컹한 망고나 사과나 복숭아 같은, 물렁한 것들만 상하고, 그래서 그 몸에서 냄새를 풍기는 줄 알았다. 그러고 보니 며칠 전 내 뒤뜰에서 걷던 나의 맨발도 얼얼했었다. 이전에 거기다 붉고 매운 고추를 널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른 고추에 진득하게 들러붙은 노란 씨앗을 포크로 긁어서 훑어 내었다. 그때, 콘크리트와 포크가 고추의 매운맛을 품었던 거다. 세제를 묻혀 물로 씻어내었는데 그때까지 배어있었던 거다.
여기 오기 전 압구정 뒷골목에서 글모임 리더였던 P 선생의 말이 떠오른다. 한때 베스트셀러 소설가이기도 한 선생은, 어디 낯선 장소라도, 그곳에 딱 가보면 이전의 분위기가 감지된다고 했다.
정다운 분위기였는지, 웃음꽃이 가득했었는지, 뜨개질을 했는지, 술판이나 싸움판을벌였는지... 를 알 수 있다고 했다.그 소리를 듣고 반신반의했던 기억이 소환되었다.
쇠붙이로 된 포크가 고추씨의 매운맛을 품은 걸 확인하고 난 후부터 요즘은, P 선생의 그 말이믿음 편으로 더 기울게 되었다.
철옷을 입은 포크처럼, 콘크리트 바닥처럼 단단하게 가린다고 품은 맛이 가려지진 않을 터,
그럼,나로부터 풍겨지는 맛은, 어떤 맛일까.
불현듯 무섭다.앞으로 맛을 품는 일에 조심을 좀 해야 할까 보다.정직, 친절, 성실, 인내, 뭐 그런, 긍정의 내공을 몸에 담지해야겠다.내 고유의 향을 품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