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예나네 Jan 14. 2023

단단한 포크가 매운맛을 품는다니,



도시락이 얼얼하더라 했다

엄마, 왜인지는 모르겠는데 오늘 도시락을 먹는데 입이 얼얼해지던데, 왜 그랬을까.




딸의 도시락 메뉴는 자신을 닮아 한결같다. 슈퍼에서 치킨너겟을 냉동실에 넣어두었다,  여섯 조각씩 꺼내 작은 프라이팬에 식용유를 두르고 중 약불에서 노릇노릇할 때까지 굽는다. 브라운으로 변색면서 조금 부풀어 오르면 익었다는 신호니, 얼른 꼬마 도마 위 옮긴다. 10분 간 다른 일을 한다. 

손대면 금방 델 듯 뜨겁던 것이 싸늘히 식어버 너겟을 각각   썰어 도시락통에 넣고 케첩을 뿌린다. 칸에 잡곡밥을 퍼담고 뚜껑을 닫는다. 작은 에는 체리 여덟 개를 씻어 담는다.


매운 반찬이 없었는데 입안이 얼얼했다고?


 그렇다고 그녀가 거짓말하는 것도 아니니, 난 저녁설거지를 하면서 골똘히 생각해 보았다.

알았다. 포크다.

우리 부엌 수저통엔 검은 손잡이 포크가 대여섯 개 들어있다. 난 도시락을 쌀 때마다 손에 짚히는 대로 넣어준다. 어제도 그랬다.




스테인리스로 된, 땅바닥에 탁 떨어뜨려도 깨지지 않는 누가 봐도 지극히 단단한 포크는 맛을 품지 않을 줄 알았다. 물컹한 망고나 사과나 복숭아 같은, 물렁한 것들만 상하고, 그래서 그 몸에서 냄새를 풍기는 줄 알았다. 그러고 보니 며칠 전 내 뒤뜰에서 걷던 나의 맨발도 얼얼했었다. 이전에 거기다 붉고 매운 고추를 널었었기 때문이다.


리고 마른 고추에 진득하게 들러붙은 노란 씨앗을 포크로 긁어서 훑어 내었다. 그때, 콘크리트와 포크가 고추의 매운맛을 품었던 거다. 세제를 묻혀 물로 씻어내었는데 그때까지 배어있었던 거다.




여기 오기 전 압구정 뒷골목에서 글모임 리더였던 P 선생의 말이 떠오른다. 한때 베스트셀러 소설가이기도 한 선생은, 어디 낯선 장소라도, 곳에 딱 가보면 이전의 분위기가 감지된다고 했다.

정다운 분위기였는지, 웃음꽃이 가득했었는지, 뜨개질을 했는지, 술판이싸움판 벌였는지... 를 알 수 있다고 했다. 그 소리를 듣고 반신반의했던 기억이 소환되다.

쇠붙이로 된 크가 고추씨의 매운맛을 품은 걸 확인하고 난 후부터 요즘은, P 선생의 그 말이 믿음 편으로 더 기울게 되었다.




옷을 입은 포크처럼, 크리트 바닥처럼 단단하게 가린다고 품은 맛이 가려지진 않을 터,

그럼, 나로부터 풍겨지는 맛은, 어떤 맛일까. 

불현듯 무섭다. 앞으로 맛을 품는 일에 조심을 좀 해야 할까 보다. 정직, 친절, 성실, 인내, 뭐 그런, 긍정의 내공을 몸에 담지해야겠다. 내 고유의 향을 품어야겠다.




이전 03화 양보다 퀄리티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