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으로 간 뇌
맛있는 것을 먹을 때, 특별한 장소에 갔을 때, 각종 기념일, 우리는 자연스레 스마트폰 카메라 앱을 켠다. 어느새 사진은 우리의 당연한 일상이 되었다. 우리의 삶에 카메라가 없으면 어땠을까? 그리고 우리는 왜 사진을 그토록 많이 찍는 것인가?
사진(Photography)의 어원은 그리스어의 빛(Phos)과 그리다(Graphos)라는 단어의 합성어이다. 사진의 역사는 생각보다 아주 오래되었다. 기원전 3세기경 아리스토텔레스는 어두운 상자를 만들어 작은 구멍을 뚫고 반대편에 비치는 빛을 이용해 일식을 관찰했다고 한다. 이러한 원리를 이용해 ‘카메라 옵스큐라(Camera Obscura)’라는 도구가 만들어졌고, 이것의 발전한 형태가 우리가 알고 있는 카메라다.
이제 누구나 가지고 있는 것이 카메라지만, 돌이켜 보면 스마트폰이 등장하기 전까지 카메라를 따로 가지고 다니면서 사진을 찍었던 것이 얼마 되지 않았다. 현재의 카메라와 사진의 형태를 띠기 시작한 것은 불과 100여 년 전이다. 카메라 기술과 사진을 종이에 인쇄하는 방법이 발달되면서 1930년 대 본격적으로 사진 기술이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사진 기술의 발전과 더불어 사건을 보도하거나 기사를 보충하기 위해 ‘포토 저널리즘'이 나오고, <라이프>나 <룩>이 사진을 이용한 대표 저널리즘 매체로 꼽혔다.
포토 저널리즘의 선구자로 프랑스의 사진작가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1908~2004)을 빼놓을 수 없다.
6월 10일부터 10월 2일까지 예술의 전당에서 열리고 있는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사진전: 결정적 순간>은 브레송이 작은 필름 카메라를 들고 전 세계를 돌며 찍은 사진들을 전시하고 있다. 그는 단순히 포토저널리즘을 넘어 사진을 예술의 반열로 올린 최초의 사잔 작가다.
브레송은 프랑스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 그림을 배우다, 1930년대 사진의 길에 들어서게 된다. 프랑스인으로 2차 세계대전에 군인으로 참전했다, 독일군 포로가 되어 하이델베르크 인근의 수용소에 수감된다. 그는 3번의 시도 끝에 탈출에 성공하며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사진작가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1948년 인도에서 취재 중 브레송은 단식 투쟁 중인 간디를 만나고 돌아온 지 1시간 여 만에 간디가 암살된다. 간디의 마지막을 담은 그의 사진은 순식간에 그를 유명하게 만들었다. 이후 소련, 아시아, 중남미를 다니며 당시의 시대를 사진으로 남긴다. 간디의 장례식, 영국 조지 6세의 대관식, 중국의 마지막 왕조 황실의 내시, 독일 데사우 나치 수용소 모습과 같은 역사의 중요 순간을 브레송의 눈을 통해 담았다. 카메라는 그에게 눈의 연장이었으며, 그의 작업 방식은 철저하게 직관과 본능에 의거하여 살아있는 삶을 기록했다.
그리고 1952년 20년간 브레송이 찍은 사진 중 126장을 골라 <결정적 순간>이라는 책을 발간한다. 이 사진집은 사진작가들의 교과서로 현재까지도 말 그대로 ‘추앙'받고 있다. 사진집의 표지와 제목은 동시대 최고의 화가였던 앙리 마티스가 그려주었다. 원래 <달아나는 이미지들>이라는 제목으로 프랑스에서 출간되었지만, 영문판의 제목 <결정적 순간(The Decisive Moment)>은 “이 세상에 결정적 순간이 아닌 것은 아무것도 없다"라는 레츠 추기경의 회고록 문구에서 영감을 받아 지었다고 한다.
보통 사람이 감각기관을 통해서 획득하는 정보의 80% 이상이 시각을 통해서 얻어진다. 이런 이유로 시각은 예로부터 많은 과학자들과 철학자들의 관심과 사색의 대상이 되었다.
우리가 무언가를 볼 때 각막을 통해 들어온 정보는 전기적 신호로 바뀌어 뇌의 뒤쪽 부분인 '후두엽'에서 처리한다. 후두엽의 시각피질에서 처리되고 형성된 시각 정보는 기억을 저장.보관하는 '해마'에서 과거의 정보들과 비교하여 판단한 후, 대뇌 피질로 전달한다.
시각 정보는 부정확하게 들어오고, 우리의 뇌는 자신이 알고 있는 기존의 정보를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고 판단한다. 그래서 같은 풍경이나 그림을 봐도 사람마다 느끼는 게 다른 것이다.
여기서 한 가지 궁금한 점이 생긴다. 많은 사람들이 영국을 방문하고, 중국 자금성을 방문해 사진을 찍었지만, 앙리 브레송의 사진과 우리가 찍은 사진의 다른 점이 무엇일까?
현대의 우리는 몇 천만 화소의 카메라를 가지고 있지만, 브레송은 소형 라이카 카메라 1대로 사진을 찍었다. 스마트폰에 끊임없이 사진을 채우고, 순간을 찍고 싶은 현대인의 욕망과 위대한 사진작가의 욕망 사이에 놓인 100년의 시간은 큰 차이가 없다. 100여 년 전 브레송이나 현재의 우리나 삶의 순간을 남기고 싶은 것은 어쩌면 인간의 욕구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브레송의 사진에서 눈여겨볼 것은 과장 없이 군더더기 없는 담백한 피사체다. 그가 자신이 원하는 순간을 포착하기 위해 몇 시간이고 잠복해 기다렸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앙리 카르티에는 사람들의 삶을 사진을 통해 표현하기 원했으며, 일체의 연출이나 플래시, 자르기 등을 사용하지 않았다. 그리고 오랜 시간 기다리며 피사체가 형태적으로 완벽히 정돈되어 본질을 드러내는 순간에만 셔터를 눌렀다.
미학적 완전성과 일상적 휴머니즘을 동시에 담아낸 그의 사진은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결정적 순간’이라 할 수 있다. 그가 찍은 사진을 보면 삶과 세상을 바라보는 따스한 시선을 느낄 수 있다.
한 가지 일화로 브레송은 <라이프>지의 요청으로 영국 조지 6세의 대관식 사진 촬영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가 찍은 사진에는 행사의 주인공인 ‘조지 6세'는 단 한 번도 나오지 않고, 대관식에 참여한 영국 시민들의 모습만 담겨 있었다. 대관식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기대와 들뜸, 인파로 가득 찬 광장 등 브레송은 대관식에 참석한 ‘사람들'을 찍었다. 브레송이 찍은 사진을 받은 <라이프>지 담당자는 어떤 심정이었을까?
“그림과 달리 사진은 고칠 수가 없고, 고치려면 다시 찍어야 한다. 삶은 흘러가는 것이라 똑같은 장면을 다시 찍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인생은 한 번뿐이다. 영원히.”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1973
지금도 흘러가는 중인 오늘 하루 어떤 일상을 사진으로 남기고 싶은가?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의 결정적 순간은 무엇인가?
*이 글은 [브레인미디어] 기사 일부를 재편집하여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