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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상림 May 20. 2024

염부를 노래함

-자작시


염부를 노래함


   한상림


껍데기가 없다는 것은 슬픈 일이야
누군가에게 껍데기가 되어주고 싶었어
모든 상처를 덮어 주는 껍데기의 생
두 개의 뿔을 세우고 흐물텅한 알몸으로
바닥에서 밀고 당겨야 하는 세상은 온통 어둠뿐이었어
그가 꿈꾸는 세상은 초록그늘이 아니라
산호가 춤추는 곳에서 진주의 눈망울을 키우는 조개가 되는 거야
누군가의 껍데기가 되어 보려고
장대비 쏟아지던 어느 날 바다를 찾아 떠났어
바다가 보이는 풀숲에 다다랐을 때
갯바람이 먼저 촉수에 와닿아 짭조름히 끈적였어
모퉁이에서 컨베이어 벨트가 흔들어대고
짠물 위에서 속살거리는 하얀 꽃들에게 말했지
하얀 꽃이 되기 위해서는 아주 뜨겁게 달궈져야 한다고...
단단한 육각을 세우려면 부드러운 바람에 뼈를 만들고
그 뼈들을 모아 한 점 섬이 되는 거라고...
늙은 염부도 한 때는 한 점 섬이 되고 싶어
아내와 함께 바다를 찾은 민달팽이였다는 것을,
햇살 밟고 간 자리마다 납작 엎드린 갯바람이
대파질 하고 있는 그의 등골에다 살랑살랑
달콤한 소금꽃을 피울 때서야 깨달았지
우리의 따뜻한 기억들만이 그 누군가에게
단단한 껍질이 되어 줄 수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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