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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휘 Jun 25. 2020

순례자들이 ‘피레네 부심’이 생길 수밖에 없는 이유

첫날부터 날 후회하게 만든 피레네 산맥


2019년 6월 28일의 기록


생장부터 론세스바예스까지. (27km) (체감 270km)


알람도 없이 새벽 5시에 눈이 떠졌다. 드디어 오늘부터 걷는구나 하는 생각에 들뜬 마음 뿐이었다. 일어나자마자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다. 어서 출발하고 싶어 무려 5분(!)만에 나갈 준비를 마쳤다. 다른 사람들이 깨지 않게 조심스레 침낭을 개고, 배낭을 메고 거실로 나왔다. 하지만 너무 어두웠다. 지금 산에 들어가면 산적을 만날 것만 같은 어둠이었다. 30분 정도 거실에 앉아있다가, 5시 45분 정도 되어서 출발했다.


출발!

상쾌한 마음으로 길에 나섰다. 짹짹 울어대던 새소리, 딸랑딸랑 흔들리던 소의 방울 소리가 아직 잊혀지지 않는다. 새벽공기가 촤악 가라앉은 생장의 모습은 정말 아름다웠다. 날씨도 좋았고, 발걸음도 가벼웠다. 피레네 뭐, 금방 넘겠는데? 라는 아주 멍청한 생각이 들 정도였다.


물론 1시간 후 이러한 생각은 싹 사라졌다.(^^) 오르막길이 시작되고, 해가 떠오르면서 나의 지옥길이 시작되었다. 땀이 주륵주륵 나서 앞이 안 보일 지경이었고, 발에 자꾸만 열이 차서 아팠다. 스멀스멀 후회가 몰려오기 시작했다. 난 왜 여기서 걷고 있는 걸까, 왜 굳이 사서 개고생을 하고 있는 걸까에 대한 후회 말이다.


사실 순례길에 다시 온 이유 중 하나가 피레네 산맥이었다. 모든 순례자들이 공감하는 첫날의 고통을 그때는 겪어보지 못해서 아쉬웠다. 그래서 왔던 건데, 이제 피레네 산맥을 알았으니 집에 돌아가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지금 생각하면 짱 웃김.


피레네의 풍경
오리손의 콜라

죽음의 오르막길을 오르다보면 유일한 중간 마을, 오리손(Orisson)이 나온다. 여기서 마시는 콜라가 정말 맛있었다. 진짜 개꿀맛. 여기서 한국인들을 몇 명 만났는데, 그들에게 이게 내 두 번째 순례길이라고 말했다. 그랬더니 그들은 내가 '왜 다시 왔냐'고 물어봤다. 곰곰이 생각하다가 내놓은 답변은 바로,


"중간 마을 콜라가 그리워서요."

이거였다. 아직 나를 황당하게 보던 그들의 시선이 잊혀지지 않는다. 근데 진짜다. 순례길에서 땡볕 아래 땀이 온몸을 적실 만큼 걷다가 중간 마을 바(bar)에 앉아서 들이키는 콜라만큼 맛있는 콜라가 없다. 저 조그만한 콜라 캔이 무려 2.5유로(약 3,000원)인데, 나에게 주는 행복은 그 값어치 이상이다. 진짜다.


진짜는 오리손부터였다.

누군가 그랬다. 생장에서 출발해서 죽을 것 같을 때쯤 오리손이 나오고, 오리손에서 출발해서 죽을 것 같을 때쯤 푸드트럭이 나오고, 푸드트럭에서 출발해서는 또 죽을 것 같을 때쯤 도착지인 론세스바예스가 나온다고. 우선 푸드트럭까지는 맞는 말이었다. 구름 한 점 없는 쨍쨍한 날씨에 계속 걷다 보니 죽을 맛이었다. 꿈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꿈에서 깨면 순례길 갈 생각은 접어야지, 하는 의미 없는 상상을 하다보니 저 멀리서 푸드트럭이 보였다.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발견한 기분이었다. 발이 아픈 것도 잊고 뛰어갔다.


오아시스같았던 푸드트럭 / 립톤 아이스티

푸드트럭에서 아이스티를 시켰다. 한국 카페의 얼음 가득 복숭아 아이스티가 그리웠지만, 여기선 캔 아이스티로 만족해야 한다. 들뜬 마음으로 캔을 받았는데, 미지근했다. 아니 사장님 이건 좀 아니잖아요. 얼음을 달라고 요청했다. 참 바라는 것도 많다는 표정으로 얼음 하나를 줬다. 작은 얼음 하나. 순간 쒸익...하고 분노가 차올랐지만 이거라도 주는 게 어디야 싶어서 얼른 아이스티에 넣었다. 얼음은 바로 녹아버렸고, 아이스티는 여전히 미지근했다. 지금 생각해도 어이없다. 그래도 아이스티는 맛있었다.


한국어 찾아보기~

푸드트럭의 작은 칠판에는 희망적인 메시지가 쓰여 있었다.(사진을 안 찍었다ㅠㅠ) 이제부터는 내리막길밖에 없으며, 앞으로 11km만 남았다고. 오늘의 여정인 27km 중에서 11km밖에 안 남았다고? 벌써 반 이상을 걸어왔다고? 마음이 또 부풀어 올랐다.


그렇게 쉬울리가 없었다. 역시나 진짜는 푸드트럭부터였다.


진짜 전화할까 말까 고민했다

햇빛이 뜨겁다 못해 아팠다. 토시를 착용하고 있었음에도 팔이 따가웠다. 앉아 쉴 곳이 없어 하염없이 걷다 보니 발이 뜨거웠다. 결국 나중에는 아무데서나 앉아 신발과 양말을 벗고 드러눕기도 했다. 오리손에서 만났던 한국인들을 만났는데, 그들 또한 지친 기색이 여력했다. 얘기를 나누면서 걷다가 헤어지면 또 자연스럽게 만나고, 또 같이 걷다가 헤어지면 또 만나고를 반복했다. 아, 순례길의 묘미 중 하나가 이거였다. 자연스럽게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하는 것.


Mariano라는 스페인 아저씨도 만났다. 그는 로그로뇨까지만 걷는다고 말했다. 왜 끝까지 가지 않으냐 물으니, 그는 휴가마다 순례길을 조금씩 걸을 예정이라고 했다. 스페인까지 온 김에 뽕을 뽑아야 하는 나와는 달랐다. 부러웠다. 로그로뇨에서 우연히 만나서 버스 정류장까지 데려다줬는데, 그는 나를 기억할까? 또 가서 순례길을 걸었을까?


미친듯한 내리막길

사진에 내리막길이 안 담겨서 아쉬울 따름이다. 론세스바예스에 도착하기 2시간 전부터 내리막길이 시작됐다. 미친듯한 내리막길이었다. 오르막길보다 내리막길이 당연히 더 쉬울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내리막길이 100배 더 힘들었다. 아침에는 오르느라 힘들고 낮에는 내려가느라 힘들고.. 이게 뭐 하는 짓인가 싶었다.


무릎이 후달렸다. 나이 23의 젊은 나이만 믿고 운동도 안 하고 갔는데, 벌을 받는 기분이었다. 이날 60대 한국인 아주머니 4명도 같이 출발했는데, 그 분들은 쌩쌩 지나갔다. "아이고~ 젊은 처자가 왜 이렇게 느려~" 하면서 말이다. 그러게요. 전 왜 이렇게 느릴까요...ㅠㅠ


론세스바예스 알베르게

지쳐 죽을 것 같을 때쯤 론세스바예스가 나온다고 들었는데, 거짓말이었다. 진짜 죽을 것 같다. 미친. 집에 가고 싶다. 이렇게 속으로 500번을 넘게 생각해야 나온다. 빌어먹을 내리막길이 끝나고 눈에 론세스바예스 알베르게가 보였을 때 그 심정이란... 정말 감격스러워서 무릎 꿇을 뻔 했다.


발이 너무 아파서 체크인도 늦게 했다. 땀에 젖은 채로 앞에 앉아서 하염없이 멍을 때리고 있으니 알베르게 직원들이 나를 보고 웃었다. "어서 체크인하고 침대에서 쉬는 게 나을걸?" 하면서.


론세스바예스 알베르게. 아주 큰 방에 2층침대가 여러개 있는데, 4인마다 칸막이가 설치되어 있다.

론세스바예스 알베르게는 아주 좋은 편에 속했다. 샤워하고 침대에 앉아 발을 주무르니 살 것 같았다. 아니, 살 것 같다는 표현보다 더 행복했다. 아니 겁나 행복했다.... 내가 드디어 피레네 산맥을 넘었다는 성취감이 들었고, 다시는 피레네에 오지 않으리라는 결심도 했다. (ㅋㅋㅋㅋ) 그래. 한 번으로 족해.


내 옆 방엔 한국인들이 있었다. 이 시기에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알베르게 예약이 필수인데, 그들은 다음 날 알베르게를 예약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내가 스페인어를 할 줄 안다고 하며 전화예약을 도와주었다. 그렇게 다음 날 수비리까지 같이 걸을 사람들이 생겼다. (그리고 레온까지 같이 걷게 되는데..!)


이제 시작이다. 시작부터 힘들었지만, 왠지 잘 해내리라는 생각도 들었다.


이제 나도 피레네 부심을 부릴 수 있게 되었다.

"아~ 피레네 산맥 안 넘어봤으면 말을 마라~~" 하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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