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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프랑스 여름밤의 일정표

10시까지 밝은 여름의 하루란

by 후이리엔

여름을 오랫동안 기다리고 그리워하던 이유가 있다.

물론 여름의 날씨도 그리웠지만, 사실 남프랑스의 겨울은 햇볕도 좋고 겨울 내내 포근한 지역이 많기 때문에 단순히 날씨 때문에 그리워한 것은 아니다. 나에게 있어 가장 큰 이유는 '긴 해'때문이었다.


한국에서도 겨울을 서서히 싫어하게 되었던 가장 큰 이유는 짧아지는 해 때문이었다.

아침에 눈을 떠도 깜깜하고, 퇴근을 하기도 전에 또 깜깜해져 있는 하루

왠지 모르게 하루를 어둠에게 뺏긴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어두운 밤에 즐길 놀거리가 많지 않은 남프랑스 내륙 도시에 살다 보니, 겨울철 짧은 해는 나의 일상을 앗아간 것 같은 느낌마저 들었다.


여름이 시작되며, 7시, 8시, 9시, 그리고 10시

지금은 서서히 일몰시간이 늦어지는 날들을 하루하루 즐기고 있다.




저녁 6~7시, 식전주를 즐기는 해피아워

프랑스는 식전주 문화인 아페로(Apero) 문화가 아주 강하다. 특히, 여유를 즐기는 남프랑스는 더욱 아페로 문화를 중시하기도 한다.

음식점, 펍, 카페의 해피아워*가 대부분 5시~8시인 것을 보고 놀랐었지만, 이제는 익숙하다.

식전주 개념이니 정식 식사가 시작되기 전, 6시부터 주류를 할인해 주는 순서가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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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나, 여름철 해가 늦게 지면 저녁식사 시간 또한 자연스럽게 늦어지게 되는데 그에 딱 맞는 식전주 시간이기도 하다.


식당뿐만 아니라 집에서도 이 규칙은 동일하게 적용된다. 꼭 아페로를 하지 않으면 식사를 할 수 없는 것처럼, 모두 음료나 주류를 하나씩 집어 들고, 아페로 간식을 먹기 시작한다.


*해피아워(Happy Hour) : 특정 시간대에 음료나 음식을 할인된 가격에 제공하는 이벤트




저녁 7시~9시, 저녁 식사를 위한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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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시~7시 30분쯤 식사를 시작하여 9시 정도에 식사를 마치는 시간 동안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기 시작한다. 그때쯤이면 더위는 거의 사라지고, 선선한 날씨와 밝은 하늘만 남는다.


여름철 저녁식사 시간에 테라스 자리가 큰 식당이 항상 붐비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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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역시나 한국인 입장에선 이들과 반대로 6시에 저녁을 후딱 먹고, 8시 전에 해피아워 주류를 마시는 것이 훨씬 잘 맞는다.






밤 9시, 가벼운 산책을 하기 좋은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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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6~8월을 기준으로, 9시쯤 되면 노을이 진다. 대기질이 깨끗하여 태양볕이 한국보다 훨씬 뜨거운 만큼, 노을도 쨍하게 아름다운 모습으로 즐길 수 있다.


지는 해의 붉은빛으로 물드는 무채색의 건물들과 자연은 낮에 보던 청년같이 힘이 넘치던 남프랑스의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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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을이 질 때 즈음이면 남프랑스의 제비 떼들이 하늘을 낮게 날기도 한다. 노을빛을 등지고 떼를 지어 빙글빙글 돌거나, 지나가가는 모습은 평화로움의 상징이기도 하다.




밤 10시, 유럽의 밤거리 조명을 즐기는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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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예 해가 진다고 아쉬울 것이 전혀 없다. 낭만 넘치는 주황 불빛으로 물드는 남프랑스의 골목들을 즐길 수 있는 시간은 이제 시작이다.

가로등 하나조차 조각이 들어가 있고, 은은한 조명으로 밝은 듯 어두운 듯 펼쳐지는 골목길들. 꼭 과거로 돌아간 것 같은 밤거리, 바람에 살랑거리며 소리를 내는 가로수들까지 제대로 즐겨줘야 이 밤을 마무리할 수 있다.





물론 서머타임의 영향이 있기도 하지만, 아주 길어진 여름의 해 덕분에 나는 하루하루를 굉장히 길게 살아가고 있다.


아침에 눈을 뜨면 벌써 하루가 시작되어 있고,

밤에 눈을 감기 직전까지도 해가 떠있는 것


아침에는 깨끗하게 맑았다가,

오후에는 뜨겁게 쨍했다가,

저녁에는 순하게 따스한 여름의 해


오늘도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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