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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세스쏭작가 May 13. 2024

옷걸이가 부족해서 옷을 버렸다

마음의 무게 43kg 덜어 내기

 일 년 새에 100kg 이상의 옷을 버렸다. 그럼에도 옷장은 여전히 미어터지는 상태였다. 계절이 바뀌었다. 겨울 옷을 정리하고 겨우 절반의 여름옷을 꺼냈는데 벌써부터 옷걸이가 부족했다. 단전에서 올라오는 깊은 한숨. 방치된 옷을 걸기 위해 필요한 건 비단 옷걸이만이 아니었다. 이사를 가던지. 옷을 버리던지. 결국 내가 펼칠 수 있는 즉각적 대안은 비움이었다.

 '더는 버릴 옷이 없는데?' 상태가 멀쩡한 옷들을 보니 차고 세일(Garage Sale)이라도 열고 싶은 심정이었다. 시험 삼아 버리기 아까운 원피스 두 벌을 골라 중고 마켓에 올렸다. 몇 개의 하트가 눌렸지만 따로 연락은 오지 않았다. '모조리 다 방문 수거로 처분하자.' 속전속결로 옷과의 전쟁을 끝내기로 마음먹었다.


 사흘 동안 옷더미를 파헤치며 원 없이 먼지를 마셨다. 단순하게 살고 싶은 마음과 대조되는 나의 환경을 보니 헛웃음이 나왔다. 추억이 가득한 옷, 새 옷이나 다름없는 옷, 아직 택도 떼지 않은 옷까지 몽땅 비닐봉지에 쓸어 담았다.

 소매가 너풀거리는 옷, 불편한 옷, 세월의 흔적이 보이는 옷들을 우선순위로 정리했다. 버리면 버릴수록 속이 후련해야 하는데 살짝 슬프고 불안하기까지 했다. '이렇게 괜찮은 옷을 버리는 게 맞는 걸까?' 주변에 입을만한 사람을 찾아볼까 고민도 했지만 그 또한 보통 일이 아니었다. 수거해 가는 분이 알아서 하시겠지 하고 생각하니 마음이 편안해졌다.


 옷을 버리는 김에 신발도 정리했다. 우리 집 신발장은 주인장이 지네인지 사람인지 분간이 안 가는 상태였다. 웨딩 촬영 때 신었던 구두를 포함하여 발에 무리가 오는 신발을 모조리 꺼냈다. 우리 부부가 이번에 버린 신발은 스무 켤레 가량이었다.

 최근에 손웅정 감독님의 저'나는 읽고 쓰고 버린다' 읽었다. 미니멀라이프의 표본인 그는 야외용 신발이 단 네 켤레뿐이라고 했다. 런던에 두 켤레, 한국에 두 켤레.

 "종종 새 신발이 들어오는 일이 있으면 기존의 신발은 버리고 네 켤레의 숫자를 맞춥니다." 그의 강건함은 간결한 삶의 태도에서 드러나는 듯하다. 나도 그처럼 담박하게 살고 싶은데 현실은 개발에 땀나는 훈련의 연속이다.


 공간만 차지하고 있던 옷과 신발을 마주할 때마다 마음이 몹시 불편했다. 자신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면 불필요한 소비가 늘기 마련이다. 오랜 시간 기치 된 물건들이 그 사실을 대변하는 것 같아 이 짓눌렸다. 유행을 따라 산 옷, 남들에게 잘 보이려고 산 불편한 신발과 옷들은 이번 기회에 대거 버러 졌다. 보여주기 식의 소비는 갈수록 나와 결이 맞지 않음을 느낀다.

 옷과 신발 43kg을 정리하면서 '이제 아픈 구두는 신지 않는다.'라는 마스다미리의 책 제목이 생각났다. 인간관계도 물건도 나를 옥죄고 아프게 하는 것들은 제때에 정리하며 살고 싶다. 나란 사람에게 맞지 않 옷과 신발이 빼곡히 들어서 있던 공간에 여백이 생겨났다. 마음이 가벼워졌다. 다가오는 여름엔 좋은 일이 가득 생길 것 같은 예감이 든다.

마음의 무게 43kg 덜어 내기 성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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