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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나B Dec 12. 2018

그렇게 우리는 산티아고 콤포스텔라로 향했다

 어머니와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기로 결심한 건 삼 년 전이었다. 십여 년 전, 어머니께서 산티아고 순례길에 가고 싶다고 하셨을 때 나는 그저 흘려들었을 뿐이었다. 그 뒤로도 어머니께서 종종 산티아고 길에 대해 언급하셨지만 나는 "네네."하고 건성으로만 대답했다. 무심하게도 나는 ‘어머니께서 산티아고를 같이 갈 사람은 당연히 아버지인데 내가 어머니의 계획을 같이 고민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아버지랑 상의하시면 되지.'라고 생각하며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인생은 예상하지 못한 일들의 연속이라 말하지만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던 일이 벌어졌다. 2012년, 사랑하는 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 우리는 모두 아버지의 부재를 슬퍼했고, 아버지를 그리워했다. '결혼하면 반드시 아버지와 어머니처럼 사랑하며 살아야지.'라고 다짐할 정도로 두 분은 서로를 아끼고 사랑하는 연인이자 가족이었다. 어머니는 아버지를 보내시고 난 후 더 이상 산티아고 순례길에 대해 말씀하지 않으셨다.



몇 년이 지난 후 어머니께서 불현듯 말씀하셨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어볼까 봐."


마침 회사에서는 3년, 5년, 10년의 계획을 내라는 요청이 들어왔고 나는 어머니와 걸을 순례길을 고려하여 3년 후의 계획에 2주의 휴가를 넣었다. 하지만 3년이란 긴 시간 동안 산티아고에 대한 열망도 조금씩 사그라졌다. '많은 사람들이 가서 고생만 하다 돌아오던데 굳이 거길 가야 하나?' '어머니께서 내가 없는 첫 3주를 잘 버티실 수 있으시려나?' 생각하면 할수록 산티아고에 가겠다는 계획은 이루어지기 힘든 꿈으로 여겨졌다. 어머니의 첫 번째 버킷리스트였던 산티아고 순례길은 언젠가 이루어질 수도 있다는 희망만을 가지고 서서히 마음속에서 지워지고 있었다.


때마침 어머니 또래의 지인이 산티아고 순례길을 다녀왔다. 그녀는 아름다웠던 그곳에 대해 쉼 없이 이야기하며 사진을 보여주었다. 그녀는 사진 속에서 비에 홀딱 젖은 채로 환하게 웃고 있었다. 그녀의 미소는 걸으면서 겪는 고초보다 더 큰 무언가가 그곳에 있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녀는 산티아고를 다녀온 흥분과 즐거움에 대해서 말한 후 덧붙였다.

“절대 어머니를 혼자 가시게 하지 말아라. 끝없이 펼쳐진 길을 한 발자국씩 내딛을 때마다 혼자임을 더 실감하시게 될 거야. 도시에서 벗어난 시골길은 굉장히 고요하단다. 들리는 건 새소리뿐이 없지. 더욱더 깊은 생각에 잠기실 것 같구나. 어머니는 지속적으로 아버지의 부재를 되새기시고 그리워하시며 그 긴 길을 걸으시게 될 거야.”
이미 회사에는 2주의 휴가를 요청한 상태였다. 하지만 장장 800km가 넘는 길을 가면서 중간에 만나 10일을 함께 걷기에는 어머니께서 홀로 보내실 시간과 거리가 너무 길었다. '같이 웃고 같이 울자. 지금도 떨어져 살고 있는데 어머니와 오랫동안 함께 지낼 수 있는 기회가 자주 오진 않을 거야.'


어머니와 함께 보냈던 두 달. 이제와서 생각하니 그 시간이 오히려 꿈이었던 같다.


중요한 것은 무수히도 많다. 그리고 그 안에서도 우선순위에 따라 다시 나누어진다. 나의 일 순위는 어머니께서 건강한 모습으로 버킷리스트에 줄을 한 줄 더 긋는 것.

나는 회사에 사표를 내고 파리로 가는 비행기표를 샀다. 나는 캐나다 밴쿠버에서, 그리고 어머니는 한국에서 파리로 오는 비행기를 타고 우리는 파리에서 만나기로 약속했다.


* 어머니와 산티아고를 걸은 해는 2018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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