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문화회관, 호안 미로 특별展
이산가족은 서울역에서 상봉했다. 당직 마친 아내는 울산역에서, 나와 아이는 오송역에서 출발했더랬다. 모녀는 부둥켜안고, 재회의 기쁨을 나눈다. 모처럼 삼합 완전체. 택시를 잡아 타고 곧장 세종문화회관으로 내달린다.
아침부터 서둔 이유는 오직 하나. <꿈을 그린 화가, 호안 미로 특별展>때문이다. 이를 위해 주민등록등본도 뗐다. 7월 10일까지만 허락된, 동반 어린이 무료 입장 혜택을 누리고자. 7월 한 달간 매주 수요일엔 특별 할인요금으로 관람이 가능하다. '가족사랑의 날' 이벤트라나. 캬, 타이밍 절묘하다. 사랑합니다. 가족님.
피카소, 달리와 더불어 스페인에서 가장 존경받는 초현실주의 화가, 호안 미로(JOAN MIRÓ). 조안이랑 이름 스펠링이 같다. 작품들 훑어보니 눈높이도 똑같다. 동심이 잔뜩 묻어난다. 대교약졸大巧若拙. 불현듯 노자 도덕경이 떠오른다. 탁월한 기교는 도리어 졸렬한 듯하다더니, 과연!
대부분 무제無題다. 그래서 미로迷路다. 그야말로 노답. 난해하고 난감하다. 노자가 또 소환된다. 무명천지지시無名天地之始, 유명만물지모有名萬物之母. 이름조차 없음은 하늘과 땅의 시작이요, 이름 있음은 만물의 어머니라. 천지가 열리던 카오스 상태에 이름이 있을 리 만무하다.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다만 하나의 몸짓이렷다. 에스파냐의 원시동굴화 같은 작품들 사이를 발랄한 몸짓으로 누비는 아해에게 묻는다. "이건 뭐 같아?" "음~ 뱀." "저건?" "장수풍뎅이!" 떠오르는 대로 지껄인다. 답이 없으니 뭐든 답이다.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꽃이 된다지. 문명의 작위를 거세한 호안의 카오스에 코스모스를 부여하는 조안. 잠시나마 만물의 어머니가 된다. 무한한 상상을 허하는 캔버스. 다양한 기법, 새로운 방식으로 허를 찌른다. 절제된 리듬에 숨을 고른다.
호안 옹은 시심詩心 충만한 명상가, 아니 몽상가다. 기호와 문자를 탐닉하고, 묵향墨香으로 환희롭다. 그가 즐겨 그리는 시어는 새. 자유를 지향한다. 가장 두드러진 테마는 여성. 그에게 여자는 온 우주의 기원이자 인생의 집합소다.
내 우주의 기원인 여인과 우리 인생의 교집합인 소녀. 두 여성과의 나들이는 기대 이상이었다. 호안의 작품들이 상상 이상이었듯. 작품들 이상으로 끌렸던 것은 그의 작업실이 있는 스페인 마요르카. 기존 체제와 규칙을 깨는 창의創意혁명의 성지를 어찌 밟지 않을 수 있으랴. 버킷 리스트에 재깍 담는다.
마요르카에서 매일 그림만 그리는 걸 의아하게 여긴 손자에게 호안 할아버지가 그랬다지. "복서가 매일 연습하듯 나는 매일 그림을 그려야 해. 내 안의 에너지를 방출하고 내 손을 자유롭게 하기 위해 그림을 그리고 있는 거란다."
얼마 전, 새 보금자리를 계약했다. 그간의 줄기찬 탐색이 무색하지 않을 울산의 명당이다. 충청도 촌년이었던 조안은 이제 경상도 가시나가 된다. 조안의 울산이 호안의 마요르카이길. 자유분방한 에너지 마음껏 방출하며, 창의적 인재로 무럭무럭 자라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