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사람 사이에서 단련되는 마음 - 말에 휘둘리는 사람

마음의 힘, 관계의 흐름

by 류겸

5장. 사람 사이에서 단련되는 마음


5-1. 말에 휘둘리는 사람들


사람과의 관계에서 가장 흔한 문제는 ‘말’에서 비롯됩니다. 누군가의 칭찬은 쉽게 기쁨이 되고, 누군가의 비난은 곧장 화가 됩니다. 말 한마디에 하루의 기분이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은 결국 내 마음의 주관이 약하다는 증거입니다.


말은 바람처럼 오고 갑니다. 그 바람을 전부 따라가다 보면, 내 삶은 늘 요동칠 수밖에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말의 방향이 아니라, 그 바람을 받아들이는 내 마음의 자세입니다.


말에 반응하기 전에 잠시 멈추어, 그 말을 내 마음의 중심에 비추어 보는 일 ― “이 말이 내 삶에 도움이 되는가? 아니면 그냥 흘려보내야 할 소리인가?” 그 짧은 판단의 순간이 바로 마음의 수련입니다.


말은 칼보다 깊은 상처를 남기기도 하고, 때로는 한 사람의 삶을 살려내기도 합니다. 역사상 수많은 전쟁과 화해, 사랑과 이별이 모두 말 한마디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중국 전국시대의 재상 상앙(商鞅)은 법으로 나라를 다스린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백성에게 약속을 지키는 모범을 보이기 위해 ‘기둥 옮기기’라는 실험을 했습니다.


“누가 이 기둥을 성문 밖으로 옮기면 은(銀) 열 근을 주겠다.”


긴가민가 하면서 아무도 믿지 않았지만, 한 사람이 기둥을 옮기자 그는 약속대로 상을 내렸습니다. 이 사건으로 법에 대한 신뢰가 생기고 진나라는 강대해졌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그가 만든 법이 그 자신을 옭아매게 됩니다. 정적의 모함으로 체포된 그는 법을 어겼다는 죄목으로 처형당합니다. 그때 그가 남긴 말이 전해집니다.


“내가 세운 법의 칼날이 결국 나를 베는구나.”


법이든 말이든, 한 번 내뱉은 것은 반드시 돌아옵니다. 그는 말의 무게를 알았지만, 그 무게에 눌려 쓰러졌습니다.


반면, 공자(孔子) 는 말을 도구로 삼아 인간과 세상을 연결했습니다. 『논어』 「위령공」 편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말로써 사람을 잃지 말고, 말로써 도를 잃지 말라.”


공자는 말이 사람을 해칠 수도, 세울 수도 있다고 보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제자들에게 늘 당부했습니다.


“말은 반드시 마음에서 나온 것이어야 하며, 그 마음이 바르지 않다면 침묵이 낫다.”


말이 많아서 문제가 아니라, 마음이 준비되지 않은 말이 문제입니다. 그 마음이 흔들릴수록 말은 날카로워지고, 결국 자신을 다치게 합니다.


소크라테스의 ‘세 가지 거름망’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날 제자가 흥분한 얼굴로 소크라테스를 찾아왔습니다.

“선생님, 어떤 사람이 당신에 대해 나쁜 말을 했습니다!”


소크라테스는 미소를 지으며 물었습니다.

“그대여, 그것이 진실인가?”

“확실하지 않습니다.”

“그럼 그것이 선한 말인가?”

“그렇지도 않습니다.”

“그럼 그것이 나에게 꼭 필요한 말인가?”

“글쎄요, 그렇지도 않습니다.”


소크라테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그 말은 들을 이유가 없네.”


그의 ‘세 가지 거름망(Three Filters Test)’ ― 진실, 선함, 필요성 ― 은 오늘날까지 인간관계의 기본 원칙으로 남아 있습니다. 우리는 이 세 가지 거름망 없이 말의 바람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 결과 감정의 소용돌이에 빠지곤 합니다.


7세기 당나라의 고승 현장(玄奘)과 8세기 통일신라의 승려 혜초(慧超)는 각기 다른 시대에 실크로드를 넘어 인도까지 순례의 길을 걸었습니다. 그들은 수많은 이방인의 말과 소문을 들었지만, 그 말들에 휘둘리지 않았습니다.


현장(玄奘) 은 수천 리를 걸어 인도로 향했습니다. 그는 『대당서역기(大唐西域記)』에서 이렇게 썼습니다. “귀는 세상을 향해 열려 있으되, 마음은 법(法)에 머물러야 한다.”


순례길에서 그는 무수한 말과 소문을 들었습니다.

“그 길은 죽음이다.”

“사막을 건너면 돌아오지 못한다.”


그러나 그는 들은 모든 소리 중 단 한 가지, ‘진리를 향해 나아가라’는 내면의 음성만을 마음에 품었습니다. 그 귀와 마음 사이의 거리가 곧 수행의 길이었던 것입니다.


혜초(慧超) 역시 인도를 향한 순례길을 떠났습니다. 그는 『왕오천축국전(往五天竺國傳)』에 다음과 같이 기록했습니다.


“길에서 만난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신을 말했지만, 나는 그들의 믿음 속에서 부처의 그림자를 보았다.”


그는 다름의 말에 흔들리지 않았고, 그 차이 속에서 오히려 하나의 진실을 찾았습니다. 혜초는 말을 버리지 않고, 말에 휘둘리지 않은 수행자였습니다.


미국의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Abraham Lincoln)은 비판과 조롱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았던 대표적인 인물입니다. 그는 부당한 비난을 받았을 때마다 항상 ‘편지를 썼지만, 보내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는 마음속의 분노를 종이에 적으며 정리한 뒤, 그 편지를 서랍 속에 넣어 두었습니다. 그리고 며칠 후 다시 읽어보며 말했다고 합니다. “이제는 이 말을 할 필요가 없구나.”


이것이야말로 ‘반응하지 않는 지혜’입니다. 말에 즉시 대응하지 않고, 내면의 시간 속에서 감정을 걸러내는 법. 그 짧은 멈춤이 바로 마음의 품격을 결정합니다.


현대 심리학에서는 이런 태도를 ‘감정적 반응 지연(emotional delay)’이라 부릅니다. 심리학자 다니엘 카너먼(Daniel Kahneman) 은 『생각에 관한 생각(Thinking, Fast and Slow)』에서 “빠른 생각은 본능이고, 느린 생각은 지혜다”라고 말했습니다.


누군가의 말에 즉시 반응하는 것은 본능입니다. 그러나 잠시 멈추어 그 말을 해석하고, 필요한 말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것이 지혜입니다.


하버드대의 연구에 따르면, 감정적으로 즉시 반응하는 사람보다 ‘한 박자 늦게 반응하는 사람’이 대인관계 만족도와 삶의 안정감이 훨씬 높다고 합니다. 이 차이는 타고난 기질이 아니라, 매일의 연습 ― 즉, ‘관계 속 수양’ ― 에서 비롯됩니다.


『중용(中庸)』에는 이런 말이 있습니다.

“말은 마음의 소리요, 마음은 하늘의 문이다.”(言者, 心之聲也. 心者, 天之門也.)


말은 마음의 문을 통과해 세상으로 나가는 것이므로, 마음이 흐트러지면 말은 독이 되고, 마음이 맑으면 말은 향기가 됩니다.


조선의 학자 퇴계 이황은 제자들에게 이렇게 당부했습니다.

“말이 많을수록 허물이 많다. 그러나 침묵만이 능사는 아니니, 마음이 고요할 때 비로소 말하라.”


그는 ‘고요한 마음’이야말로 모든 말의 출발점이자, 말의 거름망이라 여겼습니다.

세상은 늘 말을 던집니다. 그 말들은 바람처럼 불어오고, 우리의 귀는 언제나 열려 있습니다. 그러나 마음의 문까지 열어두면 그 말들이 안으로 들어와 내 평온을 흔듭니다.


말에 휘둘리지 않는다는 것은 귀를 닫는다는 뜻이 아닙니다. 모든 말을 다 듣되, 그중 무엇을 내 안에 머물게 할지를 스스로 선택한다는 뜻입니다.


칭찬은 겸손으로, 비난은 성찰로 바꾸고, 나머지는 흘려보내면 됩니다. 그럴 때 비로소 관계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자기 마음의 중심을 지킬 수 있습니다.


♣ 마음 연습

오늘 하루, 이런 연습을 해보세요.

누군가의 말이 불편하게 들릴 때, 바로 반응하지 말고 ‘숨 한 번 고르기’

칭찬이 들릴 때는 “감사합니다”로만 답하고, 그 이상 해석하지 않기

비난이 들릴 때는 “그럴 수도 있겠네”라고 가볍게 넘기기

말은 바람이지만, 그 바람에 흔들리지 않는 나무가 되려면 마음의 뿌리가 깊어야 합니다.

그 뿌리는 바로, 관계 속에서 단련된 나의 중심입니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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