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왜 다시 공연장을 찾게 되는가

왕초보 클래식 공연장에 가다

by 류겸

2-6. 왜 다시 공연장을 찾게 되는가


첫 공연 감상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던 길, 나는 스스로도 설명하기 어려운 이상한 감정을 느꼈습니다. 공연장에서 무언가 거대한 깨달음을 얻은 것도 아니었고, 작곡가의 의도를 정확히 이해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런데도 마음 어딘가가 따뜻하게 채워진 것 같았습니다.


조금 뻐근하면서도 묘하게 편안한 그 감정이 그날 밤 내내 잦아들지 않았습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아도, 누구와도 나누지 않아도 스스로에게 “지금의 나는 괜찮다”라고 말해 주는 듯한 충만함이 가슴안에 은은하게 남아 있었습니다. 그 감정은 오디오 감상에서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종류였습니다.


아무리 훌륭한 스피커로 음악을 들어도 결코 닿을 수 없던 깊은 울림. 공간 전체가 함께 호흡하는 순간에만 생겨나는—공연장 고유의 에너지였습니다. 공연장에서만 느낄 수 있는 감정적 충만함이었던 것입니다.


공연장에서는 음악을 듣는 것이 아니라 음악과 ‘함께 존재’하게 됩니다. 피아노 건반을 누르는 순간의 미세한 떨림, 현악기가 활을 긋는 숨결, 금관이 공기의 벽을 갈라내듯 울리는 소리, 지휘자의 손끝에서 만들어지는 호흡의 흐름이 모두 지금 이 시간, 이 공간, 이 감정을 공유하게 만듭니다.


그 공간에 앉아 있으면 설명할 수 없는 만족감이 몸을 먼저 반응하게 합니다. 머리는 말이 없는데, 가슴은 잔잔하게 흔들립니다. 나는 그때 처음 알았습니다. 음악은 이해해서 듣는 것이 아니라 느낌이 먼저 길을 열어주는 예술이라는 사실을.


〈객석,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1층〉
객석에 앉아 있는 그 자체가 음악감상의 한 요소이다. 무대라는 공간, 연주자들, 객석, 관객들, 이 모두가 어우러져 공연 감상이 이루어진다.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나 지하철에서 이상하게도 세상이 조금 달라 보였습니다. 가로등 불빛은 더 선명했고, 도시의 소음조차 약간 멀리서 들리는 배경음처럼 느껴졌습니다. 마치 공연장에서 받은 감정을 품은 채 현실 세계로 다시 돌아온 듯한 기분이었습니다. 그 감정은 단순한 기쁨도, 감동도 아니었습니다. ‘내가 살아 있다’는 감각이 아주 조용하게 깨어나는 느낌. 몸이 먼저 알아차리고, 마음이 그 뒤를 따라가는 이상한 생리적 반응과도 비슷했습니다.


공연장은 그런 공간입니다. 음악을 듣는 장소이면서, 동시에 삶의 감각을 다시 깨워주는 장소. 이 감정 때문에 사람들은 공연장을 떠나지 못합니다. 나도 그랬습니다. 그래서 나는 공연장을 또 찾았습니다. 그리고 또 찾았습니다.


다음 공연을 예매할 때 망설임은 점점 줄어들었습니다. 좌석을 고르는 일도, 공연 제목을 고르는 일도 더 이상 두렵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이 공간에서의 경험이 매번 조금씩 내 삶의 결을 바꾸어 놓고 있다는 것을 어느 순간 분명하게 느꼈기 때문입니다.

음악을 많이 아는 사람만이 깊게 듣는 것이 아니라, 느끼는 만큼 깊어지는 세계가 공연장에는 존재했습니다. 그 사실을 알게 된 순간 공연장은 더 이상 특별한 장소가 아니라 내 삶을 다시 바라보게 해주는 하나의 쉼터가 되었습니다.


그렇게 찾아간 공연이 어느새 10회, 20회를 넘어 100회의 기억으로 쌓였을 때, 나는 알 수 있었습니다. 공연장을 찾는다는 것은 음악을 만나러 가는 일이면서, 동시에 내 삶을 다시 세우러 가는 일이라는 것을. 공연장의 경험은 삶의 감각을 깨워줍니다.


공연이 쌓이면, 내 삶의 방향도 천천히 바뀝니다. 공연장에서 들은 수백 개의 첫 음, 그 작은 울림들이 모여 나의 마음을 천천히 다른 방향으로 이끌었습니다. 어쩌면 음악은 내 인생에 큰 소리를 내며 들어온 것이 아니라 매번 공연이 끝날 때마다 한 방울씩 마음의 그릇을 채워간 것인지도 모릅니다.


처음에는 단순한 취미였습니다. 하지만 여러 해가 지나자 클래식 음악과 공연장은 저의 삶을 정돈하고, 생각을 가라앉히고, 마음을 다시 세우는 하나의 기둥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공연장을 다시 찾았습니다. 그리고 또 찾았습니다. 그 반복 속에서 저는 조금씩 다른 사람이 되어갔습니다.


공연장을 다시 찾는 마음은 어느 순간부터 이유가 필요 없게 되었습니다. 한 번의 감상이 또 다른 감상을 부르고, 그 감상이 다시 새로운 궁금증을 만들어냈습니다. 처음에는 단순히 음악을 들으러 간 것이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저는 공연장에서 마주하는 매 순간이 내 일상의 결을 조금씩 바꾼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느꼈던 그 묘한 충만함은 다음 공연을 향한 작은 등불처럼 마음 한쪽을 계속 밝히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공연장과의 거리가 조금씩 가까워지자 음악을 듣는 방식도, 무대를 바라보는 시선도 서서히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단지 “좋다” 혹은 “멋지다”로 반응하던 감상에서 악기의 움직임이 읽히고, 연주자들의 호흡이 느껴지고, 곡 전체의 흐름이 잡히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때부터 저는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음악감상은 ‘한 번의 감동’이 아니라 천천히 깊어지는 여정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 여정은 공연장을 찾을수록 더 넓고 더 깊은 세계로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20180731_133810.jpg 〈예술의 전당 음악당 밖의 가로등〉
공연이 끝나 밖으로 나오면, 어느새 밤 10시를 넘긴 시간. 공기에는 밤의 기운이 가득하고, 평소에는 무심히 지나치던 가로등 불빛이 유난히 밝고 따뜻하게 다가온다. 음악의 여운이 시야를 조금 더 섬세하게 열어주는 순간이다. 이런 감정이 쌓이면서 공연 감상은 점점 깊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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