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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그다드Cafe Oct 31. 2024

직장인의 시선, yama ari tani ari

우리는 답을 찾을 것이다 늘 그랬듯이

며칠 전, 회사일로 일본에서 온 손님일행과 저녁을 먹었다. 우리들의 회사가 속한 산업이 2차 전지 분야이다 보니 긍정적인 대화보다는 서로의 어려움을 토로하는 대화가 이어졌다.


그럼에도 우리는 희망을 찾아야 하는 법.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어떤 일본어 속담에 가닿았다.  


"山あり谷あり" (やまありたにあり, yama ari tani ari)


직역하면 "산도 있고 계곡도 있다"는 뜻으로, 인생에 오르막과 내리막이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일본어 표현이다. 우리나라에서 사용되는 비슷한 뜻으로는 '새옹지마塞翁之馬'와 '고진감래苦盡甘來'가 있다.


참고로 영어로는 "Blessing in disguise"로 표현한다고 한다. 예를 들어, 실직을 했을 때는 힘들었지만, 그 계기로 더 좋은 직장을 찾게 되었다면, "It was a blessing in disguise"라고 표현할 수 있다.


일본어가 되었든 영어가 되었든 본뜻은 인생의 기복, 즉 좋은 일과 나쁜 일이 교차하며 순탄하지만은 않다는 점을 비유적으로 나타낸다. 조금 놀라운 점은 전 세계 대부분 사람들이 표현은 다르지만 비슷한 개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어떤 현상이나 존재에 대해 언어로 표현할 수 없으면 존재할 수 없다. 이러한 점에서 다른 나라와 사람들도 인생의 힘든 시간을 견디어 내는 지혜가 있고, 보편적인 희망을 품고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하지만 모든 개념이 서로의 언어로 완벽히 옮겨지지 않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한국의 '재벌'이라는 개념은 단순히 대기업을 의미하지 않고, 대규모 가족 소유 대기업으로서 세습 경영과 가족 중심의 지배 구조를 특징으로 하는 특수한 경제 구조를 포함한다. 영어에는 이에 상응하는 단어가 없어, 'chaebol'이라는 한국어 음차로 표현한다. 이러한 사례는 특정 문화에서 탄생한 고유한 개념이나 가치관이 다른 문화권에서 직접적으로 이해되지 않을 수 있음을 보여준다. 즉, 언어가 전하지 못하는 문화적 차이가 있는가 하면, 반대로 언어가 존재하기에 문화적으로 공유되는 가치가 전 세계적으로 통용될 수도 있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이처럼 언어를 통해 우리는 서로 다른 세계를 간접적으로 경험하고, 공통적인 가치를 발견하며, 때로는 각 문화의 고유성을 깊이 이해할 수 있다. 일본어 속담, 한국어 사자성어, 영어의 관용어가 전하는 메시지를 곱씹어보면, 결국 인생의 희로애락喜怒哀樂은 언어를 초월해 사람들을 잇는 다리가 된다. 다양한 표현 방식 속에서도 사람들은 모두 삶의 길고 짧은 굴곡에서 용기를 얻고, 어려움을 넘어서기 위해 서로가 전해주는 지혜를 나누고 있는 것이다.


새옹지마와 같은 이러한 메타언어적 개념들은 다양한 문화 속 경험을 조합하여 만들어진 인류의 소중한 자산이다. 한국, 일본, 영어권에 걸쳐 표현된 이 속담과 관용어들은 서로 다른 환경과 삶을 살았던 사람들이 나름의 언어로 삶의 진리를 발견해 낸 결과이다. 세상 모든 일이 단순히 "좋다" 혹은 "나쁘다"로 나눠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이 지혜들은 우리의 사고방식을 유연하게 만들고, 변화를 받아들이는 힘을 길러준다.


메타언어란, 일상적 언어 표현이나 구체적 사건을 넘어, 상황과 사건에 대한 해석 방식, 즉 의미에 대한 고차원적 사고를 포함하는 언어적 틀을 말한다. 새옹지마가 메타적 언어로 작용하는 이유는, 그 표현을 통해 사람들은 당장의 사건을 절대적인 "좋은" 또는 "나쁜" 결과로 규정하지 않고, 오히려 변화와 역전의 가능성을 열어두게 된다. 이처럼 새옹지마는 단순한 일상의 언어를 넘어 인생에 대한 해석의 틀을 제공하는 일종의 메타언어로서 기능한다. 각기 다른 문화의 사람들이 비슷한 개념을 통해 인생의 진리를 공유하게 된다는 점에서 새옹지마는 단순히 한국 문화에 국한되지 않고, 인류의 보편적 경험을 반영하는 메타적 개념이자, 인류의 지혜라고 생각한다.


내가 인류의 지혜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어떤 숨겨진 개념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나쁜 일이 있을 수 있지만 결국 좋아질 것이라는 믿음'이 바로 숨겨진 개념이라고 생각한다. 


구글 북스 엔그램 뷰어

어떤 꽂히는 개념이 있으면 언제부터 이 개념이 사용되었는지 찾아보는 습관이 생겼다. 바로 훌륭한 Tool(구글 북스 엔그램 뷰어) 덕분이다.


'Blessing in disguise'라는 개념이 19세기 후반부터 인류가 익숙하게 사용하기 시작했는데, 내 맘대로 해석을 덧붙이자면 이때부터 인류의 폭발적인 발전과 궤를 같이 한다고 생각한다. 생각해 보시라, 1000년 전의 보편적인 고려사람 사는 모습과 300년 전의 조선사람 사는 모습이 큰 차이는 없고, 사상(혹은 관념)의 차이도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200년 전 19세기 후반, 산업혁명을 필두로 인류에 전에 없던 발전이 이어졌고, (물론 부작용도 있지만) 인류의 사상에도 발전적인 방향으로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Blessing in disguise라는 인류의 지혜도 그때 즈음 널리 퍼지지 않았나 싶다.  


p.s 2020년을 전후하여 다시 폭발적으로 개념의 사용 증가가 있는데, 인류가 발전하고 있다는 증거라고 나는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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