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istopher Street Day

나는 그 사람을 남성으로 인식하고 있었던 거다.

by 헌낫현
인간이 하이브리드가 되는 시점에는 성 정체성에 관한 논의가 필요 없을까.


“그 남자 정말 멋졌어(he was amazing).” 드래그 퀸(Drag Queen) 공연을 보고 내가 했던 말이었다. 난생처음 가본 크리스토퍼 스트릿 데이(Christopher Street Day)에서 느낀 것이 많았다. 소수자 이슈에 관한 생각을 깊이 해보지 않았다는 것. 나는 추상적인 개념으로만 이해했지, 어떻게 실천해야 하는지는 생각해보지 않았다.


사회적인 메시지를 담고있지만, 이곳은 축제 분위기와 같았다.

나는 그 사람을 남성으로 인식하고 있었던 거다. 여성처럼 분장했지만, 여전히 남자인 사람.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여성성과 남성성에 대한 고정관념이 나에게 남아있다는 것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성 정체성을 스스로가 규정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해보지 않은 것이다. 평소에 성 역할과 그것이 갖는 부작용을 비판적으로 생각했지만, 고정관념은 여전히 나에게 남아있었다.


성 정체성은 어디에서 오는가? 만약 성 정체성이 우리 신체의 물리적인 특징으로부터 오는 것이라면, 인간이 하이브리드가 되는 시점에는 성 정체성에 관한 논의가 필요 없을까. 먼 미래, 기술은 눈부시게 발전한다. 이제 성관계 없는 출산은 보편화했다. 더 긴 시간이 흘러 남성과 여성의 신체가 동일하게 진화한다면, 성 정체성에 관한 논의는 의미가 없어지는 것일까.


성(性)은 절대적인 것으로 여겨졌다. 인류는 성역할을 규정했다. 구성원을 분류하고, 그에 따라 사회를 구성했다. 태초 원시 환경에서 인간이 살아남기 위해 그 규정이 필요했겠지만, 그 이유가 사라진 지금, 우리는 어떤 생각을 해야 할까. 다양성은 보다 폭넓게 인정되어야 한다. 개개인에 맞춘 섬세한 정체성이 필요하다. 성역할 구분에서 우리가 얻는 이익은 없다.


참가자 중 한 명이 'Viel sehr bunt(매우 매우 다양하다)'라는 의미의 팻말을 들고 있다.

이 주제에 관해 토론할 때면 아직 우리는 정답을 갖고 있지 않다는 느낌이 든다. 이 논의는 지속해서 진행되어야 한다. 현 사회가 배우고 있는 새로운 개념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이 변화하면서, 사회는 환경보호, 성소수자, 이민자 등 수많은 새로운 개념들을 학습해야 할 것이다. 그 개념들은 다양성에 기반한 공존이라는 방향성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정답을 찾았다는 생각이 위험할지도 모르겠다. 세상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새로운 상황들을 맞이하고 있다. 그런데 하나의 관점이 옳다고 생각하면 우리는 사각지대를 피할 수 없게 된다. 그리고 그 생각은 필연적으로 소수자를 억압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 개인의 삶에서도 그렇다. 끊임없이 논쟁하고, 치열하게 고민해야겠다. 편견을 갖지 않도록 노력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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