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협녀, 칼의 기억>
(글 내용에 영화의 결말을 이야기하는 스포일러가 있으니 관람을 안 하신 분이라면 읽으면 아니 되오)
요즘 들어 새로 생긴 버릇이 있다면 영화의 내용을 알아보지도 않고 영화를 보는 것이다. 미리 내용을 알게 되면 혼자서 이런저런 구상을 해보다 영화의 본질적인 재미를 놓치는 것 같아서 이야기의 발단 정도만 인지하고 영화를 본다. 내가 인지했던 <협녀>의 내용은 '전도연의 제자 김고은이 이병헌을 죽이러 가는' 이야기였다. 영화를 열어보니 틀린 이야기는 아니었다. 그러나 저 문장이 메인 이야기는 아니었다. 사실 예고편은 무협 영화인 듯 보였고 내용은 복수극으로 보였다. 그러나 막상 영화는 무협 액션 복수극이라기보다는 멜로 무협 복수극이었다. 그것도 무협 멜로가 아니라 '멜로 무협'. 멜로가 메인이 되다 보니 전도연과 이병헌에 얽힌 과거의 이야기들을 설명하는데 영화는 많은 시간을 투자한다. 조금 과하다 싶을 정도로 플래시 백으로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데 문제는 이병헌과 전도연의 러브 라인에 전혀 몰입이 안 되는 것이다. 상황이 이러하다 보니 구구절절한 과거와 플래시 백들은 영화의 몰입과 흐름을 방해하는 '것'으로 인식될 수밖에...
이 쯤에서 또 서서히 드러나는 문제점은 바로 3명의 배우들이 펼치는 연기의 앙상블. 이병헌, 전도연, 김고은 이 세명의 배우들이 펼치는 연기가 각각의 투샷에서 전혀 조화롭지 못한 것. (마지막 눈 오는 밤 결투 장면은 제외)_ 같이 보러 간 저의 친구도 이렇게 느꼈던데... _ 사실 개인적으로 전도연씨의 연기가 아쉬움이 많이 남았다. 김고은과 이병헌의 사이에서 중요한 역할이라 생각하는데 처음부터 끝까지 컨셉을 잘못 잡은 느낌이었다. 특히 맹인 검객으로 나온다 하여 기대를 했지만 (역시 기대한게 문제이군) ... 아쉬움만 한가득 남게 되었다.
영화 속 비극은 '사사로움' 때문에 시작됐다.
영화의 결과도 '사사로움' 때문에 발목이 잡혔다.
영화가 끝나면 이 영화는 오로지 마지막 장면의 '비장함'을 위해 모든 것이 장치이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야기를 너무 꼬았고, 별로 놀랍지도 않은 반전에 매우 느릿한 전개 과정. 오직 마지막 장면을 위한 사전 설명에 불과한 느낌이다. '비장함'을 위해 영화 전체의 그림을 보지 못한 게 아쉬울 뿐이다. 과거에 개봉했던 중국 무협영화를 기대한 건 아니다. 단지 얼마나 멋진 무협 액션을 보여줄 것인가를 기대했지만, 영화는 '멜로 무협'의 길을 걷기 때문에 그 기대 또한 사치일 수 있다. 차라리 복수극과 무협 액션을 합쳤더라면 더욱더 스타일리시 한 영화가 됐을 것 같은 아쉬움이 남는다. <암살>과 <베테랑>을 본 관객이 <협녀>를 찾는다면 분명 한번쯤은 졸게 되지 않을까?
_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