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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읽는여행자 Feb 01. 2017

교양하는 욕망

남자는 욕망하는 순간에 가장 인문적 인간이 된다

사랑해본 자, 모두가 '시인' 이었다


사랑에 빠져본 사람은 누구나 경험해봤을 거다. 밤새 쓰고 또 고쳐 쓴 연애편지가 얼마나 부끄러웠는지를. 그러나 이 사실은 몰랐을 거다. 아침에 일어나 찢어발겨 버리고 싶을 정도로 스스로를 부끄럽게 한 그 단어들의 조합들이, 사실은 그것이 위대한 한 편의 시였음을.  


어느 초딩의 격한 연애편지


이것이 시의 본질이다. 전하고 싶은 이야기를 아름다운 운율과 미사여구 속에 잘 포장해서 듣는 타자로 하여금 극적인 감정을 불러일으키게 하는 것. 물론 이는 문학 이론이라고는 고등학교 지식수준에도 못 미치는 자의 얕은 정의에 불과하니 참고만 하시라.


모든 '사랑'을 폄훼하고 싶지 않지만, 혈기 왕성한 청춘의 뜨거운 열병이 만들어 낸 그 '사랑'은 섹스하고 싶은 충동의 서정적 표현일 뿐이다. 가장 본능적이고 야생적인 욕망이 모든 수컷들에게 아름다운 미사여구를 만들어 내는 힘을 준다. 혹시, 나만은 그럴 일이 없다고 부인할 것인가. 나는 진정 사랑했노라. 나만은 진정 영혼의 사랑을 아노라 할 것인가. 


시 쓰고 앉아 있네!




수컷이 글을 쓰는 이유


어느 글쓰기 강연회에서의 일화다. 시종일관 다리를 꼬고 허리를 구부정하게 앉아 강의를 듣는 둥 마는 둥 하는 한 청년이 눈에 띄었다. 강의에서 들을 게 없다는 표정으로 앉아 있길래 사회자였던 나는 장난기를 반 품고 그를 향해 물었다. "당신은 왜 글을 써요?"

멋있잖아요. 여자한테 잘 보이려고요.

그는 '글 쓰는 작업'이 여자들에게 인정받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솔직하게 내뱉는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답은 반대편 좌석에 앉아있던 작가를 지망한다는 어떤 여성의 입에서 튀어나왔다. 


맞는데요. 그게 본질인데요..


여성분의 말이니 이제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것도 글을 쓰는 여성분의 말이니 글 쓰는 수컷의 저열한 의도를 잘 간파했으리라. 허무맹랑해 보였던 그의 답은 평소에 갖고 있던 '인간 예술 행위'에 대한 내 지론과 잘 연결되었다.


공유는 원래 멋있다. 그런데 책을 읽고 있으면 더 멋있다 ㅅㅂ 



하고 싶은 남자, 뭐라도 한다.


잠시도 마음의 빈틈을 허락하지 않고 자신의 분위기에 취하게 할 만큼 달변이라거나, 초점 없는 눈동자에 고독을 씹으며 온갖 똥폼은 다 잡아도 남다른 외모로 충분히 어필할 수 있거나, 노래나 춤, 미술, 운동 뭐든 이성의 이목을 사로잡을 장기 하나쯤은 가지고 있거나. 뭐라도 돼야 한다. 하고 싶다면 말이다.


위에서 언급했던 '사랑'에 대한 정의, 즉, 욕망을 잘 포장한 한 편의 시라는 의미에서 유추할 수 있는 것은 그것이 바로 '인문적인 시간'과 긴밀하게 연결된다는 것이다. '사랑'은 평생 잘 생긴 얼굴이나 몸댕이를 파먹으며 하는 게 아니다. 우리가 흔히 아름답게 부르짖는 뜨거운 사랑은 누구나 알다시피 한철이다. 따라서 관계에 있어 좀 더 인간적(?)이고 안정적인 단계로 돌입하기 위해서 '사랑할 때 이야기하기 좋은 것들'을 알아야 한다. 


그것들은 주로 우리가 인문, 예술이라 부르는 '교양'에 근접해 있다. 함께 미술관에 가서 서로 좋은 느낌을 주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 서로 좋아하는 음악을 들려주며 공감대를 나누는 것, 세상을 보는 눈과 현상을 해석하는 관점에 대해 옥신각신 다투듯 생각을 나누는 것. 사랑할 때 이야기하기 참 좋은 것들이다. 


교양의 기원은 사실 좀 더 세련되고 멋있는 수컷이 되기 위한 공작새의 날갯짓일지도 모른다. 




사랑할 때 이야기하기 좋은 것들, 커피, 음악, 예술..


최근에 도발적인 제목의 책 한 권을 발견했다. '연애 고자'들을 위한 교본 <작업 인문학>, 뭔가 한때 유행했던 '픽업 아티스트(이성을 유혹하는 스킬을 전문적으로 훈련시키는 어이없는 직업군이 한때 회자되었다)' 교본이 조금 고급진 버전으로 탈바꿈해서 다시 나온 게 아닌가 의심했다. 


카피에서 잡아 끄는 메시지가 그러했다. '연애 고자'들을 위한 교본이라니. (나는 물론 '연애 고자'가 절대 아니라서!) 순수한 지적 호기심에 의해, 그리고 만에 하나 나에게 상담을 요청할 가련한 연애 고자들을 위해 좀 알아 두자는 심정으로 책을 펼쳐 들었다.


역시 김갑수 옹 이시다. 책을 읽어 내려가며 '이 사람, 참 멋있는 사람이야!' 하게 된다. 중장년의 수컷에게 일시적으로 묘한 '연애 감정'이 피어오름을 느꼈다. 책이라는 물성의 개체를 통해 결코 불가능했던 일이 이루어졌던 거다. (물론 책을 덮고 깨끗하게 그 감정은 정리됐다!)  사실 남녀를 떠나 한 분야에 뜨거운 열정과 진지한 철학을 갖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한 사람을 무척 매력 있어 보이게 하는 힘이 있다. 

박학다식한 김갑수, <강적들> 중


사랑할 때 이야기하기 좋은 주제이면서 쉽게 시작할 수 있는 분야는 책, 음악, 미술과 같은 예술분야 그리고 와인과 커피 같은 기호 음식 분야이다. 저자인 김갑수 씨는 특히 음악과 커피에 대한 조예가 깊다. 소개팅 자리에서 정말 시시콜콜한 일 얘기, 재테크 얘기, 정치 얘기 따위나 늘어놓을 거라면 '음악'과 '커피'는 더없이 좋은 대안이다.




취향이 있는 사람이 아름답다


문동이나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을 갖는 게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낭만이다. 그걸 다 읽는다고 해서 갑자기 아름다운 사람이 된다거나 학벌이 좋아진다거나 여자 친구가 생기는 게 아니다. (안 생겨요) 그러나 한 가지 주제에 꽂혀 자신만의 진지를 구축하고 열심히 성을 쌓아가는 자의 모습은 남녀를 초월해 아름다워 보인다.


속이 꽉 찬 사람들, 소위 정신적 귀족들은 책이나 저널을 닥치는 대로 읽다가 분야를 정해 지식을 파고드는 사이, 격조가 높아지고 문화화 되어 이른바 ‘취향’이라는 것을 갖게 된다. 

<작업 인문학> 출판사 서평 중



남녀가 만나 서로 탐색을 시작할 때는 물론 외적인 부분에 시선을 고정한다. 서로 밀당을 주고받으며 차차 안정 궤도에 들어서면서 상대의 '안쪽'이 궁금해질 것이다. 이때 서로를 검증해 볼 수 있는 수단은 상대가 던지는 '이야깃거리'의 수준이다. 자기 만의 취향이 있는 사람들은 이야깃거리도 분명하고 어느 정도 '수준'이 있다. 



욕망에게 말했다. 교양 좀 챙기라고..


주위에 꼭 그런 친구들이 있다. 유난히 못나고 키도 작은데 주위에 여자들이 끊이지 않는 남자들. 이 경우 백이면 백 '저 자식은 분명 돈이 많을 거야'라는 말로 자기 위안을 해버린다. 사실은 이 남자들의 특징은 자기만의 이야깃거리가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들의 연애 성공률은 외모와 스펙을 뛰어넘는다. 


이제 나의 실체를 돌아보자. 어떤가. 이야깃거리는 없고 보잘것 없는 '욕망'만을 부둥켜 안고 있지 않은가. 그것이 연애 선수와 연애 고자의 차이다. 나의 이 순수한 열정은 알아주지 않는다고 세상을 비난할텐가. 열정만 가득한 당신은  '부담' 그 자체이다. 당신의 욕망을 잘 달래고 화장도 좀 시켜라. 그게 이야깃거리, 인간의 '교양'이다. 당신의 이야깃거리는 무엇인가. 


김갑수, <작업 인문학>



책읽는여행자 소속 직업C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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