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4월 22일 토요일
토요일이다. 이 날은 한국인 친구와 점심 약속이 있고, 오후에 프랑스어 언어교환을 위해 프랑스인을 처음 만나기로 한 날이었다. 별다른 할 일이 없었기에 약속 시간보다 조금 일찍 시내로 나갔다. 보통 토요일 오전에는 한글학교에서 일을 하기에 둘러볼 시간이 없는 편이다. 토요일 오전이라 장이 서 있었다. 시장을 둘러본다. 얼마 전 숲에서 땄던 명이나물을 팔고 있더라. 시장에서 파는 모습을 보니 돈을 벌었다는 기분이 들었다. 시장에서 꽃집도 있어서 고민을 하다가 꽃을 산다. 작약이다. 10유로에 노란색 작약들을 산다. 집에 사들고 가서 꽂아야 지란 생각에 기분이 좋았다. 꽃은 좋아한다.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꽃꽂이를 하셨던 어머니 덕에 어린 시절 집에는 항상 꽃이 있었다. 그렇게 꽃을 가까이하며 지내왔다. 누군가는 꽃 선물을 시들걸 왜 주냐며 돈 아깝다고 하는데, 나는 주고받는 그 순간을 위해 꽃 선물을 준비하는 편이다. 받는 순간 서로 좋은 기분을 나누는 것만으로 나는 꽃 선물이 가치 있다고 생각한다. 이 날은 날 위해 꽃을 선물한 거다.
약속 시간이 다 되어 식당 근처로 가서 친구를 만나 함께 들어갔다. 미리 예약해 뒀기에 자리는 문제없었다. 자리에 앉아 주문한다. 이 식당에 오면 나는 항상 비프 타르타르를 먹는다. 좋아하는 메뉴다. 음료로 알코올이 조금 들어간 Aperol spritz를 시킨다. 누군가는 너무 달다며 싫어하지만 난 가볍게 마시기 참 좋은 칵테일이라 생각한다. 그렇게 점심을 즐기고는 친구는 논문 작업을 위해 근처 스타벅스에 간다고 했다. 나도 약속 시간까지 시간이 남아 함께 스벅으로 향했다. 날씨가 좋아 테라스 석에 앉는다. 시원하게 쿨라임을 마셨다. 상쾌한 쿨라임과 따스로운 햇살과 평화로운 광장의 분위기가 좋았다. 이런 여유로운 모습이 이곳 생활의 장점이다. 너무 붐비지 않고, 너무 바쁘지 않고, 따뜻한 햇살을 느낄 수 있는 이런 일상들 말이다.
언어교환할 친구는 한국인 유학생 동생의 소개로 알게 되었다. 프랑스인이란 것 외에는 아는 정보가 하나도 없어서, 만나러 가는 길에 조금 긴장되었다. 그렇게 카페에 먼저 도착하여 기다렸다. 잠시 후, 붉은 곱슬머리의 외국인이 (나에겐 다 외국인이다…) 들어선다. 카페 안에는 동양인이 나뿐이었기에 나를 금방 알아본 것 같았다. 인사를 나눈다. 나에게 “안녕하세요”하는데 발음이 너무 정확해서 놀랐다. 언어교환을 위해 내가 직접 만들어 준비해 온 자료가 있었는데, 이 친구의 실력에 너무 쉬운 내용이었다. 그냥 서로 대화를 나누기로 한다. 첫날이니까- 얘기를 나눠보니, 한국어를 독학했다고 했다. 한국 드라마, 예능을 너무 좋아해서 많이 봤다고 했다. 나보다 더 많이 본 것 같았다. 그래서인지 듣기는 정말 잘 되는데, 한국인과 말할 기회가 없어서 회화는 아직 조금 부족하다고 했다. 혼자 공부했던 책을 보여주는데 깔끔하게 정리되어 수없이 붙어있는 포스트잇을 보면서 이 친구가 얼마나 열정을 가지고 열심히 했는지 보였다. 이 친구의 한국어 실력에 자극을 받았다. 나도 열심히 프랑스어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생각은 자주 들었지만, 꾸준한 동기부여가 안 됐다. 난 여전히 불어를 못한다.) 함께 한참 즐겁게 대화를 나눴다. 이 친구는 영어도 잘했다. 표현력도, 발음도 모두 좋았다. 아무래도 기본적으로 언어적 재능이 있는 사람이 아닌가 하는 혼자만의 생각을 했더랬다.
그렇게 집에 돌아와서는 많은 일을 한 하루는 아니 없지만, 그냥 마음이 풍족했던 하루란 기분이었다. 이제는 배를 풍족하게 채워줄 차례였다. 주말이니까- 치킨이다. 냉장고에 사다 뒀던 닭을 꺼내서 반죽을 입혀 튀겨낸다. 반은 후라이드로 남겨두고, 반은 간장마늘 소스를 만들어 버무린다. 치킨무는 없지만, 냉장고에 코울슬로가 있다. 곁들여 먹기 좋겠다. 맥주까지 시원하게 준비하여 치맥을 차린다. 다른 사람과 함께 하면 더 좋겠지만, 혼자라도 충분히 좋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예쁘고, 따스하고, 반갑고, 맛있고, 좋은 형용사로 가득했던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