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 같은 날들

15. 백운산(광양) - 남편이 오른 100대 산

by 황옹졸

밥당번이라 일찍 교회에 갔다. 더 일찍 온 분들이 시금치를 다듬고 있다. 얼른 목욕탕 의자와 작은 칼을 가져와 옆에 철퍼덕 끼어 앉았다. 편안한 목소리가 오간다. 거의 자녀 이야기다. 요양보호사로 일하는 권사님은 긴 병에 효자는 없는 게 현실이라며 부모 죽을 날만 기다리는 자식이 많다고 했다. 그렇구나. 그럴 수 있을 것 같다. 나도 장담 못한다. 딸이 결혼해 먼 타지로 간 집사님은 그렇게 긴밀하던 자식도 일 년에 몇 번 보지도 못하니 좀. '좀'에서 말을 더 잇지 않았다. 나는 궁금해서 좀 다음은 뭐냐고 다그쳐 물었다. 답이 왔다. "남 같아." 이어 나에게 질문 화살이 왔다. 군대 간 아들 잘 지내냐고. 입을 열 수 없다.


알지 못한다. 그가 어떻게 지내는지. 훈련소에 있을 때 한 번 전화가 왔는데 나나 그 녀석이나 '읍, 컹, 허, 응, 잉.' 이상한 소리로 울먹이기만 하고 대화를 하지 못했다. 온전한 말은 "괜찮아?" "네." 이 말뿐이었다. 보고 싶다. 육군훈련소 홈페이지를 뻔질나게 들락거렸다. 아들 사진이 언제 올라오나 궁금해서. 올라온 뒤에는 보고 또 보고 하느라. 29연대 1교육대 4중대 2소대 3분대. 아들은 저 숫자들 안에 있다. 그렇잖아도 마른 사람이 더 홀쭉해져 꼭 북한병사 같다.


남편은 곧잘 '시간 빠르다.'라는 말을 뱉으며 야단스러워한다. 무슨 별스러운 일도 없으면서 모든 것의 끝을 앞둔 사람처럼 말이다. 나는 듣기 싫어 미간을 찌푸린다. 하나 마나 한 당연한 소리. 노화로 기억의 밀도는 감소되고 뇌 기능은 떨어져 정보 처리 늦어진다. 자극에 대한 반응도 둔해 빨리 흐르는 것처럼 느끼는 것이다. 쏟아지는 시간을 누가 막노. 쇠하여 가는 걸 인정할 수밖에.


세월 앞에 당당해 보려 하는 나도 아들을 생각하면 조금 그윽해진다. 고등학교는 백운산이 있는 광양에서 기숙사 생활을 했다. 그러고 대학 가고 군대 가고. 살부비고 산 기간을 15년, 16년 남짓이다. 한 살에서 열 살은 상상이 되지 않는 시간이었다. 과연 이 갓난이가 초등학생이 되고 중학생이 될까 의심했는데 세상에 끝나지 않는 건 없었다. 아이와 지나온 날들이 점 같다. 내리며 사라져 버린 눈송이 한 점, 행주가 훔쳐버린 밥풀때기 한 점, 도화지가 먹은 잉크 한 점. 이건 의미가 있다 하기도 그렇고 의미가 없다 하기도 그렇다. 그런 시절이 있었던가? 새하얗고 차가워 도도한 눈송이는 세상을 덮을 기세였다, 밥풀은 밥 안에서 모두를 만족하게 할 만큼 충만했다. 잉크는 모든 선의 어머니 아닌가. 나만 보고 웃고 전신을 나에게 맡기고 내 살이 아니고는 잠을 자지 않았던 어린이의 시간. 무엇도 우릴 가를 수 없을 것 같던 찬란히 무수한 날이 흔적 없다. 나는 아련한 기억을 가끔 꺼내 추억하지만 아들은 녹아버린 눈송이처럼 행주 속에 감춰진 밥풀처럼 큰 의미가 있진 않은 모양이다.


전화 온 후 두 번 카톡이 왔다. "적금 넣었어요." 말의 즉슨 쓸 용돈이 없다는 뜻이다. "핸드폰 끊긴대요." 요즘 군대는 날마다 전화기를 준다. 궁금한 게 많지만 돈부터 보내주었다. 그리고 질문 폭격을 했다. 배치받은 자대 분위기는 괜찮은지, 이상한 사람은 없는지, 밥은 잘 먹는지, 아픈 데 없는지, 악기는 만져 보았는지, 예배는 드렸는지. 그리고 기도하고 있다고 썼다. 아들은 모든 물음에 "네네."라는 한마디 말만 남겼다.


대야에 물을 받아 시금치를 씻었다. 점 같은 모래들이 무수히 가라 앉았다. 그것들을 시원하게 쏟아 보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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