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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효진 Oct 24. 2023

우리는 왜 모여야 할까?

커뮤니티가 내게 가르쳐준 것 

11월에는 뉴그라운드의 첫 오프라인 팝업을 준비하고 있다. '준비하고 있다'라고 말하기가 머쓱한 것이, 실제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정확하게는 '어서 준비해야 하는데...' 하며 머릿속으로 여러 가지 기획을 굴려보고 불안해하는 중이다. 실시간으로 닥쳐오는 일들과 공부에 치이다 보니 팝업은 어느새 뒷전이 되어 있었다. 처음 여는 팝업인 만큼 잘하고 싶은데, 이대로라면 잘할 수가 없을 것 같았다. 결국 또 커뮤니티 멤버들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일요일 밤, 줌으로 진행한 팝업 아이데이션 회의에는 총 11명의 멤버들이 참여했다. '팝업'이라는 것에 대해 최근 어떤 느낌을 받고 있는지, 경험했던 팝업 중 인상적이었던 건 무엇이 있는지, 뉴그라운드의 팝업이라면 어떤 것들을 해볼 수 있을 것 같은지 등등 이야기가 끊임없이 이어졌다. 멤버들이 쏟아내는 아이디어를 정신없이 받아 적는데 기분이 좀 이상했다. 이 사람들... 어떻게 이렇게까지 커뮤니티 관련 일에 열정적이지? 어떻게 내가 이런 멤버들과 커뮤니티를 만들게 됐지? 그야말로 내가 멤버들로부터 '돌봄'을 받고 있었던 것이다. 


 뉴그라운드 팝업 아이데이션 회의를 마치며 멤버들과 찍은 스크린숏 


최근 수업에서 [돌봄의 선언과 자기 돌봄]이라는 논문을 읽으며 커뮤니티를 대하는 나, 그리고 멤버들의 변화를 되짚어 보게 됐다. 처음 여성 커뮤니티 만드는 일을 시작했던 2019년에는 커뮤니티가 무엇인지 이해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했다. 당시 사회적으로 여러 가지 일을 하는 개인은 유능한 것이며, 회사 바깥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는 그러한 유능한 노동자가 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담론이 조금씩 형성되던 시기였다. 나 역시 그 담론에서 자유롭지 않아서, 커뮤니티에 모인 우리가 여성으로서 일을 더 잘하고, 더 많은 일을 하고, 더 많은 돈을 벌고, 혹은 더 높은 자리로 가는 방법을 나눠야 한다고 생각했다. 여성 개개인이 승진하거나, 돈을 더 많이 버는 것으로 일터에서의 성차별을 바로잡을 수는 없는데 말이다. 


예상치 못한 코로나로 인해 2020년 회사가 문을 닫고, 거기서 함께 일하던 나와 동료는 새로운 여성 커뮤니티를 만들었다. 코로나는 위기인 동시에 관점이 전환되는 새로운 기회이기도 했다. 앞서 언급한 논문에서 저자 김성희는 이렇게 말한다. “돌봄 논자들은 전염병의 범유행 상황에서 국가의 한계를 보았고, 지역공동체는 물론, 가족, 친지, 친구 등 사적 관계에서도 새로운 희망을 발견했다. 정부가 제 기능을 하지 못했지만, 사람들은 서로를 돌보며 상호의존하기 시작했다.”


코로나를 지나며 커뮤니티를 대하는 태도는 물론, 일에 대한 사람들의 관점과 인식도 변했다. 개별 노동자의 헌신과 성실, 노력과는 관계없는 결과(번아웃, 회사의 폐업, 희망퇴직, 권고사직 등)가 돌아오는 것을 경험하고, 더 이상 성장이 불가능한 세계를 보면서 사람들은 일에 자신을 투신하는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조금씩 깨닫는 듯했다. 


우리가 커뮤니티에서 함께 배우는 것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한동안 일과 삶을 동일 선상에 놓고 둘의 균형을 논하는 '워라밸'이 중요하다고 여겼다면, 이제는 일과 삶을 애초에 나란히 놓아서는 안 됐다는 것, 일이 부분적으로 관여된 총체적인 경험으로서 우리의 삶을 인식하고 구성해야 한다는 사실을 안다. 이에 따라 커뮤니티에서도 일을 잘하거나 개인으로서 유능한 노동자가 되는 방법이 아닌, 좋은 삶이란 과연 무엇인지 고민하거나 타인들과 함께 조금이라도 더 나은 세계를 만드는 방법을 찾으려고 노력한다.


김성희의 논문에서는 '자기돌봄'을 "돌봄에 선행"하는 것이며, "내가 세상을 보는 시각, 관점을 확립하는 일, 나의 주체, 주관을 만드는 일"이라고 설명한다. 나와 멤버들이 함께 만드는 커뮤니티에서는 이러한 관점에서의 자기돌봄을 미약하게나마 실천하는 중이다. <세계 끝의 버섯>을 함께 읽으며 인간 중심적 사고를 전환하고, <다운 걸: 여성혐오의 논리>를 읽으며 자연스레 기득권을 가진 사람들의 편으로 생각이 기울어질 수 있음을 깨닫는다. 온라인 메신저를 활용해 사회적 소수자에 관한 뉴스를 공유하고 그에 대한 대화를 나누며 타자의 시선과 경험을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무엇보다 언제든, 누구든 취약해질 수 있고 도움을 요청하거나 받을 수 있다는 점을 기억한다. 커뮤니티에서 이러한 활동을 같이함으로써 멤버들과 나는 세상을 보는 시각과 관점을 확립하며 각자의 주체와 주관을 만들어 가고 있다. 이 시간이 쌓이고 쌓이면, 우리는 자기돌봄을 넘어 타자를 향한 정신적 돌봄과 육체적 돌봄을 실천하는 주체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자유로운 선택'의 의미 


트론토는 <돌봄 민주주의>라는 책에서 “의존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함께하는 인간 삶의 조건”이라며 “실제로 우리를 자유롭게 하는 것은 우리의 돌봄 역량과 우리가 돌보고자 하는 것에 기여하는 역량”이라고 말한다. “사람들이 그들을 둘러싼 제약 조건을 인식하지만 그럼에도 그들이 뜻과 행동을 함께 지속적으로 만들어 나갈 때 우리는 그들이 자유로운 선택을 하고 있다고 정의할 수 있다”며 자신이 알고 있는 최상의 자유는 이런 것이라고 선언한다.


이 작은 커뮤니티에서 만난 우리가 '함께' 이런 자유로운 선택을 할 수 있을까? 앞으로 얼마나 긴 시간이 걸릴지 알 수 없지만 말이다. 




안녕하세요, [그래서 제가 무슨 일을 하냐면요] 시리즈를 연재한 황효진입니다. 드디어 이번 글을 마지막으로 총 10개의 글을 발행했네요. 


시작할 때는 개인적인 커리어에 관한 이야기를 써보고 싶었던 것 같은데, 쓰다 보니 커뮤니티에 대한 글이 되고 말았습니다. 아마 지금 제가 가장 관심을 가지고 있고,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일이 커뮤니티를 만드는 것이라 그런 것 같아요. 더 잘하고 싶은 일이기도 하고요. 이 연재는 여기서 마무리하지만, 혹시 저의 일에 관한 이야기를 계속 읽고 싶은 분들이라면 [뉴그라운드 레터]를 구독해 주세요. 


그간 제 글을 읽어주시고, 응원해 주신 모든 분께 감사드립니다. 또 다른 글로 만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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