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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레이 Apr 03. 2021

결혼식 전날 밤

은혜 갚는 삶

18시간 후면 결혼식이 시작된다.
결혼을 하면서 내 삶에 바뀌는 부분이 많다.
함께 살던 가족이 아닌 누군가와 산다는 것도,
삼십여 년 간 살던 부모님 곁을 떠나온 것도,
누군가의 자식이 아닌 누군가의 남편과 가장으로 살아야 하는 것도, 모두 처음이다.

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에 첫 출근하기 전날 밤 같이 긴장되기도 하고, 어린 시절 첫 소풍을 앞두고 설레어 밤을 설쳤던 날 같기도 하다.
한 편으론 눈을 감았다 뜨면 결혼식이 끝나버렸으면 하는 마음도 있고, 다시 눈을 뜨면 결혼은 지난밤 꿈이었을 것만 같기도 하다.

결혼식을 준비한지는 근 1년이 다 되어 갔기에
조금씩 마음의 준비가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당일 코 앞이 되니 그동안 준비가 아닌 외면과 회피를 해온 것은 아닌가 싶다.

간지러우면서 슬프고, 설레면서 떨리는 이 마음을
앞서 결혼한 이들은 모두 겪었던 감정인 것인가.
이렇게 복합적이고 복잡한 감정을 겪은 이들이었다면 그들 앞에서 더 겸손했어야 했나 싶다.

살던 집과 부모님을 정신없이 떠나오던 순간은 잊지 못할 것만 같다. 그동안 낳고, 길러주신 감사함과 미안함을 정리하기에 며칠과 몇 시간은 찰나 같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어머니께 툭 던지듯이 내뱉고 온 말은 진심과 머쓱함, 어색함과 감사함이 뒤섞인 무언가였다.

내가 부모의 입장에서 자식을 떠나보낼 때의 마음은 어떨까. 직접 겪어봐야 조금 헤아릴 수 있겠지.

평생 함께할 동반자와 둥지를 트는 설레는 일이
평생 함께한 가족의 품을 떠나는 아쉬운 일이
전제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 아이러니하고 신비롭다.

결혼식이라는 인생의 변곡점은
마치 인생이라는 길의 급커브 구간과 같은 느낌이다.

갑작스런 방향 전환에 당황하고 순간은 한쪽으로 쏠리겠지만 이내 이전과 같이 나는 앞을 보고 달릴 것이다. 단지, 방향만 바뀌었을 뿐.


결혼식을 준비하면서 새삼 깨달은 것이 있다.
그것은 수많은 사람들이 나를 위해 애쓰고, 기도하고, 응원하고 있다는 것이다.
일상에 치여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사람들과 존재들이 결혼이라는 낯선 일을 준비하며 참으로 고맙고 감사한 분들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지금껏 많은 은혜를 받고, 입고 살아왔다. 부모님과 가족 친척, 친구들과 동료들...
효도를 하고, 보답을 한다는 생각은 했지만, 은혜를 갚는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다.
이제는 은혜를 갚는 삶을 살아야겠다. 내가 알게 모르게 받은 사랑과 응원을 앞으로 삶 속에서 조금씩 갚아나가고 싶다.

은혜 갚는 삶, 결혼 이후엔 그렇게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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