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해전 어머니 모시고 울진 불영사 가던 길 / 숲에서 온 종달새 편지
어머니께서 고향집으로 돌아 가셨습니다.
집떠나와 먼 곳에서 직장생활하는 아들 볼 것이라고 오셔서
걱정만 앉고 가셨지요.
어머니 떠난 빈 방에서
한참을 우두커니 앉아 있다가
어머니께서 주무셨던 요와 이블에 누워봅니다.
여기에 누우셔서 어떤 생각을 하셨을까요?
작은 방
걸레질하시고
큰아들 입고 다니던 등산복 빨래해 놓으시고
떠나 가시며
한참후
며느리 운전하는 차에서 전화하셨습니다.
'책상위 책갈피에 먹거리 사다 해먹으라고 돈 끼워 놨다'고
한참을
그 책갈피 들쳐 볼 수 없었지요.
울진 금강송면 도착하신 다음날
먼거리 오셔 피곤하셔서
늦은 아침을 먹고
부처님 오신날도 가까워 오기에
불영사에 모시고 갔습니다.
깊은 산
맑은 물
상큼한 공기
연초록으로 피어나는 새잎들
새소리도 정겨운 곳
일주문에서
불영사까지 2km
노인들이 걸어가시기에는
먼거리
비포장에 오르막 내리막이 이어지는 곳
그래도
참으로 오랜만에
아들내외와 함께 하는 산책이라
두런두런 말씀을 많이 하시며 걸으셨지요.
그 때는 몰랐습니다.
많이 힘드셔서 그 힘든 것 잊으려고 하신 말씀인줄을
내년에 여든이신데
한해 한해가 달라
기력도 많이 떨어지시고
관절로 고생하셔서
언덕을 한참 오르시다가
못가시겠다며
주져앉으셨지요.
멀고도 가까운
불영사 가는 길이
참으로 야속하였습니다.
저도 초행길이라
앞질러 가서
얼마를 더 가야하는지
언덕을 넘어갔다 오는데
어머니께서 며느리 앞세워
올라 오시는데
외소해지신 몸에
휘어진 다리로
힘겹게 걸어오시는 모습이
얼마나 짠하던지요.
주변의 우람한 소나무도
그렇게 반갑지 않았습니다.
내 어머니도
꽃다운 시절이 있으셔서
곱다는 이야기 많이 들으셨다지요.
귀한 집에 태어나셔서
마을에서
'아기씨'라고 불리셨는데
괴팍한 집안 시집살이에
살갑지 않은 남편에 자식들 때문에
고생 많으셨습니다.
큰아들 근무하는 곳
며느리 따라 먼길 오셔서
아들보자 눈물을 그렁그렁하셨던 내 어머니
다음날 여유있게 아침식사를 하시고
불영사 계곡을 찾았지요.
'늙은이가 무슨 사진이냐?'시며
손사래를 치시다가 마지못해
며느리와 포즈를 취하시는 어머니
멀리 걸어온 보람있게
주변의 금강송 소나무와 어울려
고즈넉한 사찰의 분위기가
방문자를 앞도했지요.
2km의 불영사로 가는 길
노인들이 걷기에는 무리인 듯싶은 그 길을
큰아들 내외따라 힘겹게 걸으셨지요.
대웅전에서 보시하시고
삼배하시며 무엇을 염원하셨을까요?
아름다운 사찰뒤로
멋스런 금강송 군락
참 행복한 나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4월 초파일
부처님 오신날
일주일 앞두고
대웅전 앞이 아름다운 연등으로 가득한데
사진을 찍는 동안
젊은 비구니 스님이 앞을 지나려다
미소를 지으며 멈춰섭니다.
금강송 소나무가 병풍처럼 둘러서 있는
아늑한 사찰
요지경 세상의 불온한 기운이 범접하지 못할 듯한 곳
비구니 여승들이 공부하고 수련하는 곳이라
모든 것이
아기자기하고 정갈한 모습이었습니다.
고풍스런 대웅전을 찾아
정성스럽게 시주하시고
삼배하시는 모습을 뵙니다.
절앞에 피어난 노란 골담초
시집오시니
할머니께서 약주 좋아 하시는
할아버지를 위해 골담초 뿌리로 술을 담그셨다는 이야기를 한참 하셨지요.
그 고된 시집살이도 이제는 아련하시다며
사찰 경내를 둘러보시며
먼저 앞장 서시는 어머니
저만치 먼저 가십니다.
그 뒷모습이 눈에 자꾸 밟혔지요.
좋은 계절이 와서
날로 푸르러 가는 산천인데
내 어머니는 점점 노쇠해져 가시니
서글픈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머니께서
오랜만에 보신다는 골담초
그 옛날 시골에 시집오니
골담초가 한창이었는데
할머니께서 저 골담초 뿌리로
약주 좋아하시는 할아버지를 위해
술을 담그시던 이야기를 한참 하시네요.
비구니 스님들께서 공부하시고 수련하시는 곳이라
아기자기하게 조경도 잘 되어 있는
아름다운 연못을 배경으로
관절이 안좋으신 어머니
힘겹게
온 길을 되돌아 걸어가시는데
많이 힘드신 모습
아들내외에게 보이지 않으시려
저만치 앞서 걸으십니다.
그렇게 두어번을 더 쉬시며
여기까지 어렵게 오셔서
사진을 찍으니
고개를 돌리시는 어머니
그렇게 먼길을 걸어서
다녀 오던 불영사
내게는
그 맑은 계곡물에 부처님 모습이 비춰보이는 것이 아니라
내 어머니의 꽃다운 모습이 비춰보이더이다.
차를 한참을 달려 도착한 죽변항
시장하셨던지 맛나게 늦은 점심식사를 하시고 찾은 바닷가
참 오랜만에 동해바다를 보신다고 하셨지요.
내 어머니!
저 푸른 바다를 내려다 보시며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요?
울진 죽변항에서
늦은 점심식사를 하시며
시장하셨다는 말씀에
얼마나 죄송한 생각이 들던지요.
불편하신 몸의 어머니 생각은 못하고
우리들 생각만 했구나 싶고
바람 많이 부는 바닷가
가벼운 어머니 모자가 날아갑니다.
그것을 잡으려 애쓰시는 모습
짠하고 아련했네요.
저 모자처럼
너무도 가벼워지신 늙으신 몸
어머니 마음도
새털처럼 이런저런 걱정 내려 놓으시고
가벼워지셨으면 하는 생각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