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내가 가장 많이 가져오는 것은 음식과 식재료다. 출국 전날에는 언제나 엄마와 함께 시장을 돌아다니며 장을 본다. 친정집 근처에 시장이 있어 편리하다. 휴대폰에 적어 놓은 장 볼 목록을 엄마에게 말하면, 엄마는 각 물품별로 단골 가게로 나를 데리고 간다.
“ㅇㅇ야, 이번에 뭐 사 갈라 카노?”
“어, 내가 적어 놓은 거 말해 볼게. 쌈채소, 애호박, 꽈리고추, 콩나물, 곱창김, 쥐포, 딸기, 참외, 배추김치, 물김치, 문어, 전복… 너무 많나?”
“하하, 그걸 다 우째 가져갈래? 뭐, 트렁크에 짐이 별로 없긴 하더라만. 일단 엄마랑 장 보러 가자.”
친정집 현관에 세워 둔 돌돌이 쇼핑카트를 끌고 엄마를 따라나섰다. 철물점에서 2만 5천 원 주고 샀다는 철제 쇼핑카트가 삐그덕거리며 소리를 냈다.
“엄마, 이 쇼핑카트에서 소리가 많이 나네.”
“그러게. 앞동 친구는 딸이 15만 원을 주고 쇼핑카트를 사줬다는데 그건 바퀴가 크고 잘 굴러가더라.”
“아니, 무슨 쇼핑카트가 15만 원이나 해? 나도 하나 사 줄게 그럼.”
“아이고 야야, 됐다. 이것만 해도 충분하다.”
횡단보도를 건너 생선가게로 갔다. 가게 주인에게 미리 주문해 둔 통영 자연산 돌문어를 보여 달라고 했다. 돌문어가 싱싱하게 살아 움직였다. 가게 주인은 돌문어가 부드러우면서도 쫄깃하고, 단맛이 날 거라고 했다. 크고 좋은 활전복도 골랐다. 주인은 문어와 전복을 스티로폼 박스에 담아 쇼핑카트에 실어 주었다. 과일가게로 가서 딸기 2팩과 참외 10개를 샀다. 딸기가 상하지 않도록 쇼핑카트 맨 위에 얹었다.
쌈채소를 사러 갔다. 상추, 고추, 꽈리고추, 애호박, 콩나물을 샀다.싱가포르에서 비싸게 사 먹던 한국 야채를 1/3 가격으로 구매할 수 있었다. 욕심껏 많이 사고 싶었지만, 한두 번 먹을 양만 구매했다. 곱창김 한 속도 사고, 입이 심심할 때 남편과 함께 구워 먹을 쥐포도 샀다. 미리 주문해 둔 물김치도 값을 치르고 카트에 담았다. 물건이 너무 많아 가벼운 것들은 손에 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돌아와서 보니 양이 꽤 많았다. 쿠팡에서 주문한 조선호텔김치 4kg도 있었다. 아이스백에 넣을 물건과 트렁크에 넣을 물건을 구분해 놓았다. 다음 날 새벽, 짐을 싸기 시작했다. 전날 한 번 미리 싸봤기 때문에 빠르게 마칠 수 있었다. 엄마는 냉장고와 냉동고를 살피며 하나라도 더 챙겨 주려 하셨다.
“ㅇㅇ야, 양념한 더덕 가져가서 구워 먹어. 쑥떡도 가져 가. 백명란도 네가 좋아하잖아. 엄마가 2조각씩 랩에 싸서 얼려 놨어. 우엉잎 찐 것도 가져갈래? 네가 잘 먹던데. 어제 엄마가 사 온 찹쌀도넛도 가져 가. 싱가포르 가면 잘 못 먹잖아.”
틈이 없어 보였지만, 어찌어찌 넣으니 다 들어갔다. 찹쌀도넛은 배낭에 넣었다. 옆에서 내가 짐 싸는 걸 지켜보던 엄마가 말했다.
“아이고 우리 딸, 이제 참 미덥다. 짐 챙기고 싸고 하는 걸 보니 인자 됐다.”
“아이, 엄마는. 내 나이가 몇인데. 나도 50대인데 이 정도는 하지.”
택시를 불러 공항으로 향했다. 아무리 집에 계시라고 해도 딸이 멀리 가는데 공항에 가야 한다며 부모님은 따라오셨다. 86세 아빠와 80세 엄마가 나를 배웅해 주셨다. 가을에 다시 오겠다고 약속하고 부모님을 안아 드렸다.
한국에 갈 때 가져가는 크고 작은 아이스백
싱가포르에 도착해 집에 들어오니 밤 9시 반이었다. 손만 씻고 가방을 풀었다. 꽁꽁 언 아이스팩 덕분에 김치와 해물이 모두 냉장 상태로 잘 보관되어 있었다. 딸기와 야채도 하나도 상한 게 없었다.
마침 아들이 집에 와 있었다. 시험기간이라 수업이 없어서 며칠 동안 집에서 공부할 거라고 했다. 식탁에 앉아 찹쌀도넛을 먹으며 그동안 있었던 이야기를 나눴다. 다음 날 저녁에는 한인 정육점에서 소고기 등심을 사서 아들에게 구워 주었다. 한국에서 가져온 상추와 고추도 함께 내어 주었다. 오랜만에 엄마가 구워주는 고기를 먹으니 맛있다며 꿀떡꿀떡 잘도 먹었다. 디저트로 딸기를 주었다. 아들이 “음, 이 맛이지.”하며 먹는 걸 보니, 힘들게 싸 온 보람이 느껴졌다.
애써 가져온 음식과 식재료를 상하지 않게 잘 보관해 두고, 매일 부지런히 요리해 먹었다. 뭐든 잘 먹는 아들이 집에 있어서 요리하는 것도 즐거웠다. 애호박으로 애호박채전을 부쳤고, 엄마가 볶아 준 전복으로는 뽀얗게 전복국을 끓였다. 문어숙회는 얇게 썰어 초고추장과 곁들였고, 양념에 재운 더덕은 참기름에 살짝 구웠다. 콩나물 무침을 만들고 꽈리고추찜을 준비했다. 백명란은 전자레인지에 돌려 반쯤 익히고, 곱창김은 프라이팬에 두 장씩 겹쳐 놓고 구웠다.
상하기 쉬운 야채류는 거의 다 먹었지만,냉장고와 냉동고에는 여전히 한국에서 가져온 식재료들이 남아 있다. 엄마가 볶아 준 전복, 엄마가 삶아 준 문어, 엄마가 2조각씩 랩으로 싸 준 백명란, 엄마와 함께 산 곱창김과 쥐포, 엄마가 싸 준 쑥인절미, 엄마가…
‘엄마……엄마가 없으면 어떡하지?’
단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다. 그 순간 후회가 밀려왔다. 조금 더 부지런히 움직여 음식이나 집안일을 도와 드렸어야 했는데.엄마에게 먹으라는 소리 그만하라고 짜증을 냈던 것이 후회되었다. 친정에 갈 때는 발걸음이 가벼웠지만 돌아오는 길은 무거웠다.
엄마의 사랑과 수고를 당연하게 여겼던 내 모습이 부끄러웠다. 가을에 가면 좀 더 잘해드려야겠다고 다짐했다. 한국에서 가져온 식재료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 남은 음식을 하나씩 꺼내 먹을 때마다 엄마의 사랑과 정성이 더 깊이 느껴졌다. 고마운 마음이 점점 커져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