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다시 나를 꾸며야 할 때.
내 인생의 대부분의 시간동안 겉모습 꾸미는데 크게 관심이 없었다. 과거를 생각해보면 진짜 안 씻는 백수 같은 느낌. 10년째 쓰는 거대한 뿔테 안경에, 고등학생땐 면도도 띄엄띄엄 하고 다녀서 낯빛마저 어두웠다. 대학 올라와도 거의 마찬가지였는데, 신경 안 쓰는 데다가 어떻게 하는지도 잘 몰라서 거의 고등학생 기준으로 깔끔하게 하고 다니려고 노력했지만 엉성하게 웃길 뿐 큰 효용은 없었다.
그때 만난 누군가가 안경 벗고 콘택트 렌즈를 껴보라고 했었던 것 같다. 시급한 대책이 요구되는 후줄근한 인상 때문에, 안경만 벗어도 좀 괜찮아질 것 같다면서. 그래서 렌즈를 사러 가봤었다. 기억 나는 건 안경점에서 렌즈 끼는 연습을 하다가 두개나 바닥에 떨어트렸다는 것. 또 하나 끼는데 거의 한시간이 걸렸다. 참혹한 대장정이었지만, 그래도 안경을 쓰지 않고 조금은 덜 거추장스러워서 만족했었던 기억이 난다. 이런 것도 있다니 완전 신세계라는 느낌도. 사실 안경을 벗고 잘 보였던 기억이 별로 없어서, 안경을 벗은 내 모습이 이렇게 생겼다는 것을 거의 처음 안 것 같기도 하고.
지금 생각해보면 나 하나 꾸밀 줄 모르는 고등학생이 조금은 어른이 된 계기였달까. 렌즈를 시작으로 미약하나마 꾸미기가 시작되었던 것 같다. 눈썹칼로 눈썹면도도 하고, 염색도 해보고, 옷도 잘 입어보고 싶어서 이것저것 사고… 생각해보면 모두 타인이 있어서 가능했다. 내 스스로가 봤을 때 괜찮다고 느꼈으면 아무것도 안 했을테니. 사실 그게 진짜 편하긴 한데. 너도 나도 예쁘게 멋지게 이곳 저곳 꾸미는 갓 스무살들 틈에서 아무것도 안 하고 가만 있기 참 뭐했던 것 같다. 그럴 배짱도 없었고.
전역하고 서울에 와서 제일 처음 한 것 중에 하나가 렌즈 사는 거였다. 안경점에 들어가니 2015년에 렌즈를 사갔던 기록이 남아 있더라. 렌즈를 처음 맞췄었던 그때의 기억이 되살아났다. 렌즈 사서 끼고 다니는거야 진짜 별 일이 아닌데, 이 구입행위 자체가 무슨 속세로 돌아와 사회의 타인들과 살아갈 준비를 하는 무슨 의식처럼 느껴졌다. 참 별 것 가지고 유난이었는데, 이제 귀찮은 일이 좀 더 늘 거라는 직감 정도만 조금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