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스파이 브릿지'를 다시 봐야 하는 이유
매카시가 열풍을 일으키던 1950년대가 배경이다.
미국과 소련은 핵무기로 무장하고 서로에 대한 공격성을 극대화하고 있고, 스파이들을 침투시켜 정보전을 벌이고 있었으며, 아이들은 성조기를 향하여 국기에 대한 맹세를, 비디오를 통해 핵전쟁의 위험을, 소련에 대한 적개심을 교육받던 그 시기.
뉴욕의 보험전문 변호사인 도노반(톰 행크스)은 미변호사협회의 요청으로 스파이 혐의를 받고 있던 아벨(마크 라이언스)의 변호를 맡게 된다. 형식적이나마 인권을 존중하고 사법정의를 최고의 가치로 삼는 미국의 우수함을 보여주겠다는 정치적인 제스처.
하지만, 도노반은 변호사로서 본인의 소임을 다하기로 결심한다.
변호사로서 의뢰인의 무죄를 입증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지만, 그럴수록 국민들로부터는 지탄의 대상이 된다.
왜 빨갱이를 변호하냐!
가족들까지 불상의 괴한으로부터 총질을 당하기까지 하지만, 도노반은 굽히지 않는다.
모든 사람은 변론의 기회를 얻어야 한다
재판 상황은 불리하게만 돌아가고, 조작된 증거들도 증거능력을 인정받아 꼼짝없이 패소할 수밖에 없게 된 상황. 도노반은 판사를 설득한다.
만약 우리 스파이가 소련에 잡히면,
교환대상이 필요하지 않겠나?
결국 재판장은 유죄를 선포하지만, 사형이 아닌 징역 30년 형을 선고한다.
도노반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연방대법원에 ‘항소’한다. 도노반은 헌법재판관들 앞에서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냉전 중에 있다.
서로 다른 이념을 두고 자신들의 이념이
더 우수하다고 자랑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가 믿는 자유민주주의가
더 우수함을 보여줘야 하지 않을까?”
이러한 설득도 헌법재판관들의 판결을 뒤집을 수 없었다. 사건은 여기서 일단락되는 듯했다.
그러던 중, 도노반이 예견한 것처럼 미국의 정찰기 조종사 파워스가 소련의 영토를 촬영하다가 생포되는 상황을 맞이하게 된다. 미국 CIA는 이 두 포로의 교환 협상을 도노반이 직접 맡도록 의뢰한다. 미국 정부는 양국의 민감한 상황을 고려해 전혀 도움을 줄 수 없을 것이라고 못을 박는다.
도노반은 재판을 진행하면서 정들었던 아벨을 살아서 고향으로 돌려보낼 수 있다는 점 만으로도 그 일을 맡는다.
협상 장소는 독일의 동베를린. 당시 독일은 동독과 서독으로 나뉘면서 베를린 장벽을 쌓아 올리고 있던 시기였다. 동에서 서로, 혹은 서에서 동으로 담을 넘는 모든 사람에 대해서는 가차 없이 총질을 하는 그런 엄혹한 시기였다.
협상에 임하기 위해 동베를린에 있는 소련대사관으로 이동하면서 도노반은 뜻밖의 이야기를 듣게 된다. 동독에서 공부하고 있던 미국인 유학생 프라이어가 베를린 장벽의 설치 과정에서 동독에 간첩 혐의로 동독에 잡혔다는 것이다. CIA는 프라이어는 신경 쓰지 말고 파워스에 집중하라고 도노반을 압박한다.
소련과의 협상에서 도노반은 잠시 주춤했지만, 파워스와 아벨의 교환에 덧붙여 프라이어도 석방하라고 요구한다. 소련은 그 문제는 동독의 소관이라며 난색을 표한다.
도노반은 다시 동독과의 협상에 임한다. 동독은 프라이어와 아벨의 교환에는 응할 수 있다고 하지만, 파워스는 자기 소관이 아니라고 난색을 표한다. 사실 동독은 아벨-프라이어 맞교환을 통해 미국으로부터 소련의 속국이 아닌 정식 정부로서의 권위를 인정받으려는 속셈이었다.
한 명의 아벨을 주고 소련에 있는 파워스와 동독에 있는 프라이어 둘을 얻어야 하는 상황.
소련과 동독은 미국이 하나의 선물을 두 사람에게 팔려고 한다며 협상을 결렬하려고 한다. CIA는 도노반에게 협상을 그르치지 말고 프라이어는 버리고 파워스에게만 집중하라고 한다.
하지만, 도노반은 이렇게 답한다.
가장 중요한 문제는 나 자신이었다.
이 둘을 모두 살려낼 수 있다는 신념,
그것이 있는지를 확인하는 과정이었고
난 그렇게 믿는다
도노반은 모두를 석방하는 것이 세 정부 모두에게 유익하다는 최후통첩을 양측 정부에 날리고 마침내 협상을 성사시켜 모두를 살려 고국으로 돌려보낸다.
‘스파이브릿지’가 개봉되었던 2015년 대한민국은 뒤늦은 매카시즘의 광풍이 불어닥친 시기였다.
3월 한미훈련 반대를 외치며 시민활동가 김기종 씨가 한 강연회에 참석한 리퍼트 주한 미국 대사를 습격했다. 당시 중동을 방문하던 박근혜 대통령은 배후를 철저히 밝히라는 수사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며 대대적인 ‘종북척결’을 선포했다. (최근 밝혀진 바에 따르면, 양승태 대법관 시절 법원행정처가 작성한 문건에는 이 사건 재판이 청와대와 거래하기 위한 ‘협조 사례’ 중 하나로 기록되어 있었다.
(관련기사 : http://news.joins.com/article/22686415)
8월에는 파주 인근 비무장지대에서 북한이 설치한 것으로 추정되는 목함지뢰에 우리 장병 2명이 부상당하자 우리 군은 11년간 중단되었던 대북 확성기 방송을 재개, 북한의 고사포와 직사포 포격 도발을 받고 대응사격에 나서면서 한반도 긴장이 최고조에 달했다. 하지만, 어떻게 북한군이 DMZ를 넘어 우리 철책까지 넘어와 목함지뢰를 설치하고 돌아갔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우리 군은 무엇을 하였는지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밝혀지지 않았다. 또 최근 밝혀진 바에 따르면 대북 확성기 사업에 현직 군 관계자와 브로커 등이 담합해 부실한 장비를 공급하고 거액을 챙겼던 것으로 드러났다.
(관련기사 : http://www.nocutnews.co.kr/news/4968813)
그 해 11월 박근혜 정부는 우리 교과서가 지나치게 좌편향되어 있다며 역사교과서 국정화 방침을 확정 고시했다. 당시 박근혜 전 대통령은 “현행 교과서가 대한민국에 태어난 것을 부끄럽게 만들도록 기술되어 있다”며, 어떤 부분이 그러한가라는 질문에 대해 “전체 책을 보면 그런 기운이 온다”라고 답하기도 했다. 또 “바르게 역사를 배우지 못하면 혼이 비정상 된다”라고 발언하기도 했다.
(관련기사 : http://v.media.daum.net/v/20151022202931774)
상식과 이성이 마비되고 이념이 활개 치며 폭력을 행사하던 그 시기, 이 영화는 우리가 결코 잊지 말아야 할 정확한 지점을 말해주고 있었다.
모든 인간은 존엄하며, 모든 사람은 변론의 기회를 얻어야 하며, 모든 사람은 공정한 재판을 통해 형이 확정되기 전까지는 무죄이며(무죄추정의 원칙), 결국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우수성은 이로써 증명되어야 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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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 매거진 '이 영화를 다시 봐야 하는 이유'는 영화의 내용과 의미를 충실하게 전함으로써 영화를 보았거나 혹은 보지 못한 이들에게 '읽는 영화'로서의 재미를 선사함과 동시에 그 영화의 메시지가 우리에게 주는 사회적 의미를 되짚어보는 데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영화는 허구적 상상력의 집약체이지만, 그 허구는 현실로부터 벗어날 수 없으며 그 상상력도 인간의 심리를 떠나서는 생각할 수 없습니다. 영화가 바라보고 있는 나름의 현실, 그리고 인간의 심리를 되짚어보는 것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때로는 묵직한 울림을 주기도 하고, 흥미로운 통찰과 관점을 제시하기도 합니다.
영화를 읽으며, 사람과 세상을 알아가는 재미를 함께 누렸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