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0월 3일에 시작한 브런치 그리고 2025년 10월 5일
추석이다.
길고 긴 연휴가 다가왔다.
그런데 연휴가 연휴답지 않다. 학교 일 때문에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나는 글을 쓴다.
바쁜 와중이라도 어지러운 머리 속을 정리하는 데에는 글쓰기가 제격이다.
2024년 10월 3일 나는 브런치라는 플랫폼에 글을 처음으로 쓰기 시작했다.
작가가 되어서 돈을 벌어보고 싶다는 작은 소망이 있었기 때문이다.
브런치를 시작하고 나서도 1년 동안 참 많은 일이 있었다.
예술을 한다는 것과 현실을 살아가야한다는 것의 간극에서 참으로 많이 갈팡질팡했다.
글을 잘 쓴다는 것, 돈이 되는 글쓰기를 한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에 대해서 생각하기도 했고, 다른 사람들의 글을 읽으면서 어떻게 해야 조회수를 많이 얻고 라이킷을 많이 받을 수 있을까에 대해서 궁리하기도 했다.
정신과를 다니면서 나의 과거와 싸우기도 했다.
지금도 정신과를 다니지만 나의 마음은 과거보다 현재에 있는 시간이 더 길다.
사실 이제는 내가 가정폭력에서 생존했다는 사실이 내 인생에 그렇게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는다.
옛날처럼 과거에 있었던 일을 다시 들춰내도 마음이 그렇게 흔들리지 않는다.
흔들림 총량의 법칙이라도 있는 것처럼 지금의 나는 회복탄력성이 좋아졌고, 덜 흔들린다.
이제는 내가 매진해야 하는 삶이 있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있다.
내 시선에 끝에는 미래가 있다.
학교도 열심히 다녔다.
어제의 나보다 오늘의 내가 더 나아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했다.
느끼는 것들도 참 많았다.
내가 참 어렸고, 시야도 좁았으며, 한편으로는 내가 있는 곳이 참 좁은 곳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연기에 대한 나의 꿈은 나의 마음 속 깊은 곳에 희미하지만 자기만의 물줄기를 틔우며 흐르고 있다.
옛날처럼 누군가를 향한 분노를 표출하고 싶은 마음 때문이 아니라 자유로워지고 싶어서 연기가 하고 싶다.
내가 무엇을 만들고 싶어하는지 정확하게 알지 못한다고 했던 과거의 나에 비해 지금의 나는 예술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골몰하고 있다.
지금 수강하고 있는 교양 수업들 중 하나의 기말 고사 대체 과제가 자신이 생각하는 예술이 무엇인지에 대해 서술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예술이라는 것이 어떻게 학문적으로 기원했는지에 대해 과거의 여러 철학자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데, 내 생각은 생각보다 고루한 것이었다는 생각이 들어서 약간 멋쩍기도 하다.
그 옛날의 철학자들이 비판하던 예술의 중심에 나의 생각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 생각을 바꿀 수도 없지 않는가.
그냥 나의 생각은 이런 것이라고 밀고 나가 볼 생각이다.
내가 무엇을 만들고 싶어하는지는 정확하게 모르지만, 내가 계속해서 틀을 깨고(틀을 깨고 싶다는 표현이 고스란히 과거의 내 브런치 글에 남아있어서 혼자서 놀라는 중이다) 나의 내면에 있는 것들을 표현하고 싶은 욕구가 가득한 사람이라는 것은 정확하게 알게 되었다.
요가를 시작하게 되면서 그와 함께 하는 그림명상을 통해 나를 알게 되었다.
그림 명상 시간이 없어지긴 했지만 다이소에서 그림을 그리는 도구들을 사서 나 혼자라도 이어가려고 노력 중이다.
그리고 날이 갈수록 자기 비하가 조금씩 없어지고 있는 것을 느낀다.
나의 자아가 그만큼 단단해져간다.
그리고 나는 가난이라는 이름으로 나의 도전을 막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새로운 도전이 두려웠던 것이다.
그냥 하면 되는데.
그리고 생각보다 지나간 시간들은 내 인생에 큰 보탬이 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나는 시간들을 무의미하게 보내는 사람이 아니니 눈에 보이지는 않더라도 조금씩 변화하고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이 나는 느껴진다.
점점 미래라는 단어를 생각해도 마음이 무겁지 않다.
미래를 생각하는 것이 버거웠던 과거의 나는 없어진지 오래다.
지금은 미래가 오히려 궁금할 지경이다.
브런치를 시작했던 초창기는 나의 울분과 분노를 터뜨리는데 좀 더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 같았다.
사실 생산적인 글쓰기는 아니다. 내 일기장에 쓸 만한 이야기들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런 이야기를 공적인 공간에 풀어놓는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내 감정에 대한 정당성을 얻고 싶었던, 자아가 약했던 나의 발악이었던 것일까.
그리고 과거의 나는 내가 어떤 정상적인 트랙에서 벗어난 인간이라고 스스로를 여기고 있는 듯 하다.
그 정상성이라는 건 내 머리 속에 있는 나의 이상적인 모습이 아닐까.
틀이라는 건 내 머리 속에만 존재하는 것인데.
과거의 나는 자기연민이 가득하다.
지금의 나는 상처라는 건 잘 치료만 해주면 다 낫는 것이구나 하며 평온하다. 내가 아픈 것에 왜 이렇게 죄책감을 가졌을까 하는 의문과 함께.
과거의 나는 자존심만 그득하다. 처음은 원래 다 못하는 것인데 왜 그렇게 기를 쓰고 잘 하는 것처럼 보이고 싶어하는지. 조금은 내려놓으라고 지금의 내가 이야기 해주고 싶다.
어쩌면 나는 머리로만 생각하고 시작하지 않았던 나의 안 좋은 버릇을 고치기 시작한 것 같다.
상처를 비롯한 이 세상의 모든 것은 밖으로 꺼내놓아야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것 같다.
과거의 나는 알맹이가 없이 가볍다. 내 경험의 부족에서 나오는 가벼움이겠지만.
지금의 나는 모르겠다. 요즘은 글을 발행을 잘 안 해서 요즘의 내가 성장했는지 아닌지도 잘 알 수가 없다. 슬럼프가 왔었나보다. 이제는 글을 좀 다시 써 버릇해야겠다.
과거의 나는 행복하지 않았구나 싶다. 행복을 목표로 삼는 사람이었으니까.
지금의 나는 어떤 것도 목표로 삼지 않는다. 지금 현재에 충실할 뿐이다.
과거의 나는 참 겁이 많다. 경험이 적은 탓이다.
지금의 나는 이전보다는 가벼워진 느낌이다. 요즘 팀플 팀장을 2개나 맡게 되면서 '오, 나도 이런 걸 할 수 있네?' 같은 생각을 하면서 자신감을 얻었기 때문이다.
과거의 나는 상처 입은 나에 집착했다. 말끝마다 가정폭력이다. 물론 그것에서 나았기 때문에 지금은 이렇게 날카롭게 과거의 나를 비판할 수도 있는 것이지만 상처에 집착하고 있으니 다른 것이 보이지 않는 건 당연하다.
요즘의 나는 내 목소리로 이야기하는 것이 즐겁다. 내 머리 속에서 나온 내 말투로 이야기하는 것.
다른 누군가를 따라하는 게 아니라 내 마음 속에서 우러나오는대로 말하고 행동하는 것.
지금의 나를 글을 쓰며 정리하니 복잡했던 머리가 시원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