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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푸르나에서 만난 사람들

by 걷고

이번 여정을 총괄했던 어나집 여행사 대표의 네팔 현지 담당자인 ‘딘’이 있다. 영어 선생님 출신답게 영어를 잘하고 한국어도 간단한 의사소통이 되는 사람이다. 그의 역할이 매우 크다. 포카라 공항에서 만나 택시를 타고 호텔 이동부터 그의 역할이 시작된다. 공항에서 처음 만났을 때 선물로 손수건을 인원수만큼 준비해서 나눠주었다. 그 손수건에는 히말라야 산군 지도가 그려져 있다. 공항 앞에서 택시를 수배하는 것부터 전쟁이다. 택시기사들의 호객 행위가 시작되면서 비로소 네팔에 온 것을 처음 실감한다. 사람 사는 냄새는 나지만 정신이 없다. 서로 엉키는 순간에서 요령 있게 피하는 택시기사들을 보며 감탄하기도 했지만 아찔하기도 하다. 이 또한 이 나라의 문화이다.


다음 날 아침 짐 꾸리기부터 여정이 시작된다. 포터와 지프차 운전수들, 가이드가 모여 아수라장이다. 짐은 짐대로 모아 꾸러미를 만들어 지프차 지붕에 얹는다. 그때까지는 앞으로 어떻게 진행되는지 전혀 예측할 수 없었다. 지프차를 타고 네 시간 정도 이동한다는 말 밖에는. 열댓 명의 포터와 운전수가 서로 엉켜 각자 역할을 하고 있다. 그것을 진두지휘하는 사람이 바로 ‘딘’이다. ‘딘’은 이 프로젝트의 선장이다. 그가 모든 것을 지휘하고 결정하고 필요한 사람을 불러 일을 시킨다. 짐을 지프차에 모두 올린 후에 삼삼오오 나뉘어 차에 오른다. 두 명의 포터가 우리와 함께 탔다. 기사와 우리 인원 다섯 명, 두 명의 포터, 총 여덟 명이 한 차에 올라 이동한다. 그때 함께 탄 포터 이름이 ‘니산’과 ‘타이거’다. ‘타이거’의 본명을 부르기가 어려워 쉬운 이름을 가르쳐 달라고 했더니 할아버지가 별명으로 지어준 이름이라며 ‘타이거’라고 가르쳐 준다. 20대 초반의 ‘타이거’는 대학생으로 이번 포터가 첫 번째라고 했고, 30대 초반인 ‘니산’은 포터 경험이 3년 되었다고 한다. 두 명 다 간단한 영어 표현이 가능한 사람들이다. 소통이 잘 되지 않고, 문화가 다르기에 대학생인지 아니면 고교 졸업생인지 잘 모르겠다.


운전기사는 음악을 크게 틀고 운전을 한다. 시내를 달릴 때는 서로 아슬아슬하게 피하고 매연을 뿜으며 신나게 달린다. 오프로드에 들어서면서 비로소 지프차의 진가가 발휘된다. 차는 오래되어 시트의 쿠션도 엉망이고, 에어컨도 안 나오고, 덜컹거리는데도 희한하게 산을 오를 때에는 힘이 강력해서 높은 오르막길도 거뜬히 오른다. 오르다 미끄러질 때는 두 명의 포터가 내려 바퀴 밑에 돌을 괴어 차를 오르게 만든다. 모든 것이 가능한 곳이다. 허긴 사람 사는 곳은 늘 그렇듯 그들만의 문화로 모든 것이 되게끔 되어 있다. 단지 그 되어가는 모습만 서로 다를 뿐이다. 두 명의 포터 중 ‘타이거’는 노래를 좋아한다. 기사 역시 노래를 좋아한다. 시끄러운 음악 소리를 들으며 오프로드를 달리면서 몸이 휘청거릴 때마다 이제야 네팔에 왔고, 우리가 트레킹을 시작할 지점으로 이동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꽤 높은 곳에 올라 설산이 보이자 기사는 차를 세우고는 사진을 찍으라고 한다. 많은 경험이 만든 노하우일 것이다. 기사는 이 일을 한 지 9년 정도 되었다고 하고, 한 달에 두세 번 정도 이 일을 한다고 한다. 아마 그 정도로도 생활하는 데는 불편하지 않은 듯 즐겁게 흥얼거리며 음악에 몸을 맡기고 운전을 한다. 모두 말이 많지는 않지만, 표정은 맑고 밝아 보인다.

반단티에 내려 점심 식사를 한다. 비빔밥이 제대로 나왔다. 비빔밥에 어울리는 국물도 나왔다. 한국에서 요리를 3년 정도 했다는 주방장과 주방장 보조의 모습을 처음 보았다. 머리에는 비닐로 만든 모자를 써서 위생에 신경 쓰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식사를 마치고 십여 명의 포터, 가이드 다섯 명, 주방장과 주방보조와 우리 모두 인사를 나눴다. 앞으로 일주일간 함께 생활할 식구들이다. 가이드는 선발이 있고, 중간 가이드가 있고, 후미 가이드가 있다. 후미 가이드는 절대로 우리를 앞서 가지 않는다. 중간 가이드는 가다가 힘든 사람이 있으면 배낭을 들어주며 도움을 준다. 포터는 1인당 약 25kg에서 30kg 정도 되게끔 꾸러미를 만들어 머리에 끈을 매고 등짐을 지며 걷는다. 운동화 신은 사람보다는 맨발에 슬리퍼를 신은 포터가 더 많다. 그럼에도 이들의 발걸음은 우리보다 가볍고 날래다. 후미 가이드는 연세가 많고 체구가 작은 사람인데, 알고 보니 ‘단’의 장인어른이다.

우리도 그런 적이 있었다. 한 사람이 공장에 취직하면 가족이나 주변 친구들을 불러 함께 공장에서 근무한 적도 있었다. 한 사람 인연으로 가족이나 친지 모두 함께 살아가는 시절이 있었다. ‘딘’의 가족 역시 마찬가지다. 장언어른도 함께 일하고, 사촌도 포터로 일을 한다. 그리고 그들의 가족이나 친지들이 모여 함께 일을 한다. 그런 면에서 ‘딘’은 트레커들에게뿐만 아니라 가족이나 주변 사람 모두에게 매우 중요한 사람이다. 그는 말이 별로 없다. 하지만 조용히 업무를 처리하고 사람들과 소통하며 전체를 조정한다. 작은 체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에너지는 밝고 강하다. 사람들도 그의 말을 존중하고 잘 따르는 느낌이 든다.

로지에 도착하면 주방장이 음식을 준비하고, 히팅맨이라는 사람이 물을 끓인다. 이 사람의 역할도 매우 중요하다. 음식 만드는 데 필수적인 불을 만들고 물을 따뜻하게 만들어 우리에게 온수를 공급해 준다. 그 물을 보온 물주머니와 물통에 담고 자며 추위를 견딜 수 있다. 그의 역할은 오로지 불을 만들고 따뜻한 물을 만드는 것이다. 말이나 당나귀가 보급차 역할을 한다. 당나귀 등짐에는 가스통도 있다. 또한 요리사의 등짐에도 음식이나 조리기구가 있다. 각자 자신의 역할에 필요한 업무를 하기 위한 물건을 책임지고 들고 다닌다. 로지에는 로지를 관리하는 사람들이 있다. 물건을 파는 사람도 있고, 숙소를 정리하고 빨래하는 사람도 있고, 화장실을 청소하고 마당을 쓰는 사람도 있다. 어느 로지에서는 뜨거울 물로 샤워를 할 수 있는 곳이 있다. 물론 별도의 비용을 지불하지만, 전체 일정 중 한번 했던 샤워는 나름 활기를 불어넣어 준다. 로지 앞에 큰 물통이 놓여 있다 무심코 그 물을 마셨는데 제법 단맛이 나는 따뜻한 차다. 나중에 로지 여주인이 큰 소리로 뭐라고 한다. 눈치로 살펴보니 그 물은 가이트나 포터를 위한 물인데, 그들의 물을 내가 모르고 마셨던 것이다. 그 큰소리가 기분 나쁘게 들리지 않았던 이유는 서로를 가족처럼 챙기는 마음이 느껴져서일 것이다.


밤에 로지에서 나와 저 멀리 보이는 불빛을 바라본다. 모두 로지들이다. 트레커들을 위한 로지이자. 트레커들의 편의를 위해 서비스를 제공하는 포터, 가이드, 요리사, 히팅맨, 현지인들이 모여 함께 살아가는 달동네의 모습이다. 비행기에서 내려다본 산속 마을을 보며 이들이 어떻게 살아갈까라는 생각을 잠시 한 적 있었는데, 그 마을들이 모두 로지들이다. 로지는 법적으로 3년 간만 운영하게 되어 있다고 한다. 그 이후에는 다른 사람이 운영하게끔 법적으로 만들어져서 서로 나누고 공존하라고 했지만 이 법이 잘 지켜지는지는 의문이다. 어느 곳이나 법과 현실이 다르다.


우리가 ABC에 도착할 수 있었던 것은 모두 이분들 덕분이다. 그분들의 얼굴이 떠오른다. 딘, 포터, 가이드, 지프차 운전수, 요리사, 로지를 지키고 관리하는 사람들, 그리고 안나푸르나가 우리의 도착을 허락해 주었기 때문에 우리가 무사히 도착할 수 있었다. 어나집 대표의 전체 일정 관리하는 노력과 현지 대표 격인 ‘딘’의 호흡도 잘 맞은 덕분에 우리는 편안하게 ABC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이 글을 쓰며 다시금 그들의 노력과 봉사에 감사하는 마음을 전한다. 고맙습니다. 늘 건강하고 행복하시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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