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고의 걷기 일기 0181]

가족

by 걷고

며칠 걷지 못했다. 외손주가 태어나면서 많은 변화가 생겼다. 아직 딸아이는 외손주와 산후 조리원에 있고, 사위는 집에 머물며 손녀를 돌보고 있다. 우리는 딸 집에 가서 손녀와 놀거나, 어린이집에서 픽업해서 같이 놀다가 오기도 한다. 지난 이틀 간은 어린이집이 방학이어서 사위와 손녀가 우리 집에 같이 머물다 갔다. 손녀와 사위의 일정에 따라 우리 일정은 변화무쌍하다. 같이 놀다가도 갑자기 손녀는 엄마가 보고 싶다고 칭얼거리기도 한다. 마음이 짠하다. 특히 잠이 올 때 엄마 생각이 많이 나는 것 같다.


어제는 딸아이 집에 가서 손녀와 같이 놀다가 밤에 돌아왔다. 아이의 노는 모습을 보며 격세지감을 느낄 수 있다. 손녀는 듣고 싶은 음악이 있으면 인공지능 스피커에게 명령한다. 집에 돌아오면 바로 손을 씻고, 창문을 열어서 환기하라고 한다. 집에는 공기정화기가 있다. 찰흙 대신에 찰흙 느낌이 나는 인조 흙을 갖고 논다. 밀가루 반죽처럼 생긴 인조 밀가루로 목걸이를 만들거나 원하는 물품을 만든다. 차를 타고 부모와 이동 중에는 태블릿 PC를 이용해서 영상을 본다. 가짜 모래로 모래놀이를 한다. 보지도 못하고 앞으로도 볼 수 없는 공룡 이름을 얘기한다. 장난감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아이스크림을 만들어 우리에게 선물하기도 하고, 가짜 싱크대에서 물을 끓이는 소리를 내는 가짜 가스레인지에 물을 덥히는 시늉도 한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만 세 살도 재 되지 않은 아이에게 진짜 세상과 가상 세상과의 차이점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물론 아직 어린아이이기에 장난감 인형과 말을 나누고, 인형을 사람처럼 인식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그럼에도 가상현실로 인한 혼란은 없을까? 야외에 나가서 노는 것은 아예 상상조차 할 수 없고, 큰 쇼핑몰에 있는 놀이터에서 놀기도 한다. 하지만 대부분 시간은 실내에서 보낸다. 이 아이에게 바깥은 벌써 위험한 세상이 되었다. 미세 먼지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그에 따른 행동을 몸이 익히고 있다. 부모의 영향이 컸을 것이다. 사위와 딸은 공기의 질에 대해서는 우리가 이해되지 않을 정도로 신경 쓰는 편이다. 살아가는 방식에 많은 변화가 일어난 것이다. 그런 변화에 우리는 익숙하지 않고, 사위와 딸은 같은 세상에 살면서도 우리와 다른 세상에서 다른 생각과 삶의 태도를 지니고 살아간다.


가끔 대중교통 이용 시 젊은 엄마가 어린아이와 함께 앉아서 어른이 와도 일어설 생각조차 하지 않는 모습을 보게 된다. 부모가 자리 양보에 대한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으니, 어린아이에게 자리 양보하라는 말은 이해가 되지 않는 불합리한 요구일 것이다. 우리 세대와 자식 세대 간에 이미 큰 차이가 생겼고, 손주 세대와는 더욱 큰 간격이 생길 것이다. 가끔 아내와 말다툼을 하는 이유 중 하나가 아이들을 대하는 태도 때문이다. 아내는 뭔가를 더 해 주려고 하고, 아이들은 가능하면 자신들 방식으로 하려고 한다. 그런 보이지 않는 미세한 갈등을 지켜보면 아내와 자식들에게 은근히 부아가 올라온다. 하지만 표현하지 못하고 혼자 삼키는 경우가 많다. 그런 표현으로 인해 아내나 아이들과 불편한 관계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한 가족이 한 평생 살아가는데 정말로 많은 일이 생기고, 많은 생각을 하게 되며, 그 덕분에 조금씩 어른이 되어가는 것 같다. ‘어른’이라는 단어는 이미 꼰대의 냄새가 난다.


기업 내에서도 요즘 MZ세대들과 간부나 중역들과의 갈등이 문제가 된다고 한다.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고, 자신의 생각을 가감 없이 표현하는 MZ세대들에게 중역이나 나이 든 사람들의 점잖은 조언은 이미 무의미해져 버렸다. 개성을 존중하고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세상이 되었다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지만, 가끔은 이해되지 않은 언행으로 불화가 발생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기업이 생존하기 위해서, 사람들이 살아남기 위해서, 세대 간의 갈등을 극복하기 위해서 각자 나름대로의 이해와 노력이 필요하다. 사랑과 믿음을 바탕으로 양보와 대화를 통해 함께 사는 세상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 ‘꼰대’가 되느냐, 아니면 ‘품위 있는 중년’이 되느냐는 스스로 변화를 인정하고 그에 따른 노력 여부에 달려있다고 할 수 있다.


예전에 들었던 얘기가 기억난다. ‘꼰대’와 ‘중년’의 차이는 말에 달려있다. 물어보지도 않은 것을 자꾸 반복적으로 얘기하면 ‘꼰대’가 되고, 물어본 것에만 답변을 주는 사람은 ‘중년’이고 ‘선배’가 된다는 것이다. 원하는 것만 얻겠다는 이기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가끔 선배들 중에는 자신의 과거 얘기만 반복적으로 얘기하거나 원하지도 않는 조언과 충고를 해주는 사람들을 보며 한편으로는 이해가 된다. 세대 간의 차이를 극복하며 함께 잘 어울리며 살아가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하긴 부부간에도 많은 갈등이 있고, 친구들 간에도 불편한 상황들이 많이 발생한다. 그러니 갈등과 번민과 삶의 문제는 세대 간의 차이라기보다는 인간이 지닌 근본적인 문제일 수도 있다.


한 사람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살아가는 것이 결코 녹녹하지 않다. 태어나서 성장하고, 독립하고, 자신의 가족을 이루고, 자식들이 결혼해서 며느리와 사위를 보고, 손주들을 보고, 부모님의 죽음을 지켜본 후에는 각자의 죽음을 준비할 시기가 돌아온다. 돈벌이도 행복한 삶을 위한 돈벌이가 되어야 하는데, 돈 벌기 위해 너무 많은 행복을 유보시키고 포기하기도 한다. 참 한 평생이 별 거 아니다. 가족들이 있어서 힘든 일도 생기지만, 가족 덕분에 웃으며 살아갈 힘을 얻는다. 가족 간의 사랑과 불화는 삶의 추억이고, 그런 과정을 통해서 우리 모두 성장과 성숙을 거듭한다. 그냥 오늘 가족들과 웃고, 울고, 사랑하고, 다투며 하루하루 그러려니 하고 살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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