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여론조사기관 퓨리서치가 올해 전 세계 17개국 선진국 1만 8000여 명을 대상으로 ‘삶에서 가장 가치 있게 생각하는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한국만 유일하게 ‘물질적 행복’을 1위로 꼽았다. 각국 응답을 평균 내보니 ‘가족’ ‘직업‘ ’ 물질적 행복‘순이었다. 한국도 전엔 크게 다르지 않았다.” (조선일보, 20211123)
이 기사를 보며 삶의 가치가 변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코로나 여파, 사회적 환경, 정치적 환경 등이 영향을 미쳤겠지만 조사 결과를 보며 많이 안타까웠다. 생활을 하기 위해 물질적 여유는 어느 정도 필요하지만, 그렇다고 ‘물질적 행복’을 추구하기 위해 인생을 모두 바쳐야 한다면 삶이 너무 무의미하고 무가치하게 느껴진다. 행복한 삶을 위해 경제적인 부분이 어느 정도 충족되어야 하지만, 경제적인 풍요가 반드시 행복을 보장해주지는 않는다. 행복하고 풍요로운 삶을 살아가기 위한 방법은 무엇일까?
어제 모 기관의 채용 면접관으로 다녀왔다. 면접을 진행하는 내내 마음 한 구석이 영 편하지 않았다. ‘10년 후의 자신의 모습은?’ 또는 ‘자신의 비전은?’이라는 질문을 던지면 대부분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는 질문이라는 표정을 짓는다. 그리고 이 기관에 취업하는 것만이 자신의 유일한 꿈이고 비전이라는 답변만 듣기 때문이다. 한 분야에 지원한 후보자가 탈락된 후 다음 기회에 다른 직무에 지원한 후보자를 만나는 경우도 있다. 그들에게 어떤 일을 하고 어떤 분야의 전문가로 성장하겠다는 비전과 꿈은 이미 사라졌고, 아무 일이라도 할 수 있는 취업만이 그들의 목표라는 생각이 든다. 그 기관에 취업하는 것이 꿈이라고 대답한 채용 인원 중 채 1년도 되지 않아 퇴사를 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앞뒤가 맞지 않는 말이다. 그렇다고 그들을 탓할 수만도 없는 일이다. 그들에게는 그 당시 그 기관에 취업하는 것만이 유일한 지상과제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을 것이기에.
외국의 어느 심리학자가 ‘실패 이력서’라는 단어를 사용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 역시 학위를 받는 과정에서 여러 번 탈락을 경험했다고 한다. ‘실패 이력서’란 아마도 자신의 실패를 통해서 얻는 경험을 바탕으로 다시 일어선 사람들이 쓴 ‘성공 이력서’ 일 것이다. 하지만 ‘실패 이력서’라는 단어는 그것이 지닌 원래의 의미와는 별도로 그다지 잘 만들어진 단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어떤 상황이든 끝나기 전에는 ‘실패’이거나 ‘성공’으로 판별되지 않는다. 정해진 시간이 있는 운동 경기에서는 그날의 승리와 패배는 결정될 수 있지만, 이 경우에도 영원한 승자와 패자는 없다. 서로 뒤바뀌며 승자가 패자가 되고, 패자가 승자가 되기도 한다. 포기하지 않는 한 ‘승자와 패자’는 존재할 수 없다.
‘성공과 실패’, ‘승리와 패배’, '합격과와 탈락’이라는 이분법적 단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아직 삶의 경험이 미숙한 사람들이다. 어떤 삶도 칼로 무 베듯 성공과 실패로 나눠질 수 없다. 이 두 가지는 서로 엉키고 뒤바뀌며 삶의 한 모습을 순간적으로 보여주고 있을 뿐이다. ‘성공’과 ‘실패’라는 결정적인 단어들을 사용하기 이전에 삶의 가치와 기준을 어떻게 정하는가가 우선되어야 한다. 사람마다 추구하는 가치가 다르다. 행복, 부귀, 권력, 탈속적 삶, 평범한 일상, 취미나 재능, 가족, 건강 등 추구하는 모습이 사람마다 다르다. 또한 한 개인의 경우에도 살아가면서 추구하는 삶의 가치가 변하기도 한다. 자신의 가치와 기준을 타인에게 적용시키거나 강요해서도 안 된다. ‘다름’을 인정하고 ‘다름’을 수용하며, ‘변화’를 인정하고 ‘변화’를 수용하며, 자신의 가치를 찾아 자신에 맞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삶을 풍요롭게 살아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각 방송사마다 오디션 프로그램이 진행 중이다. 국악과 현대 음악을 접목시킨 크로스 오버 프로그램, 트로트 경연 프로그램, 댄스 경연 프로그램 등 프로그램 내용도 다양하다. 노래나 춤이 뛰어난 사람들임에도 무명이라는 이유만으로 힘들고 서럽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많이 보게 된다. 자신의 꿈을 성취하기 위해 생계를 힘들게 이어가며 고군분투하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그들의 노력에 응원의 박수를 치기도 한다. 반면 이미 인기를 얻은 연예인들은 자신의 위치를 더욱 공고하게 만들고 확장시켜 나가기 위해 매 순간 매진하며 살아가고 있다. 물론 지금 유명한 연예인들도 수많은 좌절과 실패를 극복하고 오늘 이 자리에 설 수 있었을 것이다. 그들 역시 좌절의 순간에 포기냐 아니면 계속 꿈을 추구하기 위해 참고 나가야 하는가에 대한 많은 고민을 했을 것이다. 유명 연예인이나 유명해지기 위해 노력하는 무명의 사람들 모두 공통점이 있다. 꿈을 추구하며 동시에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지니고 있다는 점이다. 실은 우리 모두 이 공통점을 갖고 있다.
이 두 가지는 같으면서도 상충되기도 한다. 꿈을 추구하며 미래의 불확실에 대한 대비를 한다는 것이 같은 면이다. 반면 꿈을 추구하는 것이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확실한 대답이 될 수 있는가에 끊임없는 갈등과 충돌이다. 이런 갈등 속에서 살아갈 수 있는 유일한 동력은 바로 ‘삶의 가치와 기준’이다. 미래는 모두에게 불확실하다. 우리가 미래를 대비한다고 해도 단지 마음을 조금 편안하게 만들기 위한 방편에 불과할 뿐이다. 미래는 우리의 예측이나 기대와는 상관없이 스스로 움직이기 때문이다. 미래는 잊어버리고 가치를 찾고 꿈을 추구하며 오늘을 살아가는 것이 가장 현명한 삶의 방법이 될 수 있다. 꿈이 바로 삶의 가치이고 기준이다. 꿈을 잃어버리는 것은 모든 것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자신의 과거, 현재, 미래를 모두 잃어버리는 것이다.
자신에게 ‘미래에 어떤 사람이 되고 싶고 어떤 삶을 살고 싶은가?’라는 질문보다는 ‘삶의 가치와 기준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그 답을 찾기 위한 노력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 그 답을 찾는 과정이 바로 삶이다. ‘삶을 여정’이라고 표현한 말은 삶의 경험이 충분히 숙성된 사람이 한 말임에 틀림없다. 삶은 과정이지 결코 목적이 아니기 때문이다. 설사 답을 못 찾았다손 치더라도 질문을 갖고 살아가는 것이 훨씬 더 가치 있는 삶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삶의 가치와 기준’은 평생 지니고 다녀야 할 화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