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면의 자유
날짜와 거리: 20220103 7km
코스: 불광천
평균 속도: 4.3km/h
누적거리: 5,786km
기록 시작일: 2019년 11월 20일
오전에는 집에서 글을 쓰고, 점심 식사 후 도서관에서 책을 읽은 후 불광천을 걸었다. 홀로 지내는 방법, 즉 루틴을 만들었다. 추운 날씨임에도 불광천에는 많은 사람들이 산책을 즐기고 있다. 애완견을 안고 또는 함께 걷는 사람들도 있다. 코로나로 인해 외출과 모임을 자제하며 홀로 지내는 방법을 배우고 적응하며 살아가고 있다. 약 2년의 기간 동안 많은 변화들이 일어나고 있다. 교육과 회의는 비대면으로 변화되었고, 배달 서비스는 증가했고, 사람들은 홀로 집에서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고 점점 익숙해져 가고 있다. 통신의 발달로 언제든 얼굴을 보고 통화할 수 있게 되었지만, 오히려 사람들 간의 거리는 점점 더 멀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멀어진다기보다는 비대면에 익숙해지고 있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갑자기 생각나서 친구를 찾아가거나 목소리가 듣고 싶어서 언제든 전화를 할 수 있었던 시절이 그립다. 대신 각자 홀로 즐겁게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해 나가고 있다. 상황을 극복하는 것이 아니고, 상황을 대하는 태도를 변화시키는 것이 현명한 삶의 태도이다.
불광천 끝나는 지점인 응암역 근처에 할인 매장이 있다. 노트 한 권을 사고 싶어서 들어갔다. 어떤 틀이나 일정표 등이 없는 무지 노트를 구입하고 싶어서 이것저것을 살펴보아도 원하는 노트를 발견할 수 없었다. 덕분에 우연히 1,000원짜리 만년필을 발견했다. 캡슐형 잉크가 5개나 들어있는데 가격은 단돈 천 원이다. 만년필로 글 쓰는 것을 좋아한다. 지금 사용하지 않는 만년필도 있고, 잉크 캡슐을 교환하고 며칠만 사용하지 않아도 잉크가 말라 글이 써지지 않는 것도 있다. 일회용 만년필을 구입해 볼까 생각 중이었던 참이어서 반가웠다. 비록 펜 굵기는 원하는 것보다 가늘지만 천 원에 만년필을 살 수 있다는 사실이 놀랍고 즐거웠다. 집에 돌아와서 잉크 캡슐을 만년필에 삽입하는데 애를 먹기도 했지만 글씨는 부드럽게 잘 써져서 만족스러웠다. 편안하게 삽입하는 기능이 보완되면 좋겠는데, 단돈 천 원짜리 물건에 너무 많은 기대를 하는 것 같아 그 욕심은 버리기로 했다. 노트는 다른 문구점에 들려서 나중에 천천히 찾아볼 생각이다. 천 원짜리 만년필을 아내에게 자랑스럽게 보여주며 ‘천 원의 행복’을 누리고 있다. 일상 속 이런 사소한 즐거움이 행복을 가져다준다.
”돈은 건강 다음의 특권인 독립성을 유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 나는 백만장자를, 자기 자본을 가지고 자기가 원하는 바를 행하는 데 있어 그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는 사람이라고 정의하고 싶다. 그는 애써 일할 필요가 없으며 사장이나 고객에게 굽실거릴 필요도 없다 또한 자기와 맞지 않는 것에 맞추어 가며 살아야 하는 불편함 없이 달리 자신의 호사스러움을 즐길 수 있다. 그렇게 사는 사람이 진정한 백만장자이다.” (돈, 뜨겁게 사랑하고 차갑게 다루어라, 앙드레 코스톨라니)
이 글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재테크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도 경제적 독립 또는 경제적 자유를 위해서이다. ‘독립’보다는 ‘자유’라는 단어가 더 어울릴 것 같다. 하고 싶은 일을 마음대로 하는 데 걸림이 없는 ‘자유’를 꿈꾸고 있다. ‘자유’는 ‘책임’이 따른다는 가장 기본적인 말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기에 굳이 언급하고 싶지 않다. 부유하지는 않지만 생활하는 데 별 불편함도 없다. 그럼에도 ‘경제적 자유’를 누리고 싶은 이유는 가족과 친구 그리고 나 자신을 위해서이다. 가족들과 편안한 여행도 하고 싶고, 좋은 음식점에서 맛있는 음식도 함께 먹고 싶고, 손자들에게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주고 싶다. 또한 친구들에게 언재든 술 한 잔 대접하고, 좋은 책 선물하고, 같이 여행 가고, 맛있는 음식을 돈에 구애받지 않고 대접하고 싶다. 나 자신에게는 국내외 트레킹 코스를 길동무들과 함께 또는 홀로 언제든 편하게 떠날 수 있는 자유를 보장해주고 싶다. 하고 싶은 일을 하는 데 아무런 걸림이 없이 살 수 있는 ‘경제적 자유’를 느끼고 싶다. 물론 불가능할 것이고 ‘경제적 자유’에 관해서 자신과 어느 정도의 타협이 필요할 것이다.
그 타협은 자신을 충족시켜주는 것이 반드시 ‘경제적 자유’만이 아니라고 자신을 설득하는 것이다. 부족한 부분은 ‘심리적 자유’로 채워나갈 수 있다. 아내와의 화목한 관계, 가족과의 원만한 관계, 친구들과의 편안한 만남, 길동무들과의 걷기 등이 ‘심리적 자유’를 채워줄 수 있다. 준비하고 있는 ‘걷고의 걷기 학교’를 운영하며 삶의 보람을 느끼고, 걷고 글을 쓰며 ‘심리적 자유’를 채워나갈 수 있다. 명상을 하며 ‘심리적 자유’인 ‘텅 빈 충만’을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경제적 자유’는 반드시 외부 요인인 ‘경제’가 뒷받침되어야만 하는 것이 아니다. 저자처럼 억만장자가 아닌 이상 자신의 경제적 한계를 인정하고 그 한계 속 자유를 찾으면 된다. 경제 요인이 ‘자유’를 구속할 수도 있지만, 경제적인 부를 성취한 후에도 불편한 마음에 구속당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저자처럼 ‘경제적 자유’를 통해서 ‘자유’를 느낄 수 있는 사람은 어떤 상황에서도 자유를 느낄 수 있는 사람이다. 마찬가지로 ‘심리적 자유’를 통해서 ‘자유’를 느낄 수 있는 사람도 어떤 상황에서도 ‘자유’를 느낄 수 있는 사람이다. 상황 요인들이 ‘자유’를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니고, 상황 요인을 생각하고 바라보는 태도가 ‘자유’를 만들어 준다. 경제적 자유와 심리적 자유는 겉으로 보기에는 두 가지이지만 실은 하나로 귀결된다. 바로 ‘내면의 자유’이다. 경제적 자유를 느낄 수 있는 ‘내면의 자유’와 ‘심리적 자유’를 느낄 수 있는 ‘내면의 자유’가 있어야만 ‘참 자유’를 느끼고 체험하고 누릴 수 있다.
오늘 ‘내면의 자유’를 느끼기 위해 한강변을 따라 걸은 후 500여 개의 계단을 올라 노을공원을 자유롭게 걷고 싶다. 노을공원에 올라 한강을 바라보며 한강 위를 유영하듯 양팔을 벌려 상상 속 날개를 펼 것이다. 상상 속 하늘을 날며 자유를 느끼고 싶다. 난지 생태 길과 메타세쿼이아 길, 난지천 공원을 홀로 걸으며 ‘텅 빈 충만’을 느끼고 싶다. 오늘 오후 어떠한 걸림도 없이 가벼운 발걸음으로 홀로 걸으며 ‘참 자유’를 느끼고 싶다. 이런 날은 홀로 걷는 것이 좋다. 함께 걷는 ‘어울림’보다 홀로 걷는 ‘홀가분함’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