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고의 걷기 일기 0316]

홍익인간 (弘益人間)

by 걷고

https://m.tranggle.com/istory/myviewer/story/post_id/342150/2022185219?tp=pcno


날짜와 거리: 20220106 - 20220110 59km

코스: 상암동 공원 투어 외

평균 속도: 3.9km/h

누적거리: 5,864km

기록 시작일: 2019년 11월 20일


한 친구를 만나러 김포에 갔다. 하던 일을 그만두고 거동이 불편하신 아버님과 치매가 있으신 어머님을 간병하며 지내고 있는 친구다. 간병을 하기 위해 요양 보호사 자격증까지 취득했다. 김포 주변의 동산을 오르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다. 부모님의 모습을 보며 건강의 중요성을 깨달았다고 한다. 부모님 간병을 하며 형제, 자매들과 불편한 일을 겪었던 얘기도 숨김없이 털어놓으며 덕분에 지금은 같이 운동하며 좋은 관계가 되었다고 한다. 부모님을 간병하며 자신 내부에 숨어있던 양면, 천사와 악마의 모습, 을 지켜보며 삶 속의 ‘참 수행’을 하고 있다. 삶과 죽음에 대해 고민도 하게 되었고, 자신의 육신을 어느 누구에게도 의지하지 않고 죽을 때까지 살아가기 위해 운동을 열심히 하자고 형제들과 다짐을 하기도 했다. 다른 요양보호사의 얘기도 전해주었다. 요양원에 계신 분들의 모습을 보면 그분들이 어떻게 살아오셨는지 알 수 있다고 한다. 평상시에 자신을 성찰하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과의 차이가 극명하게 드러난다고 한다.


친구가 삶 속에서 올바른 수행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런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는 모습이 아름다웠다. 수행은 일상 속에서 벌어지는 환경에 대처하는 것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그런 이유로 번뇌가 바로 깨달음이 되는 것이다. 어느 누구든지 좋은 상황에서는 자신의 본바탕을 드러내지 않는다. 하지만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 되면 그 사람의 밑바닥이 저절로 드러난다. 평상시 마음공부한 살림살이가 드러나는 것이다. 지금 그 친구의 모습을 보며 ‘수처작주 입처개진 (隨處作主 立處皆眞)’이 떠올랐다.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이 주인이 되어 상황에 끌려 다니지 말라는 말씀이다. 자신의 주인으로 살아가라는 말씀이다. 상황이 나를 이끌고 가는 것이 아니고, 상황과 상관없이 주인의 모습을 유지하며 살아가라는 말씀이다. 그 친구는 부모님의 삶을 통해 자신의 미래를 보고 있고, 부모님의 고통을 함께 겪으며 내면의 고통과 투쟁을 하며 ‘거짓 자기’를 벗겨내는 작업을 하고 있다. 주인이 되어가는 과정을 혹독하게 치르고 있는 것이다. 밝은 그 친구의 모습을 보니 덩달아 기분이 좋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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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죽음에 대해 생각을 많이 하고 있으며, 잘 살고 잘 죽고 싶다고 했다. 삶 속의 고통이 그 친구를 철학자로 만들었다. 삶과 죽음은 동전의 양면이다. 삶은 바로 죽음을 의미한다. 시간의 개념만 뺀다면 같은 의미가 된다. 삶이 없는 죽음도 없지만, 죽음이 없는 삶도 역시 없다. 삶과 죽음은 자연스러운 순환이며 과정 속에 있다. 삶의 끝이 죽음이 아니고, 죽음의 끝이 삶의 시작을 의미하지도 않는다. 과거는 오늘의 연결이고, 미래는 오늘의 연결이다. 결국 ‘오늘 하루’를 살아가는 것이다. 시간 개념을 축소한다면, 단지 이 ‘순간’ 만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굳이 죽음을 준비할 필요도 없고, 맞이할 필요도 없다. 오늘이 끝나면 내일이 오듯이, 그렇게 그냥 왔다가 가는 것이다.


음악을 전공한 그 친구는 부모님의 모습을 보며 연민을 느끼고 있고 연민의 감정이 확장되고 있다. 길가에서 거동이 불편하신 노인들을 보면 부모님 모습이 떠올라 저절로 도움을 드리게 된다고 한다. 부모님의 모습을 지켜보며 또 간호하며 모든 노인들에게 연민의 마음이 열린 것이다. 자신이 전공한 음악을 바탕으로 ‘음악 치료’나 ‘음악 감상,’ ‘악기 연주’ 등의 교육 프로그램을 기획하여 많은 노인들의 삶이 행복해질 수 있는데 기여하고 싶다고 한다. 따듯한 마음이 가득 차면 저절로 나누게 된다. 마치 컵에 물이 차면 저절로 주변으로 흐르듯이. 나눔을 생각하는 마음을 지녔다는 것은 이미 부모님 간병에 대한 심한 고통에서 벗어난 것을 의미한다. 물론 힘든 순간들이 닥쳐와 괴로울 수도 있지만, 지금까지 경험한 상황들이 그 괴로움에 매몰되지 않을 수 있는 힘과 용기와 자신감을 줄 것이다. 그 친구의 아름다운 삶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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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친구가 김형석 교수님의 일상을 취재한 동영상을 보내주어서 어제 차분히 시청했다. 102세인 지금도 여전히 규칙적인 삶을 살고 계시며 집필 활동, 독서, 산책 등을 꾸준히 하고 계신다. 허리를 곧게 펴며 걷는 모습을 보니 아직 정정하시다. 그분은 나의 롤 모델이다. 그분처럼 오래 살고 싶다는 의미가 아니고, 사람들과 나누는 삶을 살고 싶다. 제자가 찾아와서 질문을 한다. “코로나 시대에 무엇을 배울 수 있는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김 교수는 “나눔”을 말씀하셨다. 그는 지금도 책 발간, 강의 등을 통해서 나눔을 실천하고 계시며, 아직도 할 일이 많다고 한다. 특히 97세부터 지금까지 열심히 살아오셨다고 하는 말씀을 듣고 잠시 숙연해졌다. 97세를 생각하니 내게는 아직도 30여 년의 세월이 남아있다.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나눔’을 위해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할까? 어떤 일도 시작하기에 결코 늦지 않았다는 사실은 희망을 줌과 동시에 부담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그 부담을 피하지는 않을 것이다.


코로나는 우리에게 큰 고통을 안겨주고 있지만, 덕분에 우리는 너의 삶이 나의 삶과 직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체험할 수 있게 되었다. 바이러스는 이 나라와 저 나라를 차별하거나 분리하지 않는다. 바이러스에 대처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쇄국정책보다는 백신과 정보를 공유하며 함께 살아가는 것이다. 앞으로도 수많은 바이러스들이 우리를 괴롭힐 것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인류가 함께 공존하기 위해 나눔을 실천해야만 한다. 최재천 교수가 강의했던 내용 중에 바이러스는 박멸하는 것이 아니고 바이러스를 통해 인류가 진화해가며 공생해야 한다는 말이 기억난다.


“유대인 아이들이 열세 살(여자는 열두 살)에 치르는 성인식 때 랍비가 ‘사람은 왜 사는가?’라고 묻는다. 그러면 대부분 ‘티쿤 올람’이라고 대답한다. (..........) ‘티쿤’은 ‘고친다’는 뜻이고 ‘올람’은 ‘세상’이라는 의미다. 그래서 ‘티쿤 올람’은 세상을 개선한다는 뜻이다. (............) 유대인의 ‘티쿤 올람’과 비슷한 사상이 우리 한민족에게도 있다. 바로 단군왕검의 건국이념 ‘홍익인간(弘益人間)’사상으로 ‘인간 세상을 널리 이롭게 한다’는 뜻이다.” (조선일보 2022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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